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연 씨는 지난해 11월 남한에 도착한 햇내기 입니다. 무산 출신으로 선전대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30대 중반의 여성인데요. 하나원 교육을 끝내고 본격적으로 남한 생활을 시작한지 이제 5개월...
<세상 밖으로> 이 시간에는 남한 정착 7년차, 자강도 출신 탈북 기자 문성휘 씨와 함께 박소연 씨의 남한 적응기를 하나하나 따라 가봅니다.
INS - 아니 남쪽도 겨울에는 집을 덥혀야 살텐데 왜 집에 굴뚝이 없어요? 오늘 얘기 시작합니다.
진행자 : 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됐습니다. 남쪽은 겨울 채비가 별 게 없지만 일단 올해 춥다니까 마음의 준비는 필요할 것 같습니다.
문성휘 : 네, 그 말 들으니까 새삼 생각이 나는데요. 북쪽은 겨울이 다가오면 진짜 근심인 게 땔감을 못 마련하면 얼어 죽거든요. 아휴... 한국 사람들 겨울 준비가 뭘까요?
진행자 : 내복 준비하고 계절에 맞게 옷 꺼내 놓는 거요?
문성휘 : 맞다... 소연 씨, 북한에서 겨울 준비하는 거 생각 좀 나요?
박소연 : 그럼요. 남쪽은 계절이 바뀐다고 해서 근심스럽거나 그런 것은 없죠? 제 보기엔 그런 것 같습니다.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추우면 옷을 한 벌 꺼내 입으면 되죠. 그런데 북한에선 날씨가 추워지면 근심도 함께 다가옵니다. 옷은 입던 옷을 그냥 입으면 되지만 화목이 진짜 금값이거든요. 쌀은 옆집에서 꾸어서라도 먹을 수 있는데 나무는 어디서 꾸지 못 하거든요.
문성휘 : 맞다! 그래요 나무는 어디 가서 꾸지 못해요...
박소연 : 문 기자님은 추운 겨울에 남한에 들어오셨다고 했죠? 사회에 바로 나와서 어쩌셨어요? 겨울이 돼서 집이 분명 추웠겠는데...
문성휘 : 애초에 여기는 난방이 잘 돼 있잖아요. 첫날에 제가 난방을 켤 줄 몰라서 떨면서 지낸 적이 있어요. 근데 그것도 아침에 와서 난방을 켜주니까 바로 따뜻해지더라고요. 난방비도 한 달에 한 3-4만원 선으로 쌌고요.
진행자 : 한 30-40 달러 나오셨다는 건데 아파트 치고도 싸네요. 남한은 아파트가 땅 집(주택)보다 난방비가 덜 나오죠?
문성휘 : 지금 사는 집은 좀 커서 한 달에 한 7-8만 원 정도 나오는데요. 이걸 북한이랑 비교하면 하루 종일 밖에 나가서 일하고 집에 들어올 때 집식구들이 먹을 쌀 한 키로, 나무 한 열 가지 사갖고 오거든요. 근데 이걸 갖고는 집도 못 덥혀요. 그냥 밥이나 해먹는 거죠...
박소연 : 저는 하나원에서 4월 달에 나왔는데요. 나올 때 교육을 해줘요. 남한은 다 온수난방이다... 근데 그게 무슨 소린지 몰랐어요. 얘기로만 듣고 직접 살아보지 않았으니까요. 야...4월이면 봄날이 얼마나 으스스해요. 그래서 저는 좀 따뜻해진 다음에, 여름에 나갔으면 했어요. 그런 마음이었는데 나와서 보니 진짜 이상했던 게 암만 둘러봐도 굴뚝이 없어요.
문성휘 : 그렇죠?
진행자 : 북한은 아파트에 굴뚝이 있어요?
문성휘 : 그럼요! 아파트에도 굴뚝이 있죠. 평양 빼곤 지방엔 다 있습니다.
박소연 : 문 기자님도 아파트에서 사셨어요?
문성휘 : 네, 저도 아파트에서 살았습니다.
박소연 : 그럼 잘 아시겠네요. 아휴...
문성휘 : 아휴...
박소연 : 아랫집에서 불 때면 우리 집에 앙내 (또는 맨내, 아궁이에 불 땔 때 나는 나무 연기 냄새)가 꽉 차서 막 내려가서 남들이 불 땔 때 같이 좀 때자고 이웃끼리 팔을 걷어붙이고 난리예요. 근데 여긴 굴뚝이 없으니까 진짜 이상하더라고요.
문성휘 : 막 별나게 굴뚝 소리가 나오고 오랜만에 막 앙내, 맨내... 이런 말들 나오니까 진짜 생각 많이 나네요. (웃음) 진짜 아파트 사는 것이 장난 아니에요. 불 땔 때 바람이 거꾸로 불기라도 하면 연기가 윗집 부엌으로 다 나오죠. (웃음) 아 참, 인터넷에 찾아보면 북한 아파트 사진들 한번 보세요. 아파트 굴뚝들이 대단하거든요? 아파트를 처음에 지을 때는 굴뚝도 보기 좋게 아담하게 세워놓는데 그 작은 굴뚝으로 그 많은 세대들의 연기를 다 어떻게 뽑아요? 나무를 갖고 긴 굴뚝을 만들어 거기에 덧댑니다. 그러다가 여름철에 한번 외국인이라도 온다면 난리가 나요. 그걸 다 치워야 되거든요. (웃음) 참, 또 생각나는 게 있는데요. 굴뚝이 잘 메요. 그럼 굴뚝 꼭대기에서 쇠절구공이를 줄에 매서 아래까지 내려던져요. 쿵쿵... 그리고 또 아궁이에 불을 때면 고질이라는 게 붙는데 그걸 떼어 내느냐 까맣게 돼서... 아휴, 남한은 그건 진짜 걱정 없구나...
박소연 : 지금도 그래요 북한은. 그런데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아 걱정이네요. 굴뚝이 다리가 있어서 그게 어디로 가진 않을 것이고...
진행자 : 남쪽도 옛날 아파트들은 굴뚝 있었는데요. 그건 연탄 때거나 중앙 난방할 때 얘기고 요즘은 아파트라고 해도 집들이 개별난방을 하고 각 집 마다 온수난방기가 있으니까 굴뚝이 사라진 거죠.
박소연 : 남쪽은 그래도 체계적으로 발전했어요. 옛날에 연탄 때던 것이 도시 가스로 발전하면서 굴뚝도 사라지고 그랬는데 북한은 반대에요. 우리 90년대 고등학교 다닐 때는 학교에 '스띰'이라는 게 있었어요. 더운 물로 난방을 해주는... 근데 그거 이제는 못 써요. 다 떼버렸습니다. 이제는 그걸 덥혀 돌릴만한 화력이 없으니까요.
문성휘 : 아, 생각난다. 남쪽은 스팀이라 하죠.
박소연 : 그게 발전해서 온수난방을 하게 됐어야 하는데 이젠 그것마저 종적을 감췄어요. 아직도 둥그런 항아리 같은 난로가 있고 아이들이 돌아가면서 난로 당번을 하죠. 솔직히 산림에 대한 규정은 북한에도 온전히 세워져 있습니다. 원목을 다치지 못한다, 화목으로는 직경이 5센티 이상이다... 이런 규정들이 있지만 20-30년 된 아까운 나무들이 다 쪽을 쳐서 화목으로 팔리죠. 노래도 있습니다. 당신이 조국을 사랑한다면 한 그루의 나무도 사랑하라... 아니, 사랑하기 싫어서 안 하는 게 아니죠. 불 아구리에 그 나무가 들어 안 가면 영하 30-40도까지 내려가는 추위에 아이들 데리고 어떻게 살 수 있겠어요?
문성휘 : 얼어 죽을 수야 없죠.
박소연 : 사람들도 이 아까운 나무를... 귀한 나무를... 이럽니다. 그리고 굴뚝에 대한 재밌는 얘기도 많은데요. 어느 나라 외국 대통령이 기차를 타고 북한을 돌아보다가 그랬대요. 아니 여긴 웬 대포가 이렇게 많냐고... (웃음)
문성휘 : 지붕 위마다 대포가 하나씩 있는 거죠. (웃음) 굴뚝에 대한 그런 우스운 소리도 많아요. 그리고 남쪽에선 이런 얘기 안 하던데 왜 사람이 약간 이상한 소릴 한다거나 이상하게 행동하면 '쟤 탄내(연탄가스) 먹지 않아?'... (웃음)
박소연 : 맨내 먹었다고도 그러죠. (웃음)
문성휘 : 남쪽에선 술 취하지 않았나... 뭐 이러는데 북한에선 그럽니다. 남쪽에선 이젠 연탄 때는 집이 없어서 그런 말도 없죠?
진행자 : 얼마 전에 모여서 연탄가스 마신 얘기를 하게 됐는데 진짜 그게 뭔지 모르는 사람도 많더라고요. (웃음) 특히 젊은 세대들이요.
문성휘 : 진짜 요즘 남한 젊은 세대들은 연탄이란 걸 본 적도 없는 친구들도 많을 겁니다. 써본 적이 없으니 알게 뭡니까?
박소연 : 행복하다... (웃음)
문성휘 : 여긴 연탄도 공장에서 만들지 않아요? 북한도 연탄 공장이 있긴 있는 것 같아요. 근데 대개 개인들이 집에서 찍어내요. 어휴... 그게 엄청 힘들어요. 제가 최근에 한 이발소에 갔는데 거기 연탄난로가 있더라고요. 처음에 기름난로인 줄 알았어요. 너무 작아서... 그런데 관이 죽 뽑아져 나왔는데 연탄난로래요. 연탄도 북한 연탄의 절반이 되는 것이 들어가는데 연탄 하나로 12시간 간데요.
진행자 : 개량해서 나왔나 보네요. 남쪽도 도시 가스비와 기름 값이 많이 올라서 연탄난로가 다시 등장했습니다. 아까 소연 씨한테 남한에도 연탄 때는 집이 있다니까 깜짝 놀라던데, 있습니다. (웃음)
박소연 : 제가 한 번도 못 봐서요.
문성휘 : 그런데 저도 남쪽에 와서 연탄난로를 이번에 처음 봤습니다. 연탄 한 장에 6백 원정도 한다는데 하루에 석장 땐데요. 싸잖아요? 북한은 연탄을 때는 게 굉장히 복잡하잖아요? 가마(밥솥)를 위로 뽑고 들어내서 집게로 연탄을 넣고 연탄재 날리고...
진행자 : 가마를 들어요? 왜요?
문성휘 : 가마를 들어야 연탄을 넣지 그럼 어떻게 연탄을 넣어요? 봐라... 연탄을 땠다면서 모르는 거 봐요! (웃음)
진행자 : 부엌에서 그렇다는 얘기시군요. (웃음) 남쪽은 이제 연탄으로 밥을 해 먹는 집은 없고 연탄을 땐다고 해도 난로죠.
문성휘 : 북한에도 옛날에 구멍을 작게 만들어주는 무슨 뚜껑 같은 게 있었는데 공장에서 생산을 해줘야 쓰죠. 여기는 돈이 되겠다 싶으면 철물 업자들이 다 만들어서 판매하지 않아요? 북한은 모든 게 계획 경제니까 국가에서 만들라고 해야 만들죠. 아무렇게나 만들다가는 목이 달아나죠.
진행자 : 더 좋게 만들어도요?
문성휘 : 아유... 진짜 왜 모르는 소리를 이렇게 하십니까!
진행자 : 답답해서 해본 소리였습니다. (웃음) 그럼 연탄으로 구들장 덥힐 때는 어떻게 해요?
문성휘 : 나무 때는 것과 똑같아요. 진흙으로 연탄이 들어가게 자리를 만들죠.
진행자 : 남쪽에는 구들장 높이에 딱 맞게 연탄 두 장 높이로 동그란 통을 팔거든요. 통 바닥에 바퀴가 달려있는데 그걸 구들장 밑으로 밀어 넣을 수 있게 나옵니다.
문성휘 : 근데 이 기자, 그거 80년대 소릴 하는 거죠? 진짜 범이 담배 피던 때 얘길 하고 있어요... (웃음)
진행자 : 진짜 그러네요. (웃음)
문성휘 : 저 진짜 연탄난로를 보고 깜짝 놀랐거든요. 요샌 뭐나 나와도 더 좋고 편리하게 잘 만들어 나오는 것 같습니다. 가을쯤이면 김장 한다고 쏟아 놓은 물에 연탄까지 찍는다고 정말 아파트 앞이 한심하죠. (웃음) 그런데 이렇게 고생해서 나무, 석탄을 때면 좀 따뜻해야겠는데 아침에 나가면 걸레와 행주가 꽁꽁 얼 정도로 춥죠... 겉풍은 얼마나 센지 바닥을 절절 끓어도 콧등은 시리고...
박소연 : 이불 위로 어깨가 나오면 그것도 춥고요,
분명 힘든 겨울 얘기인데 문 기자는 반쯤은 신나서 얘길 합니다. 나중엔 나무를 얼마나 잘 팼는지 자랑도 했는데요. (웃음) 이제 그 얘기가 다 추억이기 때문입니다. 추운 겨울, 불 잘 때놓고 소연 씨가 아들과 함께 따뜻한 구들장에서 이런저런 얘기 나누던 일, 문 기자가 직장 사람들과 나무 하러 다니던 얘기, 거기에 잣나무에서 잣 따던 얘기까지... 얘기는 재밌게 흘러갔는데 두 사람 다 끝엔 웃지 못했습니다. 씁쓸한 뒷끝, 안타까운 마음… 두 사람엔 추억이지만 고향에서는 아직까지 이어지는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굴뚝 없는 남한 얘기, 다음 시간에도 이어갑니다.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오늘 시간 여기까집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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