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연 씨는 지난해 11월 남한에 도착한 햇내기 입니다. 무산 출신으로 선전대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30대 중반의 여성인데요. 하나원 교육을 끝내고 본격적으로 남한 생활을 시작한지 이제 5개월...
<세상 밖으로> 이 시간에는 남한 정착 7년차, 자강도 출신 탈북 기자 문성휘 씨와 함께 박소연 씨의 남한 적응기를 하나하나 따라 가봅니다.
INS - 문 기자님도 처음에 가족은 다 뒤에 두고 오셨겠죠? 외로울 때, 아플 때는 어떻게 하셨어요?
오늘 얘기 시작합니다.
박소연 : 제가 하나원에서 수술했을 때는 문 기자님과는 상황이 좀 틀렸어요. 하나원은 좀 덜 적적하잖아요. 근데 제가 수술하려고 서울대학병원에 갔는데 간병인을 안 붙여주더라고요. 하나원에서 함께 갔던 의사 선생님이 내일 수술 날짜가 잡혔으니까 수술하고 인차 오세요... 이러고 저만 두고 가버리는 거예요. 그 의사 선생님, 저보다 나보다 훨씬 아래인데 배웅하다 승강기 문이 닫히니까 어찌나 눈물이 쏟아지던지... 병실에는 환자가 6명인데 다 제각각 풍(커텐)을 치고 있고 보호자들이 다 있는데 저만 혼자예요. 제 성격도 누구에게 말을 먼저 붙이고 그런 성격은 못 되서 그냥 앉았었어요. 나중에 얘기하시는데 저를 중국 사람인줄 알았다고 하더라고요. 나중에 간호사가 와서 하나원에서 전화가 왔는데 어쩌고... 이런 얘기를 해서 탈북자인 줄 알았다는 겁니다. 어쨌든 다음날 아침이 돼서 수술 침대가 왔어요. 복도에 내가 탄 수술침대 바퀴 소리가 진동을 하는데 그때 눈물이 나더라고요... 눈을 뜨고 보니 병실 침대인데 목이 너무 마른데 물,,,물,,, 이래도 누구 물 떠줄 사람도 없었어요. 나중에 옆 자리에 60 넘으신 아버님이 물을 한 잔 갖다 놔주셨더라고요. 그러면서 저에게 아빠가 그렇게 보고 싶으나? 그리 물어요. 제가 아빠 나 아파, 아빠 나 아파... 그러면서 발버둥 치더래요. 그래서 손을 잡아줬더니 제가 그 손을 쥐고 잤다고요. 정말 가족이 옆에 있을 때는 시끄러울 때도 있죠. 자꾸 참시(참견)를 하고... 그런데 지금 같아서는 아버지의 모습을 꿈에서도 봤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저는 지금 하고자 하는 일만이라도 좀 열성스럽게 컴퓨터도 배우고 열성스럽게 방송일도 하고 싶은데 그래도 가족이 없다는 빈 공간은 제 뒤를 그림자처럼 따라 다닙니다.
문성휘 : 저도 가족 없을 때 외로워서 글을 한번 써볼까 했는데요. 글을 쓰면 주로 우리가 북한에서 살았던 일을 생각하게 되잖아요? 그러니 더 고향 생각이 나고 신경이 예민해지더라고요. 사실 이게 참 제 맘대로 안 됩니다. 수술을 받았다고 했는데 하나원 선생님들도 별치 않은 수술이라고 너무 등한이 여겼던 것 같습니다. 누가 같은 탈북자라도 한 명 붙여줬어야 하는데...
박소연 : 그러면 얼마나 좋았겠어요.
진행자 : 그러게 말입니다. 남쪽에선 요즘 병원에 가면 암 수술도 웬만해서 간단한 겁니다... 그럽니다. 하나원에서도 간단한 시술이겠거니 한 것 같은데 소연 씨에게는 혹독한 신고식이 된 것 같습니다.
문성휘 : 제가 살아보니 우리가 사회를 따라가야지 사회가 우리를 따라오진 않습니다. 그리고 제가 보니까 사람이라는 게 다 그래요. 하나원에서도 몇 백 명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마음이 가까운 사람들끼리 똘똘 뭉칩니다. 사회 나와서도 그런 친구들과 전화 연계를 하는데 이게 한 3년 정도 되면 그 때 함께 지냈던 사람들, 이름도 잘 모르고 그냥 얼굴만 알았던 사람들도 다 안부가 몹시 궁금하고 그때 우리 조금만 양보했으면 별치 않게 넘어갔을 텐데 내가 너무 예민했다 이런 생각도 들고요. 그러니까 소연 씨! 주변에 소연 씨가 하나원에서 상대 안 하던 사람들이 산다고 해도 의도적으로 그 벽을 깨야합니다. 벽을 깨는 게 가장 힘들지만 꼭 해야 합니다.
박소연 : 사람 호상 간에 벽을 깨라... 지금 우리는 통일이 되지 않는 한 가족을 만날 수 없으니까 여기서 그 사람들을 가족 못지않게 가깝게 지내라... 이 의미인 것 같아요. 그런데 문 기자님은 언제 새로운 가족을 만드셨어요?
문성휘 : 저는 나온 지 한 달 반 만에 가족이 생겼습니다. 제가 혼자서는 도저히 못 살겠어서 하나원 여자 동기에게 찾아가서 함께 살자고 했어요. 그 사람이랑 지금도 사는 거죠. (웃음) 사실 저처럼 가족을 만드는 게 제일 좋죠. 외로움도 없어지고 자기 미래를 위해서도 새로운 가족이 필요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박소연 : 근데 문 기자님, 저나 문 기자님이나 첫 가정은 아니잖아요? 원해서 갈라진 것이 아니고 곡절 많게 오다보니까 그렇게 된 것인데요. 사실 이제 만나게 되면 30대 중후반에 만나서 새롭게 시작을 해야 하잖아요. 20대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하는 것도 아니고 더 힘들지 않을까요?
문성휘 : 저는 별로 차이를 느끼지 못했어요. 옛날부터 저희 어머니가 사람은 50% 자기하고 비슷하면 완전히 100%로 만들 수가 있다고 하셨어요. 저도 엄청나게 다툼을 했습니다. (웃음) 어느 부부나 막 결혼을 해서는 서로 적응기가 필요하죠. 그러나 경험이 있고 나이도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쉬운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너무 두려워 말고 그렇다고 너무 기대도 말고 일단 사람을 만나보세요.
진행자 : 역시 외로움을 극복하는 방법 중 최선은 가족을 만드는 것이겠죠?
문성휘 : 그렇죠. 가족을 만들어라, 친구들과 가깝게 지내고 상담도 꺼리지 말라고 조언하고 싶네요.
박소연 : 문 기자님이 욕할 수도 있겠는데 저는 기회가 된다면 한국 사람하고 결혼하고 싶습니다. 이제 새로운 사회에 왔으니까 부딪혀 보고 싶어요.
문성휘 : 아, 네! 나쁜 생각 아닙니다. 저도 결혼 안 하고 2-3년 더 혼자 지냈으면 남한 사람이랑 결혼했을지도 모르죠. (웃음) 당시 저는 굉장히 남한 사회에 의기소침해 있었습니다. 남한 여자가 나 같은 탈북자에게 왜 와? 이렇게 생각해서 애초에 남한 여성들을 볼 생각을 안 했는데요. 살면서 보니까 그게 아니더라고요.
진행자 : 문 기자님을 좋아하는 남한 여자가 있었습니까? (웃음)
문성휘 : 아니! 그 소리가 아니고요. 북한에서 오신 남성분들이 남한 여성분과 결혼한 경우가 많아요.
진행자 : 저는 그게 좀 궁금한데요. 북한에서 오신 남성분들이 남한 여자랑 결혼하는 건 괜찮다고 하고 왜 북한에서 오신 여성분들이 남한 남성이랑 결혼하겠다면 그렇게 뭐라 하시는지 모르겠어요.
박소연 : 네, 막 화를 냅니다. 이런 얘기하면 저를 막 빈정댑니다. 농담이지만 한번 확 당해봐라... 막 이러기도 하고요.
문성휘 : 에이... 그건 아니에요. 저희 동기들도 굉장히 잘 사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런데 저는 여자들이 남한 남자들과 함께 사는 건 괜찮은데 남한 여성이 북한 남자랑 살면 신기해보입니다.
진행자 : 남한 남자들이 싹싹하고 집에 와서 집안일도 잘 해준다고 말씀들 하시는데요. 그것도 다 많은 잔소리와 교육에 의해서 만들어 진 것입니다. (웃음) 물론 남북한 사람이 함께 살게 되면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죠. 그렇지만 절대 극복하지 못할 부분이 있는 건 아니잖아요?
문성휘 : 그래요. 솔직히 같은 북한 사람과 사는 저도 아직까지 싸우고 삽니다. (웃음) 사람이 서로 적응한다는 게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죠.
박소연 : 오늘 정말 문 기자님 말씀이 많이 도움이 되네요. 저는 이제 가정을 가지면 정말 다시는 놓지 않겠습니다...
진행자 : 저희가 방송을 할 때면 항상 소연 씨는 그날 얘기할 걸 공책에 적어 오는데요. 오늘은 일본 시인, 시바타 도요의 시를 적어오셨네요. 도서관에서 읽고 너무 좋았다고 시를 옮겨 적어 오셨는데 한번 읽어주실래요?
박소연 : 이 분이 일본의 이름난 시인인데 102살이래요. 제목이 약해지지마... '있잖아, 불행하다고/ 한숨짓지 마/ 햇살과 산들바람은/ 한쪽 편만 들지 않아/ 꿈은/ 평등하게 꿀 수 있는 거야/ 나도 괴로운 일/ 많았지만/ 살아 있어 좋았어/ 너도 약해지지 마' 문구가 특이할 것 없지만 너무도 저에게 와 닿아요. 제가 이 시의 주인공인 것 같습니다. 나는 살아 있잖아,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나는 살아왔잖아... 꿈은 누구나 꿀 수 있으니 언젠가는 좋은 날이 꼭 온다는 그런 얘기를 하는 것 같습니다.
문성휘 기자는 혜은이 노래의 '강해야 해'를 자주 듣고요. 저는 힘들 때마다 웃는거야...이 노래를 자주 듣습니다. 약해지지 마, 강해져라, 웃어라... 모두 우리가 본인에게 거는 주문인 것 같습니다.
소연 씨 올해 김장은 병원에 입원했을 때 옆자리에서 손을 잡아주던 그 아버님이 갖다 주신다고 하네요. 이렇게 하나씩 쌓아가는 인연들이 외로움을 덜어줬으면 좋겠습니다.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오늘 얘기 여기까집니다. 다음 주 이 시간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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