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무산 출신 박소연 씨는 2011년 11월, 남한에 도착해 올해 남한 생활 4년 차를 맞고 있습니다. 2012년 아들을 데려와 혼자서 키우는 열혈 '워킹맘' 그러니까 일하는 엄마입니다.
<세상 밖으로> 이 시간엔 남한 정착 9년차, 자강도 출신 탈북 기자 문성휘 씨와 함께 박소연 씨의 남한 적응기를 하나하나 따라 가봅니다.
- 시그널 UP&DOWN
소연 씨가 지난달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열린 백일장에 나가서 상을 탔습니다. 그 얘기를 들은 문 기자의 반응이 격렬했는데요.
INS - 풋... (웃음) 아니! 북한 장마당에서 장사하던 솜씨를 발휘한 거예요?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웃음)
축하를 못해줄지언정 약간 비꼬는 것 같은 문 기자의 말에 소연 씨는 약간 기분이 나빠졌습니다.
INS -
/장마당에서 장사하는 사람은 글 쓰면 안 됩니까??
/아니... 백일장에서 일등했다면서요!
/백일장이 뭔지는 아세요? 장마당이 아니에요... 글쓰기 대회를 남한에서 그렇게 불러요!
/글짓기 대회입니다.
/몰랐어요! 말도 안 돼... 얼마 전에 탈북자들이 인천 어딘가에서 장마당을 열었거든요. 나는 거기서 장을 탔다는 줄 알고. 백일장이 장마당이 아닙니까? 글쓰기 대회를 왜 백일장이라고 하나... 참 희한한 나라에요...
그러게요. 희한한 나라입니다. 청취자 여러분도 백일장이 장마당이 아니라는 거, 잘 아셨죠? 글짓기 대회에서 소연 씨가 작은 상을 탔습니다.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지난 시간에 이어 소연 씨의 백일장과 체제만큼 다른 남과 북의 글쓰기 얘기 해보겠습니다.
문성휘 : 북한의 글짓기도 초점이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더욱이나 개별적인 단체들에서 조직할 수 없기 때문에 주제가 그렇게 정해져있고요. 북한은 글 한 문장을 썼다가 칭찬받고... 남한은 글을 잘 쓰면 베스트셀러가 돼서 출판료를 많이 받지요.
진행자 : 책을 써서 그게 많이 팔리면 글쓴이는 인지세로 돈을 벌 수 있지요.
문성휘 : 그렇습니다. 반대로 잘 못 쓰면 책이 묻혀버리고요... 근데 북한은 재밌는 게... 옛날 함경북도의 기자가 이런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제목은 장군님이 좋아하는 열 가지. 노래는 조선 인민 공훈 합창단, 색깔은 붉은 색, 가장 좋아하는 것은 사색과 탐구...
박소연 : 음식은 줴기 밥.
문성휘 : 이렇게 열 가지를 정리 놓은 것입니다. 김정일이 이 글에 너무 만족해서 그 사람에게 일체 선물을 다 했어요. 텔레비전부터 시작해서 지어는 반찬 접시, 숟가락, 젓가락까지 다...
진행자 : 소연 씨도 아시는 얘기인가요?
박소연 : 소문으로 다 났어요.
진행자 : 진짜인가요?
문성휘 : 네, 그렇답니다. 그렇지만 실제 김정일이 좋아하는 색상은 풀색 비슷한, 그런 색을 좋아한다고 하고요.
진행자 : 좋은 하는 음식도 줴기밥은 아니었을 것 같고요. (웃음)
문성휘 : 맞습니다. 쪽잠에 줴기밥, 노래도 공훈 합창단 노래 제일이라고 했는데 성혜림과 차 안에서 '그때 그 사람'이라는 노래를 밤새 들었다는 일화가 있지 않습니까?
진행자 : 인터뷰나 자료를 통해 쓴 기사가 아니고 이상적인 장군님의 모습을 만들어 놓은 것 같네요.
문성휘 : 북한이 선전하는 장군의 모습 중에 10가지를 추려낸 것이죠.
진행자 : 그렇게 많이 얘기가 된 '쪽잠'에 '줴기밥'이 여기서 나온 것이군요. (웃음)
문성휘 : 맞습니다!
박소연 : 제가 어렸을 때 노동신문에 장편 서사시가 나왔는데 위대한 우리 당에 영광을 드린다... 이 분도 노력영웅이 됐죠. 노동신문 한 페이지를 다 채웠는데 지금 문 기자가 말씀한 그 내용이 다 들어갔습니다. 아이들은 휴양소로, 장군님은 줴기밥에 최전연 초소로... 지금도 잊혀 안 지는데요. 이렇게 글에 온통 장군님에 대한 충성심을 지략하다 보니 개인의 얘기 또 개인감정이 들어갈 곳이 없지요.
진행자 : 소연 씨는 당시에 그 글을 읽으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나요?
박소연 : 그 때 당시엔 참 잘 쓴다, 내내 보면서 가슴이 뭉클했고요.
문성휘 : 노동 신문사 기자 김만녕이 쓴 거죠. 그걸 시작으로 장편 시서시가 많이 나왔고 그 사람이 노력영웅이 됐는데요. 애들은 많이 읽었지만 사실 따져보면 그냥 기사나 일반 글로 써도 되는 걸 이랬서라, 저랬서라... 이러면서 그냥 문장을 시처럼 만들어 놨던 따름이죠.
진행자 : 그런 걸 노리지 않았을까요.
문성휘 : 그래서 장군님이 좋아하는 열 가지를 쓴 사람과 김만녕이 똑같은 선물을 받았습니다. 북한에서 입을 잘 놀려라... 이런 말은 이런 걸 두고 나오는 말이겠죠.
진행자 : 혓바닥도 잘 놀려야 하지만 펜을 잘 놀려야겠네요.
문성휘 : 글은 잘 못 되면 지워도 되지만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지 않습니까?
진행자 : 아, 그렇군요... 저희가 남북 글쓰기를 차이를 얘기하고 있었는데요. 그 얘기로 돌아 가보죠. 제가 보기엔 북한 글의 가장 큰 특징은 길고 수사가 화려하다는 것입니다.
문성휘 : 사실 개인의 차이도 있지만 북한의 글이 길다는 건 신년사를 보면 알 수 있죠. (웃음) 문장 하나의 길이가 점점 더 길어집니다. 김정은 집권 초기보다 길어지고 있습니다. 드러나지 않지만 아주 화려하게 쓰면서 숨이 컥컥 막히게, 그렇게 쓰고 있습니다...(웃음)
진행자 : 장군님이 화내면 글 쓰신 분들은 어쩌라고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웃음)
문성휘 : 이놈들 문장 좀 짧게 만들어라... 그럴 수 있겠죠. (웃음)
진행자 : 남쪽은 긴 길, 수식 들어가는 글을 선호하지 않습니다. 글이 길어지면 전달하는 바가 흐려지기 때문에 간결하게, 보는 사람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쓰는 게 중요합니다.
문성휘 : 북한도 사실 육하원칙을 지키라는 얘기는 있습니다. 북한의 글쓰기 방법이라는 책이 있는데요. 주체의 글쓰기 방법이라고 해서 모든 글은 주체적인 입장에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와 김정일 동지의 교시와 말씀을 인용해야한다고 박혀있어요. 여기에 근거해 글을 써야한다고 하죠... 그러니까 한마디로 김일성, 김정일의 주장을 육하원칙에 맞게 풀어내라는 얘깁니다.
박소연 : 저는 한국에 딱 와서 한국과 북한의 글쓰기가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회에 나와 보지도 못하고 하나원에서 상을 타다보니까...(웃음) 뭔지도 모르는 상품권 10장에 착각을 한 겁니다. 처음 회사에 들어와서 글을 썼는데요. 제가 이랬습니다. 봄이다, 봄이 오니까 사람들이 분주하다... 이렇게 쓰면 되는 걸 만물이 소생하는 화창한 봄이다... 대표가 소설을 쓰나? 이런 미사여구는 다 뽑아! 그랬어요. 아니 세상에, 이런 아름다운 말을 다 뽑으면 무슨 글이 되나... 또 한국에 와서 대학생들과 함께 글쓰기 강습을 듣기도 했습니다. 그때도 학생들 앉아있는 걸 보면서 니들이 암만 대학을 다녀도 나보다 잘 쓰겠냐... (웃음) 자만했지요. 북한 사람들은 그런 게 있다는데요? 근거 없는 자부심 같은 거요. 제가 꼴찌 했습니다... 화면에 제 글을 펼쳐놓고 띄어쓰기가 하나도 안 맞고 무슨 문장이 이렇게 기냐! 제가... 얼굴에 모닥불을 쓴 것 같았습니다.
진행자 : 띄어쓰기가 다릅니까?
박소연 : 많이 달라요... 제가 그만두려고 했는데 제 짝꿍이 남한에 와서 어려움이 한두 가지가 아닐 텐데 이런 데서 좌절하면 안 된다고 말렸습니다. 말로는 싫어, 글 안 쓰고 식당에서 그릇 까셔도 돈 주는데! 말은 이렇게 했지만 계속 나가긴 했습니다. (웃음) 그날부터 학생들의 글을 이메일로 다 받았습니다. 정말 재미없었는데 마음으로 납득이 안 되는 걸 모방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주일에 한 번 씩 수업이 있었고 석 달 만에 끝났는데 끝날 때 교수님이 너무 칭찬해주시는 겁니다...
진행자 : 첫 글과 마지막 글, 무슨 차이가 있었을까요?
박소연 : 별나게 북한은 반복이 많이 들어가고 남한은 보는 사람이 쉬워야하는데 북한은 쓰는 사람이 주장을 강요하는 면이 크죠. 그런 게 달라졌던 것 같습니다.
문성휘 : 그러니까 근대 소설을 보면 문장을 길고 화려하게 쓰고 표현을 세밀하게 하는데요. 현대로 오면서 문장은 간결해지고 사건 자체도 질질 늘리지 않고 빨리 빨리 일어납니다. 북한 사람들은 그걸 모르는 거죠. 그러니까 화창한 봄날이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날이다... 이렇게 되는 것이고요. (웃음)
박소연 : 그래요. 그냥 봄이다 그럼 되는데요. 그리고 또 북한 글은 명령식이죠. 제가 언젠가 말했지만... 제가 해수욕장 가서 놀라기도 하고 매혹되기도 한 글이 있는데요. 해수욕장에 사람들이 막 쓰레기를 버리니까
북한 같으면 '해수욕장에 오물을 버리지 마시오. 버리는 자는 적발시 엄벌한다' 그랬을 겁니다. 그런데 남쪽 해수욕장엔 '이곳은 추억을 남기는 곳입니다. 쓰레기는 가지고 가세요' 이렇게 써 있어요. 같은 걸 요구하지만 표현은 다르죠.
문성휘 : 이런 것도 있지 않습니까? 화장실에,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 얼마나 좋아요?
진행자 : 네, 그런 짧은 글들도 글은 글이죠...(웃음) 이렇게 글에서 남북이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지도 못했던 차이 때문에 탈북자들의 적응이 힘들기도 한 것 같습니다.
문성휘 : 그러니까 뭔가 다 새로... 한국에 오면 완전히 새로 태어나야 한다니까요. 그런 기분으로 출발을 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남아 있는 지식 같은 것들이 역효과를 내기도 합니다. 소연 씨도 독이 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박소연 : 그렇죠. 기사이든 뭐든 어떤 글이든 나쁜 얘기는 전혀 하지 않는 것도 문제인 것 같습니다. 북한에선 2.8 비날론 공장... 지금 망했지만 그 전에는 선전을 엄청 했죠. 그렇지만 망한 다음엔 뭣 때문에 무슨 문제가 있었고 어떤 걸 선전만 하고 그게 어떻게 해서 잘 못 됐는지... 남한 같으면 그게 투자가 얼마나 됐는데 어떻게 해서 망했다, 다 알려주지 않습니까? 북쪽에선 잘 못 되고 망한 건, 하여튼 나쁘게 된 건 절대 알려주지 않습니다.
문성휘 : 그래도 소연 씨는 그런 차이를 다 극복하고 백일 장마당인지 백일글장인지에서 장려상을 탔다니까... 잘 적응한 게고 글이 발전한 만큼 생활이 잘 적응했다는 의미가 아니겠습니까? ( 웃음)
청취자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남한 사람들은 북쪽의 영화나 소설을 보면 한 결 같이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뭔가 어색하다... 어딘가 억지로 짜 맞춰 놓은 것 같은 그런 어색함이 느껴진다...? 이건 재미가 있다, 없다... 와는 좀 다른 얘기입니다. 이 두 사람과 얘기하다, 남한 사람들이 왜 그렇게 느끼는지 그 답을 찾은 것 같은데요. 이 얘기는 다음 시간을 위해 남겨놓겠습니다.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립니다. 저는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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