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예찬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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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무산 출신 박소연 씨는 2011년 남한에 도착해 올해로 남한에서 생활 5년차를 맞고 있습니다. 갖은 고생 끝에 2012년 아들도 남한으로 데려와... 지금은 엄마로, 또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 밖으로> 이 시간은 소연 씨가 북한을 떠나 남한이라는 세상에서 보고 겪은 경험담을 전해드립니다. 남한의 신기한 세상만사를 얘기하다고 보면 떠오르는 고향의 추억들도 함께 나눠 봅니다.

INS - 국수 싫어하는 사람은 북한 사람 아니죠.

남북 사람들이 맞서 다 비등비등할 수 있겠지만 한 가지 월등하게 북쪽 사람들이 앞서는 것이 있습니다. 국수 먹는 속도, 먹는 량, 먹는 횟수... 국수 사랑입니다.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지난 시간부터 국수 얘기 이어가고 있는데요. 오늘 조금 빗나갑니다. 국수로 채우지 못했던 배고파 미안했던 얘깁니다.

문성휘 : 큰 바케츠에 계란을 하나 가득 쌓아 놓고 배 터질 때까지 싫어서 못 먹을 때까지 먹어보는 게 소원이었습니다.

진행자 : 그 소원 이루셨습니까?

문성휘 : 끝내 못 이뤘습니다. (웃음)

박소연 : 제가 아는 탈북자가 사실인지는 모르겠는데 70알을 먹었습니다. 직행하신 분인데...

문성휘 : 중국하고 하나원 교육 시설에 들어가면 하루에 한두 알 씩 주는데 석 달 먹다나니 계란도 질리는 날이 있더라고요.

박소연 : 저도 그 분께 여쭤봤더니 마지막엔 입에서 닭똥 냄새가 나더랍니다. 얼마나 먹었으면...

진행자 : 설마 한 자리에서 다 드셨다는 얘기는 아니겠죠?

박소연 : 아뇨, 한 자리에서 먹었다고 생각해요. 북한에서 직행오신 분이고 배 영양가 없는 사람은 먹을 수 있어요. 북한 사람들 배는 알속이 없는 풀떼기만 먹어서 위가 잔뜩 늘어나있습니다.

문성휘 : 먹어요. 어떻게 먹냐...

진행자 : 에이...

박소연 : 남조선 동무들은 안 믿네! 먹는다는데요! (웃음)

문성휘 : 닭똥 냄새가 나는지는 모르겠는데 우리 어렸을 때는 옛날 명태 많이 나올 때는 명태 뼈, 껍데기를 한 킬로 모아서 가면 악착한 놈들... 그거 한 킬로 모으는 게 쉽지 않은데 계란 두 알을 줬습니다.

진행자 : 너무 짜네요.

문성휘 : 그렇죠. 짜죠. 그런데 그걸 갖고 집에 가면 뺏길까봐 그 자리에서 구멍을 내서 쏙 빨아 먹어버리죠.

박소연 : 생달걀 맛있죠. 저는 농촌 장사 다녔지 않습니까? 닭이 이상한 소리를 치면서 알을 놓았는데 간혹 집에 주인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닭이 품고 앉았는데 이렇게 보니까 불편했던지 잠깐 내려왔는데 계란이 이렇게 보여요. 슬쩍해서 변소에 가서 구멍 이래 위로 내서 쏙 빨아 먹었는데 그게 어찌나 맛있었던지...

문성휘 : 저도 농촌 가서 몰래 먹은 경험이 있네요.

박소연 : 죄송합니다. 저희가 슬쩍 먹어서...

문성휘 : 그런데 제가 참... 이 얘기를 하기 너무 힘이 드는데요. 그 집이 생활이 엄청 어려운 집이었고... 나도 뭔가 장사나 할 것이 있나 해서 시골에 갔던 것인데 배고팠고. 그래서 그냥 먹었는데 지금도 그 죄책감이라는 게 말할 정도가 안 됩니다. 그리고... 내 일생에 먹을 것을 갖고 죄를 진 일이 있다면... 제가 아주 어렸을 때 일입니다. 탈북자들 흔히 80년대 북한이 잘 살았다고 하는데 그렇게 상황이 좋지 않았어요. 그때 어머니들은 동네에서 계를 했습니다. 배급을 탈 때니까 배급이 나오면 쌀을 한 집에 몰아주는 것이죠. 계를 10명이 한다면 배급 나온 날 쌀 한 킬로씩 무조건 한 집에 몰아주는 방식으로요. 그러면서 순서가 돌아가는 건데... 한 번이라도 실컷 배 불리 먹어보자 그래서 이렇게 한 것이죠. 그러니까 80년대에도 항상 배는 고팠습니다. 그때 닭 공장이 있었지만 토종닭은 정말 귀했었고요. 그때가 북한으로 말하면 제가 소학교 때였는데 여름이면 연기도 나고 집안이 더워지니까 밖에 가마를 놓고 불을 땠습니다.

박소연 : 땅가메...

문성휘 : 맞아요. 근데... 그 땅가메에 닭을 삶는 겁니다. 우리가 지나가다 봤어요... 누구 집인지도 아는데.

박소연 : 아... 저는 무슨 얘기인지 알 것 같아요... 어떡해요...

문성휘 : 이 집에서 왜 닭을 삶냐, 어디서 닭을 갖고 왔냐... 우리끼리 가마뚜껑을 열었는데 부글부글 끓는 닭을 누군가가 확 쥐었습니다. 그래서 가지고 나왔는데... 근데... 나오는 순간 보니까 그 엄마가 막 소리를 치더라고요. 그 주변 창고에서 먹고 나와 보니까 그 엄마가 막 울더라고요... 우는데... 너무 잘 못 했다... 큰 죄를 지었구나. 후에 집에 왔더니, 아버지 어머니에게도 지금까지도 그 얘기를 못 했습니다. 그 집 애 이름도 생생히 기억나는데... 걔 아버지가 간암이 걸려서 오늘만 내일만 하는데 아버지 줄려고 끓인 걸 어느 놈들이 훔쳐갔단다. 진짜 놀랐습니다. 마지막 가는 사람에게 줄려고 한 걸... 아직까지도 죄책감이 많이 들어요.

진행자 : 부모님께 털어놓고 다시 사다주면 안 됐었나요?

문성휘 : 그때만 하더라도 장마당이 지금 같지 않습니다. 열흘에 한 번씩 농민장이라는 게 설 때이고. 그래서 정말 구하기가 힘들었습니다.

박소연 : 여기는 마음만 먹으면 먹지만 저희는 닭곰이라는 걸 일 년에 한번은 할 수 있었나? 집에 허약한 환자가 있으면 닭곰을 해주고. 그러니까 지금 꿈에서도 쌀 배낭이나 라면 봉투를 쥐고 집에 가있다고요. 저도 거기서 그냥... 막 죽지 못해 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식량 고생을 안 해본 사람은 없습니다. 시장에 가서도 입쌀을 살 때는 제 자체가 뿌듯했어요. 그냥 쓱 씻어서 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옥수수쌀, 보리를 다 섞어서 물에 불렸다가 해먹고... 이렇게 힘들게. 그러나 한 번도 힘들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네요. 해먹을 것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삶이었습니다. 이런 쌀이라도 많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이 한번 배불리 먹여봤으면. 그런데 남한에 와서는 쌀 한 지대 먹기가 너무 힘드네요. 스무 킬로 자루를 터치면 한 3개월은 먹는 것 같습니다.

가마에서 홀린 것처럼 그 뜨거운 닭을 들고 뛰었던 철 없는 아이들... 문 기자는 채 삼키지 못 하고 목을 콱 메운 퍽퍽한 닭고기처럼 그 때의 미안함이 마음에 걸려있습니다.

사람들이 가난과 배고픔을 그토록 싫어하는 이유도 이런 것 같습니다.

염치, 부끄러움, 인정...

가난과 배고픔은 우리가 인간으로 지켜오던 것들을 더 이상 지킬 수 없게 만듭니다.

인간답게 살고 싶었다... 탈북자들이 북한을 떠난 이유를 묻는 기자들에게 자주 내놓는 답입니다. 오늘따라 그 말이 가슴이 와 닿습니다.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여기까집니다.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이현주, 문성휘, 박소연 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