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박소연 씨는 2011년 11월 남한에 도착한 햇내기 입니다. 무산 출신으로 선전대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30대 중반의 여성인데요. 하나원 교육을 끝내고 본격적으로 남한 생활을 시작한지 이제 근 일 년...
<세상 밖으로> 이 시간에는 남한 정착 7년차, 자강도 출신 탈북 기자 문성휘 씨와 함께 박소연 씨의 남한 적응기를 하나하나 따라 가봅니다.
INS - 네, 너무 다르고... 어디서부터 다르다 얘기하려면 끝이 없고 일단 형식부터 다 다르더라고요. 사람들이 가득 모여 있는 홀에 가니까 북한식으로 말하면 창문짝만한 사진을 전시해놓고 진짜...
지난주, 소연 씨는 남한에 와서 처음으로 결혼식장에 다녀왔습니다. 하나원에서 소연 씨의 아들을 3개월 동안 돌봐줬던 고마운 여성이 이날의 주인공이었는데요. 이 여성은 여러모로 처음 소연 씨가 남한에 왔을 때의 상황과 비슷합니다. 결혼식에 아들의 손을 잡고 간 소연 씨... 이 여성은 아들의 손을 다시 잡기 위해 일생의 반려자를 찾았습니다.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이 얘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진행자 : 안녕하세요. 날씨가 많이 추워졌어요.
문성휘 : 아... 지금이 북한에서는 한창 11월 결혼을 하는 때입니다.
진행자 : 이렇게 추운데요?
문성휘 : 아, 아니죠. 북한은 이런 시기가 정해져있는데요. 10월은 가을걷이에 바빠서 결혼식을 할 여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12월은 너무 춥고 또 한 해 막달이라고 재수 없다고 안 하죠. 그러니 11월 달에 많이 하고 또 2,3월에도 하는데 2월은 너무 추우니 3월이 결혼식이 많죠.
진행자 : 남쪽은 날씨 좋을 때 주로 결혼식이 많아요. 5월이나 10월이요.
문성휘 : 또 이건 북한의 생활과 크게 관련돼 있는데요. 북한은 조금이라도 날 더울 때 음식을 해놓으면 냉장고가 없어서 왕창 다 쉬어버리거든요. 그래서 잔치하기엔 오히려 3월이나 11월이 좋죠.
진행자 : 그렇군요... 방송 오래했어도 저는 이 얘기는 또 처음 듣네요. (웃음) 어쨌든 오늘은 일생의 가장 큰 행사, 인륜지대사라고 하는 결혼에 대해서 얘기해보겠습니다.
소연 씨 남쪽에 와서 결혼식장 가보신 적 있으세요?
박소연 : 지난주 일요일 날 북한에서 탈북한 분이 결혼한데서 결혼식장에 다녀왔습니다. 웨딩홀이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남한에 와서 결혼식을 처음 봤는데 북한하고 다르더라고요.
문성휘 : 완전 다르죠?
박소연 : 네, 너무 다르고... 어디서부터 다르다 얘기하려면 끝이 없고 일단 형식부터 다 다르더라고요. 사람들이 가득 모여 있는 홀에 가니까 북한식으로 말하면 창문짝만한 사진을 전시해놓고 진짜... 사진을 척 보는 순간에 이게 그 사람 맞아? 싶을 정도로 너무 멋있더라고요.
진행자 : 결혼사진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화장하고 드레스 입고, 무슨 영화배우 같이 나오죠? (웃음)
박소연 : 그러니까요. 그러고 신부를 위한 방이 하나 따로 있더라고요. 거기에 신부가 앉아서 자기 친구하고 사진도 찍고 인사도 그러더라고요. 저도 아들 데려가서 사진도 같이 찍었어요. 근데 그 분이 한국에 오신지 6개월 밖에 안 됐어요. 저번에 제가 얘기한 적 있죠? 우리 아들을 하나원에서 석 달 동안 돌봐주시던 분이에요.
진행자 : 그 분 벌써 결혼하십니까?
박소연 : 네, 결혼 했어요.
문성휘 : 좋겠네...
진행자 : 어머... 어떻게요?
문성휘 : 아니, 이 기자 결혼을 그냥 하는 거지... 뭘 어떻게 해요...(웃음)
진행자 : 제 말은 어떻게 상대방을 만나서 이렇게 빨리 결혼을 결정하셨는지를 여쭤본 겁니다. (웃음)
박소연 : 결혼정보회사에서 소개를 해서 만났답니다. 결혼식장에는 신랑, 신부 부모의 이름을 써놨더라고요. 신부 어머니, 아버지 이름은 진짜 부모 이름을 써놨는데 여기 오시질 못하니까 신부 부모 자리엔 결혼정보회사 사장과 그 남편이 앉았습니다. 그리고 북쪽에도 그런 게 있어요. 남자가 여자 집으로 와서 상을 받고 같이 인사드리고 갈 때 아주 울음바다가 되는데 남쪽도 그런 게 있더라고요. 식 끝나고 신랑, 신부가 양쪽 부모님한테 인사드리는 시간이요. 근데 그 부모 자리에 진짜 부모가 앉아있질 못하니까.. 그게 참 저는 마음이 안 좋더라고요.
진행자 : 신부가 더 많이 울었겠네요...
박소연 : 저는 결혼식을 갈 때는 그랬어요. 예쁜 옷 입고 일생의 동반자를 만나 식장에 걸어들어 가는 게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는데 막상 가서 보니까 걱정이 되더라고요. 만약에 제가 남한에 와서 금방 이런 걸 봤다면 엄청나게 부러웠을 것 같아요. 근데 저도 이제 2년이 되잖아요? 좀 더 심사숙고해서 서로 잘 알고 하면 좋을 걸 6개월이면 너무 빠르지 않나, 걱정이 되더라고요.
문성휘 : 이자 이 기자가 놀란 것도 그거죠.
진행자 : 맞아요. 소연 씨랑 같은 걱정인거죠. 이거 이렇게 빨리 결정해도 될까?
문성휘 : 걱정할 것 없습니다. 제가 뉴스를 보니까 남녀가 첫 눈에 반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 단 1분이랍니다.
진행자 : 그래요, 그러니까 우리는 그냥 두 분의 행복을 빌어주면 될 것 같습니다.
문성휘 : 남한에 와서 보니까 결혼식 자체가 너무 판이하게 다릅니다. 남한의 결혼식을 보면 많이 간편화되고 편해졌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굉장히 아쉬움이 남아요.
진행자 : 북쪽 결혼식은 어떤 식으로 진행됩니까?
문성휘 : 먼저 남자들 집에서 결혼식을 하고 어버이 동상으로 사진 찍으러 갑니다.
박소연 : 맞아요. 그게 법입니다. (웃음)
문성휘 : 아니면 모자이크 벽화 앞에서 정중히 인사를 드리고 사진을 찍습니다. 일생동안 혁명 동지로써 우리 둘이 결합해서 수령님과 장군님께 충성을 다하겠다, 이런 의미죠. (웃음) 그 다음 오후에 여자네 집으로 갑니다. 맞나요, 소연 씨?
박소연 : 점심시간 12시부터 1시 사이에 신랑이 차려입고 조그마한 함짝을 들고... 문 기자는 생각 안 나요? 그 안에다 맨 아래는 입쌀을 깔아요. 그 위엔 돈이 좀 있는 집은 5555원, 아니면 555원을 넣습니다.
문성휘 : 5자를 맞춰 넣는 거죠. 오십시오, 재산이 들어오십시오... 이런 의미가 있어요.
진행자 : 함에 돈 넣는 건 처음 들어요. (웃음)
박소연 : 그리고 여자 속내의 한벌 넣고요. 그 함짝은 어린 남자 아이가 들고 들어갑니다. 신부 집 앞에 가선 신랑이 왔다고 소리를 치죠. 그럼 신부 집에서도 어린 남자 아이가 나와서 그걸 받고요. 북쪽은 여자 아이보다는 남자 아이에게 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자 집에서는 그 함짝에 들어있는 입쌀로 밥을 하고 또... 집에 큰상이 잘 없으니까 문짝을 떼서 상을 차립니다. (웃음) 문 기자님 생각 하시죠?
문성휘 : 그러고 보니까 어린 조카아이가 함을 들고 갔던 생각이 나네요. 소리치며 들어가거나 했던 건 그날 하도 멍해서 전혀 기억이 안 나고요. 여하튼 밥을 먹었고요. 그리고 그 밥 안에 꼭 계란을 넣죠. 한국에선 안 그래요?
진행자 : 네, 처음 들었어요. (웃음)
박소연 : 어머, 진짜요?
문성휘 : 계란은 자손을 많이 보라는 의미에요. 그 밥도 먹는 방법이 있습니다. 특히 군대 제대 되서 맞선을 보고 다음날 결혼하는 사람들 중에 욕먹는 사람이 있죠. (웃음) 미욱하게 밥 먹을 줄도 모른다고요. 왜냐면 숱한 사람들 보는데서 결혼식장에 차려진 밥을 다 먹진 못하잖아요? 위에만 퍼 먹으면 안 되고 꼭 위에서 아래로 직선으로 파먹어야 합니다. 그래야 계란을 먹죠. (웃음)
진행자 : 그러고 난 다음엔 어떻게 하시나요?
박소연 : 그 큰 상엔 수탉이 상의 중심에 있어야 해요. 그렇게 해놓고 사진을 찍고요. 데리고 온 상객들 식사를 시키고 일어나죠.
진행자 : 그렇군요. 남쪽 결혼식은 서양식과 전통식이 섞였어요. 결혼식은 집에서 하기보다는 아까 소연 씨가 다녀오셨다는 결혼식만 하는 웨딩홀이 있고요. 신부는 웨딩드레스를 입고 북쪽에서는 웨딩드레스 아시는지 모르겠어요?
문성휘 : 이젠 알만한 사람이 더 많죠. 평양에선 입는 집도 있다고 하고 드라마에도 많이 나오니까요.
진행자 : 딴단따... 하는 웨딩마치, 결혼 행진곡에 맞춰 아버지 손을 잡고 신부가 걸어 들어가면 신랑이 기다리고 있다가 신부를 맞이해요. 주례 선생님이 결혼에 대한 좋은 말씀을 해주고 결혼 서약을 하고 반지를 교환하고 하객들에게 인사하고 걸어 나오죠. 그리고 난 다음에 폐백이라는 걸 합니다.
박소연 : 폐백이 뭐에요?
진행자 : 신부가 시댁에 와서 시댁 어른들에게 인사드리는 례를 현대식으로 결혼식장에서 하는 건데요. 이거 북쪽에서도 하실 걸요? 왜... 신부가 시댁 친척들에게 준비해온 선물 드리면서 절하면 절값 주시잖아요? 그겁니다. 그런데 얘기를 하다보니까 함, 예단, 혼수... 뭐 이런 건 비슷한데요. 양쪽이 떨어져 있는 시간이 있다 보니 남쪽은 남쪽 사정대로 북쪽은 북쪽 사정대로 개량이 됐습니다.
문성휘 : 맞습니다. 결혼식 문화도 차이가 많이 납니다. 남쪽은 굉장히 간소화되고 일단 예식장에서 식사를 하고 나오면 끝인데 북쪽은 그게 좋아요. 밤새껏 오락회를 합니다. 남자, 여자를 조그만 베개위에 올려 세우고 노래를 시키고요... (웃음) 또 가족 친척들 모여 노래 부르고 그런 분위기는 참 좋죠. 그리고 북한은 특징적인 게 또 있어요. 누군가 한 명을 트집 잡고 심술을 부리는 사람이 꼭 있는데 그건 양쪽 집에서 막 짜고 들어요. 우리 집 식구들아 다 점잖다면 그날 그렇게 심술부릴 사람을 미리 정해서 내세우죠.
진행자 : 왜 그렇게 해야 해요?
문성휘 : 재미도 있고 위신을 세우자는 것도 됩니다. 이런 식입니다. 예단을 줄 때 다른 친척들은 다 곱게 받아요. 양말 한 켤레를 줘도 예쁘다, 고맙다, 잘 신겠다... 그러는데 유독 한 사람만 우뚤 우뚤하면서 '뭐야, 도대체 너 시누이한테 양말 한 켤레 가지고 완? 너 이렇게 하고 이 집에 들어올 수 있냐?' 그럼 막 옆에서 다른 친척들은 말리는 흉내를 내고 굉장히 재밌습니다. (웃음) 한국 표현으로 하면 짜고 치는 고스톱이죠. 근데 이게 한잔 마시고 취해서 진짜 주정이 되면... 그때부턴 아... 진짜 친척들이 막 말리고 안절부절 못하는 거죠. (웃음)
진행자 : 진짜 얘기 듣고 보니까 북쪽의 결혼식 풍경이 막 보이는 듯 합니다. (웃음) 북쪽은 항상 사정이 어렵다... 이런 얘기를 들어서 결혼식 같은 큰 대소사도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런 날은 잔치 같겠네요.
박소연 : 진짜 좋죠... 냄새도 좋고 재밌고요.
문성휘 : 그러니까 약혼식 한번 하려면 거의 일 년 동안 준비를 해야 합니다. 결혼 같은 건 애들 어렸을 때부터 결혼식 혼수를 장만하는 부모들이 많습니다. 례하면 윰 그릇 같은 것 차곡차곡 사서 궤짝에 넣어놓고 돈이 생겨도 이건 누구 몫이다... 떼어 놓고 모으죠. 한꺼번에 할 수가 없으니까요.
그리고 얘기는 자연스럽게 주을 도자기로 옮아갔습니다. 소연 씨도 시집 갈 때 어머니가 해준 주을 도자기가 그렇게 예뻤고 문 기자는 어머니가 동생 시집 갈 때 준다고 애지중지 아꼈던 주을 도자기가 생각난다고요...
남쪽에도 딸 혼수를 하나하나, 몇 십 년을 모으던 때가 있었습니다. 딸은 너무 늦게 시집을 가고 어머니는 너무 일찍 혼수를 모아서 기껏 모은 혼수품이 유행이 한참 지난, 골동품 혼수가 되는 게 코미디 희극의 소재가 되기도 했는데요. 이제는 그냥 신용카드 한 장과 물건을 보러 다닐 시간만 있으면 됩니다.
소연 씨는 이날 결혼식에서 딱 일 년 반 전의 자신의 모습을 봤습니다. 여자 혼자 처음 살아야할 낯선 사회를 맞닥뜨리는 두려움과 중국에 혼자 남은 아이를 데려와야 한다는 절박함, 그리고 견디기 힘들었던 외로움... 이걸 넘어온 지난 시간이 꿈같이 느껴집니다. 이 얘기, 다음 시간에 이어 가겠습니다.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오늘 여기까집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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