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연 씨는 지난해 11월 남한에 도착한 햇내기 입니다. 무산 출신으로 선전대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30대 중반의 여성인데요. 하나원 교육을 끝내고 본격적으로 남한 생활을 시작한지 이제 5개월...
<세상 밖으로> 이 시간에는 남한 정착 7년차, 자강도 출신 탈북 기자 문성휘 씨와 함께 박소연 씨의 남한 적응기를 하나하나 따라 가봅니다.
INS - 문 기자님도 남쪽에서는 대통령도 막 대놓고 비난하던데 그래도 됩니까?
오늘 얘기 시작합니다.
진행자 : 소연 씨, 텔레비전 자주 보십니까?
박소연 : 그럼요. 보도도 보고 드라마도 열심히 봅니다. (웃음)
진행자 : 보도 시간도 열심히 보시네요.
박소연 : 그럼요. 보도를 봐야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줄 알죠. 근데 보도는 진짜 남이랑 북이랑 많이 다릅니다. 북한 텔레비전 보도는 부정적인 내용이 나오지 않아요. 예를 들면 회계 책임자가 공장 기업소의 돈을 남용해서 물의를 일으켰다... 이런 내용은 전혀 나오지 않죠. 어느 공장을 현지 지도 했는데 발전도가 높아간다, 카리(티탄) 비료가 돈다... 이렇게 알려주는 식의 보도가 많죠. 그런데 남한의 보도를 보니까 비하하는 얘기도 많더라고요. 대통령 아들이 검찰에 갔다... 이런 보도도 나오고요. 그런 보도를 접하면 속으로는 굉장히 두렵습니다. 저렇게 권력 있는 사람들의 친인척을 건드렸다가 후과가 두렵지 않나... 솔직히 이런 심정으로 봤습니다.
진행자 : 북한 보도 시간엔 정말 사건, 사고 보도가 안 나오죠?
문성휘 : 안 나오는 게 아니라 안 내보내죠. (웃음) 북한과 남한 그러니까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언론의 차이가 큽니다. 자본주의 언론은 소식을 알려주는데 그치지만 사회주의 언론은 행동 방식까지 규정을 해줘요. 시청자들이 보도 내용을 들으면서 생각, 판단할 틈을 안 주고 글을 쓰는 사람이 그냥 다 결론을 내버리는 거죠. 이렇게 돼서 위대하다, 훌륭하다, 무조건 따라야 한다... 이렇게 결론을 내려버리는 겁니다.
진행자 : 남쪽에서는 기자들이 기사에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일인데요.
문성휘 : 그렇죠. 자본주의 세계 뉴스는 육하원칙에 근거해서 누가,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왜, 어떻게 여기까지 쓰면 끝인데 북한의 보도형식은 이런 육하원칙에다 결론을 덧붙이죠. 그리고 남한은 보도 시간 중 사건보도가 상당히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데 북한 등 사회주의권은 보도보다 긍정 교양기사, 소개기사 등이 많죠. 상대적으로 보도가 약합니다.
진행자 : 결국 소식, 정도 전달보다 주민 교양이 목적이군요.
문성휘 : 그렇습니다.
진행자 : 남쪽 텔레비젼 보도 시간은 사건 보도가 상당히 많은 시간을 할애합니다. 그래서 남쪽에서 살고 있는 저도 뉴스 보도 시간만 보면 참 이거 큰일이군... 이런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온통 나쁜 일들로 채워지는 때도 있거든요. 소연 씨는 더 했을 것 같은데요? (웃음)
박소연 : 맞아요. (웃음) 저 처음에 나와서 수원에서 사건이 크게 났었는데 진짜 무섭더라고요. 제가 하나원에서 나와서 처음 집에 텔레비전을 놓은 첫날, 그 보도가 나왔어요. 전기세 를 아끼려고 불을 끄고 텔레비전을 봤는데 뉴스 보다가 일어나서 다시 불을 켰다니까요. 아니, 남쪽은 왜 이렇게 무서운 일이 일어나지... 그랬습니다. (웃음)
문성휘 : 맞아요. 오원춘 사건이요... 그 사건으로 경기도 경찰청은 쑥대밭이 됐죠. 그건 남한 사람이 저지른 범죄가 아니라 중국 사람이 저지른 범죄인데요. 어떤 사람이 저질렀건 해당 지국 경찰이 책임을 져야합니다. 북한 같았으면 애초에 알려지지 않거니와 자기들끼리 다 덮어 버렸겠죠. 솔직히 그걸 가지고 경찰청장이 사표를 내고 해당 과장, 부장이 중징계 될 때 좀 딱하더라고요.
진행자 : 아랫사람이 잘못했으니 책임을 져야죠.
문성휘 : 자본주의 사회라는 게 언론은 그런 사건을 파헤칠 수 있고 사건 대해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무조건 책임을 져야하고... 그런 건 참 멋있어요.
박소연 : 근데 지금 저의 솔직한 심정은 너무 파헤치는 게 아닌가... (웃음) 아예 모르면 그냥 살겠는데 한국 텔레비전에는 교통사고, 살인 사건, 비리 사건까지 너무 다 나오니까 좀 두렵습니다.
진행자 : 그럼 좀 숨기고 보도하지 말까요? (웃음)
박소연 : 감히 그런 얘기는 못 하죠. (웃음) 제가 문 기자님처럼 앞으로 7-8년 남한 땅에 더 살면 그런가보다 하겠는데 저는 처음이잖아요? 한 개의 사상, 한 개의 생각만 존재하는 꽉 막힌 땅에서 살던 사람이 갑자기 막 다 드러 내놓고 파헤치고 열어 보여주는 세상에 오니까 저 자체도 좀 감당이 안 되는 면이 있습니다. 지금은 좀 두렵다는 생각이 앞섭니다.
문성휘 : 저도 상당히 복잡한 느낌이 있어요. 처음에는 자동차 사고가 났다는 사건 보도가 많이 나오니까 자동차로 출퇴근하는 것이 무섭더라고요. 근데 이제 그런 사건을 보면 그러려니 하죠. 시간이 지나면 좀 무감각해져요. 북한 같은 건 사건사고뿐 아니라 권력층의 부정행위, 비리까지 다 덮어서 문제가 되는데 남한 사회는 반대로 너무 파헤쳐서 이게 또 문제가 된다는 겁니다. 어떤 사건은 내부에서만 참고하고 공개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너무 지나친 게 아닌가요?
진행자 : 북쪽에서 오신 분들이 그런 지적을 많이 하죠. (웃음) 너무 심하게 모든 걸 다 공개하고 보여주는 건 아니지 않나...
박소연 : 그렇죠.
진행자 : 그런데 그럼 어떤 사고를 보여주고 어떤 사고를 숨겨야 할까요? 어떤 기준을 갖고 누가 그런 걸 결정할 것이냐... 그런 문제가 있습니다.
문성휘 : 맞아요. 그런 문제가 있죠. 비정부 기구, 시민단체들이 어떤 사건에 대한 통제나 검열이 있으면 들고 일어나지 않습니까? 언론관련 시민단체들이 반발하면서 막 따집니다. 감추는 이유가 뭐냐.... 저희들이 보기엔 너무 많이 공개하지 않나 싶은데 말입니다. 어쨌든 남쪽에선 기자들이 다 지방 구석구석까지 쫓아다니며 작은 사건도 다 보도하니 드러나는 건 많지만 어쩌면 북쪽보다 범죄가 적은 사회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남쪽은 모든 것을 낱낱이 다 보도하니까 실제로 그렇지 않아도 범죄가 엄청 많은 것처럼 느껴지는 거죠. 그래도 어쨌든 좀 거르는 기준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행자 : 근데 사건을 거르고 어떤 사건은 보도하지 않고... 이런 게 바로 언론 통제나 보도 검열이 되는 것이잖아요? (웃음) 나쁜 점보다는 좋은 점이 크니까 검열이나 규제를 없애고 좀 더 투명하게 공개하려고 노력하는 겁니다.
문성휘 : 아, 몰라요. 어쨌든 내가 보기엔 너무해요. 좀 합의를 해서 주민들에게 불안감을 주는 뉴스는 적당히 내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행자 : 탈북자들이 가장 남한 텔레비전을 보면서 많이 하는 질문이 왜 남한 텔레비전에서는 대통령이고 유력 정치인이고 그렇게 대놓고 비판을 하느냐... 아까 소연 씨도 저한테 똑같이 물어봤는데요.
박소연 : 맞아요. 처음에 남한 텔레비전에서 한 70세 정도 된 노인을 인터뷰한 걸 봤어요. 기자가 공원에 앉아있는 노인들에게 가서 뭘 물어본 것 같은데 막 화를 내면서 아니... 그 사람이 노인들을 위한 정책을 해준다고 했는데 도대체 지금 해준 게 뭐냐고 막 이러면서 주먹을 흔들면서 성을 내더라고요. 아니, 리명박 대통령이면 북한에선 김정일 같은 존재인데 저래도 되나... 북한 같으면 그런 말을 했다간 이슬로 사라졌을 거예요. 아니, 저걸 리명박 대통령은 바빠서 못 보겠지만 그 부하들은 보겠는데 그 사람들이 저걸 꼬장하면(고자질하면) 저 할아버지가 과연 무사할까? 그 노인은 너무 당당하게 말하는데 저는 놀랐어요. 문 기자님은 안 그랬어요?
문성휘 : 아휴, 저도 처음엔 굉장히 놀랐어요. 그리고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저희들 이전 세대들. 그러니까 97년, 98년 즈음에 들어온 탈북자들은 경찰에 굉장히 많이 신고했대요. 길거리 공원에 갔는데 젊은이들이나 늙은이들이 모여서 대통령도 욕하고 막 미국이 어떻고 하면서 욕을 하더래요. 그래서 듣다가 돌아앉아서 슬쩍 전화로 신고를 했대요. 여기 간첩이 있다고 잡아가라고...(웃음)
진행자 : 아니, 이거 실화에요?
문성휘 : 네, 그럼요. 노원 쪽에서 실제 있었던 일입니다. 경찰도 출동하고 그랬답니다. (웃음) 그런데 저도 하나원에서 비슷한 일을 겪었습니다. 하나원에서 교육 기간 중 역사탐방을 갑니다. 버스를 타고 서울 시내 역사 유적지를 돌아보면 관광을 하는 건데요. 저희가 역사 탐방을 갔을 때 우연하게 저희가 탄 버스가 시위 현장을 지나치게 됐어요. 어떤 시위였는지는 생각이 안 나는데 숱한 사람들이 머리에 띠를 두르고 플랜카드를 들고 막 구호도 외치고 그랬습니다. 그 현장 앞으로 버스가 지나가는데 저는 너무 기분이 나쁘더라고요. 저뿐만 아니라 그 때 버스 안에서 도대체 뭐하는 거냐고 거칠게 항의하고 그랬습니다. 남쪽식 표현으로 짜고 치는 고스톱이다... 분명히 남한 사회는 시위도 할 수 있다, 이렇게 자유롭다는 걸 탈북자들에게 보여주려고 일부러 이걸 조직하고 그 가운데로 버스를 몰아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진행자 : 네? 왜 그렇게 생각하셨어요? 그 버스에 함께 타신 한국 직원들이 상당히 당황했겠는데요? (웃음)
문성휘 : 그 분들은 아셨던 것 같아요. "또 한 방 터졌는데요. 여기 사회라는 게 이렇습니다. 앞으로 사회 나가보시면 이런 거 자주 보실 거예요. 여긴 자기 의견대로 표현하는 사회니까, 이게 바로 표현의 자유라는 겁니다..." 이러는데 우리 씩 웃었죠. 자식들 표현의 자유를 우리에게 보여주려고 이러는 거냐... 근데 나와서 오랫동안 지내보니까 우리가 참 어리석었다... (웃음)
진행자 : 소연 씨는 역사 탐방 가서 어땠어요?
박소연 : 저는 시위는 못 보고 프랑카드(플랜카드)를 보고 굉장히 놀랐어요. 하나원에서 병원 갔다 오는 골목 옆에 무슨 농장인데 냄새나서 못 살겠다, 뭘 없애 치워라... 크게 프랑카드를 붙였더라고요. 북에서는 무슨 공장을 짓겠다고 하면 항의라는 걸 몰라요. 그 프랑카드를 보고 여기가 확실히 딴 세상이구나 느꼈습니다... (웃음)
소연 씨는 아침에 눈 뜨자마자 텔레비전을 켠답니다. 텔레비전 리모컨 그러니까 요쿵지를 옆에 놓고 이리저리 통로를 돌리다보면 귀부인이 된 것 같답니다. 요즘 남쪽엔 텔레비전 보는 시간이 아깝다고 아예 텔레비전 없애는 집이 많은데 그래서 그런지 텔레비전이 너무 재밌다는 소연 씨의 말이 새롭네요. 텔레비전 통로 속으로 보이는 남한 사회는 아직까지 요지경, 이런 요지경이 제대로 보이려면 남한 사회에 대한 여러 가지 오해들이 풀려야겠습니다.
<박소연의 세상밖으로> 오늘 시간 여기까지입니다. 다음 주 이 시간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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