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박소연 씨는 2011년 11월 남한에 도착한 햇내기 입니다. 무산 출신으로 선전대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30대 중반의 여성인데요. 하나원 교육을 끝내고 본격적으로 남한 생활을 시작한지 이제 근 일 년...
<세상 밖으로> 이 시간에는 남한 정착 7년차, 자강도 출신 탈북 기자 문성휘 씨와 함께 박소연 씨의 남한 적응기를 하나하나 따라 가봅니다.
INS - 네, 너무 다르고... 어디서부터 다르다 얘기하려면 끝이 없고 일단 형식부터 다 다르더라고요. 사람들이 가득 모여 있는 홀에 가니까 북한식으로 말하면 창문짝만한 사진을 전시해놓고 진짜...
지난주, 소연 씨는 남한에 와서 처음으로 결혼식장에 다녀왔습니다. 하나원에서 소연 씨의 아들을 3개월 동안 돌봐줬던 고마운 여성이 이날의 주인공이었는데요. 이 여성은 여러모로 처음 소연 씨가 남한에 왔을 때의 상황과 비슷합니다. 결혼식에 아들의 손을 잡고 간 소연 씨... 이 여성은 아들의 손을 다시 잡기 위해 일생의 반려자를 찾았습니다.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지난 시간에 이어서 결혼식 얘깁니다.
박소연 : 제가 이번에 남한 결혼식까지 북한 결혼식, 중국 결혼식 총 3개 나라 결혼식을 봤어요. 제가 중국에서 숨어살 때 천진이라는 도시의 결혼식 식당에서 일했어요. 국적이 없다보니 화장실이나 웨딩홀 청소를 했습니다. 중국 결혼식은 자동차 결혼식이에요. 결혼식장 앞에 새빨간 주단 같은 걸 쭉 깔고 신랑, 신부는 뚜껑이 없는 차, 모자가 없는 차를 타고 들어옵니다. 그리고 그 뒤로 20-30대 자동차가 따라 들어오면 폭죽이 파바바박 터지는데 앞이 안보일 정도에요. 그리고 중국은 앉은 자리에서 식사도 하면서 결혼식을 봅니다. 신랑, 신부가 들어가면 앞에 화면에 딱 나오는데 지금도 잊혀지질 않는 게 신부가 엄마한테 인사할 때 중국 노래가 나오는데 마마 어쩌구... 막 그렇게 나와요. 말은 몰라도 엄마 날 키우느라 욕봤다... 이런 뜻인 것 같아서 빗자루 들고 서서 한참을 울었습니다. 중국 결혼식 분위기는 전쟁 포 소리같이 폭죽도 막 터지고 확실히 좀 요란한 면이 있어요.
문성휘 : 그거에 비하면 남한 결혼식은 너무 조용하죠?
박소연 : 남한 결혼식은 정말 조용하죠. (웃음)
진행자 : 3개국 결혼식 중에 어디가 제일 맘에 드세요?
박소연 : 고향 결혼식이요. (웃음)
문성휘 : 저도 북한의 결혼식이 더 나은 것 같아요. 왜냐하면 북쪽이 더 가족적인 분위기가 있는 것 같고... 남한은 너무 정례화 돼 있어요. 그리고 뒤끝이 없어.... 결혼식이라는 게 오랜 추억이 돼야하는데 식이 끝나면 그냥 끝이에요. 좀 심술부리는 삼촌도 있고, 강짜로 그 좁은 배게 위에 올라서서 노래도 같이 부르고... (웃음) 그래야 뭔가 남을 텐데 여기 결혼식은 도대체 뭐가 남을까 이런 생각이 들어요.
진행자 : 남쪽에서도 결혼 피로연이라고 있어요. 결혼식이 끝나고 나면 신랑, 신부 친구들이 다 같이 모여서 북쪽에서 배게 위에 올라가서 노래 부르는 것처럼... (웃음) 술도 한잔 마시고 얘기도 하고 그러다 친해져서 연애도 하고 나중에 결혼하는 사람도 나오기도 했는데요. 요즘에는 피로연도 거의 없고 결혼식 끝나면 그날로 바로 신혼여행을 떠나는 추셉니다.
문성휘 : 맞다.... 북한은 신혼여행이 없어요. 한국은 진짜 결혼식보다 신혼여행이 의미가 있겠네... 요샌 너무 외국에 훌쩍 잘 나가요. 연예인도 그렇고 일반 사람도 결혼식 끝나면 동남아, 일본 등 이런 데로 신혼여행을 가는데 아니 삼천리 금수강산에서 금수강산을 구경해야지 결혼식 하자마자 외국엔 왜 나가냐, 저 굉장히 불만입니다.
박소연 : 아니, 그게 왜 문 기자님이 불만이세요? (웃음) 근데 남한은 주례가 있잖아요? 주례 선생이 앞에 서서 신랑이 신부를 잘 해주고... 이렇게 선서를 하는데요. 북한은 결혼식 끝나면 오락회 같은걸 합니다. 그럼 누가 일어나서 '오늘 결혼식을 축하합니다. 위대한 수령님과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 품속에서 하나의 세포로 발전하는 여러분을 축하하는...' 이런 말을 꼭하죠. 남한은 그런 게 없어서 너무 좋아요. 우린 그 말을 꼭 해야 해요.
문성휘 : 오늘 위대한 장군님과 은혜로운 당의 품속에서 어느 동무와 어느 동무의 새로운 가정이 태어났습니다. 노동당 시대의 축복을 안고... 뭐 이런 주절주절 구절이 있어요. 근데 그걸 생략하고 나면 그 다음에는 재밌습니다.
박소연 : 근데 이걸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꼭 이렇게 시작을 해요. 이젠 몸에 밴 거죠. 그런 말 할 때는 좀 어색한 분위기가 되지만 어쩔 수 없고요...
문성휘 : 근데 내가 어쩌다 뭔가 문제가 있어서 적대분자로 몰릴 때는 그런 것까지 정말 다 파헤치거든요. 애네들은 결혼식 때도 그런 말을 안 한 애들입니다... 누가 그러면 문제가 될 수 있어요. 그랬다면 사상검토 대상이고 할 말이 없거든요.
박소연 : 그리고 여기는 신부가 꽃다발...부케를 뒤로 휙 던지니까 서로 잡겠다고 하더라고요. 북한에서는 결혼식 날 꽃은 동상에 드리죠... 친구한테 던지고 그런 문화가 없어요.
문성휘 : 그걸 준비해서 남자가 꽃대를 쥐었다면 그 밑에 종이 받침은 여자가 손으로 받치고...
박소연 : 정중히요.
문성휘 : 그렇지. (웃음) 그리고는 조금 물러서 허리 숙여 인사를 하고, 조금 내려와서 돌아서서 동상 정면이 보이게 사진을 찍는다.... 그게 결혼식 사진이에요.
박소연 : 그래요. 그게 책입니다. (법칙입니다.)
진행자 : 남쪽 결혼식에서 신부가 손에 든 꽃다발, 그걸 '부케'라고 해요. 결혼식이 거의 다 끝나면 그 꽃을 뒤로 던지는데 그걸 받는 사람이 몇 개월 안에 결혼을 못하면 향후 몇 년간 결혼 못한다는... 이건 그냥 속설인데요... 그래서 부케를 받는 사람은 미리 약속을 해서 주로 결혼 예정이 있는 신부 친구가 받습니다.
문성휘 : 여기도 짜고 치는 게 있네... (웃음)
진행자 : 근데 소연 씨, 처음 가는 결혼식인데 부조금 얼마 낼까 고민되지 않았어요?
박소연 : 제가 부조 얼마나 해야 하는지 아는 분께 물어봤어요. 3만원, 5만원... 잘 아는 사이는 10만원이라고 하더라고요. 전 사실 제 수준에 맞춰서 5만원, 50달러 정도 할까 했어요. 근데 제 아들을 석 달 동안 걷어 주신 분이고 특히 부조 봉투에 누가 냈는지 이름을 쓰더라고요. (웃음) 그래서 십만 원 넣고 아들 이름을 썼네요. 근데 그 분이 한주일 전에 청첩장을 주러 저희 집에 왔었습니다. 온 지 반년 됐는데 결혼 한다고 해서 전 정말 깜짝 놀랐어요. 1년 먼저 온 것도 선배라고 저한테 뭘 묻더라고요. 자기가 결혼 한다고 하니까 친구들이 전화를 해서 남자가 결혼하면 한 달에 생활비를 얼마 주겠다고 하는지 물어본대요. 그걸 꼭 약속을 받고 결혼을 해야 한다고 그러더랍니다. 그리고 얼마 전엔 시누이 될 사람이 이 여성분의 집에 와서 보고는 집이 너무 텅 비었으니까 돈 2백만 원을 주면서 가구를 사라고 했답니다. 또 그걸 친구들한테 자랑을 했더니 도대(도대체), 돈 2백이 뭐냐고, 너무 적다고 하더랍니다. 제가 시누이가 준 2백 만 원을 액수만 보지 말고 그 마음을 보라고 암만 돈이 많아도 어디 결혼하기 전에 가구 없다고 챙겨주는 시누이가 어디 있냐고 너무 괜찮은 것 같다고, 생활비 같은 건 둘이 알아서 하고 그런 말에 귀를 기울이지 말라고 하니까 그런 말을 해주는 사람이 없었답니다.... 아니, 왜 우리 탈북자들이 그렇게 고생하고 살았는데 남한에 와서 부정적인 것만 먼저 보고 그런 충고를 할까 참 안타까웠어요.
문성휘 : 잘 모르면 나쁜 점이 먼저 보이는 거죠.
진행자 : 남한 사람들도 결혼하면서 생활비를 얼마 줄지, 그런 거 정하고 결혼하는 사람 거의 없을 겁니다...
박소연 : 그런데요. 그걸 물어보는 그 분의 모습을 보니까 마치 1년 전의 제 모습 같았습니다. 저도 그런 얘기를 정말 많이 들었거든요. 그런 걸 딱 정해야 한다... 그 여자 분이 결혼을 좀 너무 서둘렀다 싶으면서도 같은 여자로서 이해가 되는 게 저도 아들이 오기 전에는 혼자 살았는데 미칠 것 같더라고요. 하나센터 다닐 때는 새벽에 아파트 의자에 나와 앉아 막 울었어요. 너무 외로우니까.... 그 과도기를 넘기기가 참 힘들었어요. 그 분은 고향에 언니가 앓는데요. 돈을 보내줘야 하는데 정착금을 타서 브로커 비를 물었고 아들도 데려와야겠는데 돈이 없답니다... 정말 딱 1년 전 제 모습 같았습니다. 결혼할 남자가 돈 2백만 원을 줘서 북한에도 보냈고 이제 어떡하나 힘을 합쳐서 아들도 데려오기로 했답니다. 결국은 방법이 다르다 뿐이지 결혼을 빨리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찾은 길이 나쁜 길은 아니잖아요.
문성휘 : 어느 세상이나 똑같아요. 돈이 많아도 서로 맞지 않으면 결혼 생활은 정말 지옥이구요. 북한에 있을 때도 그랬잖아요? 가정이라는 게 이가 맞아 웃음꽃이 피면되는 거지 굳이 재산....? 그런 건 필요 없는 것 같아요.
박소연 : 제 주변에 일하시는 분들 보면 저녁에 만나서 식당도 같이 가고 이게 생활이 아닐까 싶어요. 지금은 대화가 되는 사람, 맘이 맞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요. 북한처럼 돈 벌 장소가 없는 건 아니니까 내 맘이 편하고 날 이해해 주는 사람이 우선이다 싶어요. 전 작년까지만 해도 돈이 우선인줄 알았어요.
문성휘 : 자본주의 사회가 꼭 그렇진 않아요.
진행자 : 그런데 왜 그렇게 돈이 중요하셨을까요?
박소연 : 돈이 없으면 북한에선 죽어야 하잖아요. 누구한테 방조를 받아요? 돈에 대한 강한 압박감, 내가 이 돈 없으면 내 새끼 배 굶기고 죽는다는 생각이 있죠. 진행자 : 북한에서는 돈 밖에 믿을 게 없다... 근데 소연 씨 좀 달라졌어요. 기억하는지 모르겠는데 소연 씨도 막 선보고 결혼하고 싶다고 그랬잖아요? 우리가 그렇게 천천히 시간을 가지고 사람을 보고, 잘 알고 나서 해도 늦지 않는다고 할 때 귓등으로 들었었는데요. (웃음)
박소연 : 그랬어요. 맞아요. (웃음) 그때는 속으로 좀 서러웠습니다. 자기들은 다 짝이 있으니까 남의 속도 모르고 그런 소리를 한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내가 누구한테 옛날에 제가 들은 충고를 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문성휘 : 아 진짜... 나도 정말 소연 씨가 불만이었고요. 진짜 그때 방송을 여기 틀어놓고 싶네요.
박소연 : 저도 지금은 조금 뿌듯해요. 아이도 내 힘으로 데려왔고 그 빚도 다 물었고... 이제는 잘 살지는 못해도 평범하게 살 수는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문성휘 : 평범하게 사는 게 행복한 거예요.
진행자 : 그 평범한 삶이라는 게 쉬운 삶은 아니죠...
박소연 : 어쨌든 앞으로 저도 결혼도 하고 웨딩드레스도 꼭 입고 싶어요!
문성휘 : 그냥 드레스 입고 사진이나 찍고 그러면 돼요.
박소연 : 저는 웨딩드레스 입고 싶어요. 그리고 방송하고 있는 때 결혼을 빨리 해야 부조도 좀 챙기고... (웃음)
인생은 항상 그 나이에 겪고 넘어야할 고비가 있듯이 정착 생활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이제 한 고비를 넘은 소연 씨는 두 번째, 세 번째 고비를 넘어야겠고 실제로도 그렇습니다.
사실 겪은 일보다 겪어야할 일이 더 많지만요. 다행히 예전보단 막막하지 않은 듯 보입니다. 제대로 된 선택을 할 수 있는 정보도 있고 자신감도 있고 무엇보다도 옆에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 하나 넘어가는 고비가 평범하듯 행복한 삶으로 가는 바른 길이라고 믿어봅니다.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오늘 얘기 여기까집니다. 다음 주 이 시간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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