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이니까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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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무산 출신 박소연 씨는 2011년 11월, 남한에 도착해 올해 남한 생활 4년 차를 맞고 있습니다. 2012년 아들을 데려와 혼자서 키우는 열혈 '워킹맘' 그러니까 일하는 엄마입니다.

<세상 밖으로> 이 시간엔 남한 정착 9년차, 자강도 출신 탈북 기자 문성휘 씨와 함께 박소연 씨의 남한 적응기를 하나하나 따라 가봅니다.

INS - 올해는 일도 많고 웃기도 했지만 많이 울었고... 여러 가지 일이 있었지만 지금의 결론은 나를 웃고, 울고 하는 건 결국 나한테 달렸다. 환경이 아니다...

소연 씨가 굉장히 철학적인 얘기를 했네요. 출처는 분명치 않지만 이런 말이 있습니다. 천국과 지옥... 모두 내 마음에 있다.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지난 시간부터 2015년 한 해를 마무리 하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11월, 남쪽에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면서 한 해가 아니라 한 시절을 마무리하는 듯한 심정으로 연말을 보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은 어떻게 한 해를 마무리하고 계신가요? 저희와 함께 한 해 뒤 돌아 보시죠.

진행자 : 그런데 저는 그런 생각도 들어요. 지금 2015년인데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은 일이 너무 많잖아요?

문성휘 : 이 기자님 말씀처럼 '왜 우리는 아직까지' 그런데 나는 또 반대로 생각해요. 왜 북한은 3대에 이르기까지... 지금 세계는 빨리 변해야 살아남는 건데 그거에 비하면 북한은 저게 뭐냐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는 거죠.

진행자 : 제가 말하는 우리라는 건 남북을 함께 말하는 겁니다. 올해가 광복 70주년이었는데요. 이산가족 상봉도 정말 힘들게, 하네 마네하면서 겨우 이뤄졌고 그 행사장에서 65년 만에 만남 남쪽의 부인이 북쪽의 남편을 만나 우는 장면을 보면서 함께 눈물 흘려야 하는 이런 상황에서 우린 왜 아직도...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말이었습니다.

문성휘 : 저는 솔직히 화가 나요. 그 고령의 할머니가 유복자를 낳고서 지금까지 남편을 기다렸다는데 그 할아버지는 북한에 가서 다른 여자를 얻고 자식까지 낳았습니다. 그런데 북한의 경우 그럴 수밖에 없어요.

진행자 : 그렇죠. 북한은 결혼을 못하고는 살 수가 없으니까요.

문성휘 : 그렇습니다. 남편은 아내를 기다릴 수가 없었기에 다른 사람을 만난 겁니다.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면 아내를 기다렸을 거예요. 나는 그 희망이 없는 나라를 만든 사람들이 안타깝다는 겁니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김영삼 대통령이 사망했을 때 마지막 키워드로 글쎄...언론에서 부풀렸는지는 모르겠지만 화해, 통합을 많이 강조했다고 했지 않습니까? 그것처럼 북한에서 먼저 간 선임자들도 뭔가 남북관계, 통일 문제에 대해 책임을 느끼고 사과하는 듯한 우리 민족의 화합을 위해 남겨야 하는데 그런 건 하나도 없이 그대로 다 가버리니까 너무 안타깝고요. 정말 김영삼 대통령이 가시는걸 보니 이제 그 시대 정치인들이 다 갔어요.

진행자 : 그렇죠. 문 기자님 말대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를 보니 격동의 세대가 마무리 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고요. 북쪽에서도 이 소식을 듣고 반응이 있을 것 같은데 청취자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문성휘 : 우리 세대들은 김영삼 대통령을 매우 나쁘게 생각해요. 왜냐하면 김영삼 대통령이 김일성 주석을 만나겠다고 했는데 거기까지는 좋았어요.

북한 사람들 말로는 그래요. 내가 서울 가서 내가 왔소, 내가 김일성이요 하면 다음 날로 통일이 된다. 그렇게 김일성은 남한에 대해 자신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전혀 그게 아닌데... (웃음) 그러니까 김일성 주석도 참 세상이 돌아가는 물정을 몰랐다는 슬픈 생각이 듭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을 때 혹시 한국에 우발적인 충돌이 일어날까봐 비상상태를 선포했어요.

진행자 : 남쪽에서는 당연한 선택이었어요.

문성휘 : 그런데 북한은 그걸 엄청나게 비방했어요. 그래서 김영삼 대통령에 대해 나쁜 감정을 가진 사람이 많을 겁니다.

박소연 : 저희는 북한에서 화환도 안보내고 화환을 보낸다는 사람을 탄압했다고 사람이 죽었는데 예의가 없다고 김영삼 대통령을 엄청 미워했어요.

문성휘 : 어쨌든... 한 해도 가고 한 시대를 담당했던 사람들도 가고 올해가 참 격동의 해였어요. 북한으로서도 정말 연초부터 숱한 사람들이 처형되었다는 소식이 연이어 들려오고 광복 70주년이라고 또 얼마나 사람들을 볶았습니다. 그래서 북한 사람들도 정말 올 한해를 잊지 못할 거예요. 고난의 행군처럼 고생했던 세월은 너무나 소름끼쳤기에 잊혀 지지가 않아요. 아마 올해가 북한 사람들 기억에 그렇게 남을 것 같아요. 이런 한해도 다 저물어가고... 북한이 내년 당 제7차 대회도 5월 달에 개최 하겠다, 그리고 사로청 9차 대회도 노동당 대회 이후에 열겠다 등 여러 가지 말이 나오고 있는데 혹시 당 대회를 통해서 변화의 모습을 보이지 않을까 그런 기대도 가져봅니다.

진행자 : 우리 항상 그런 기대를 하지만 결과는 열어봐야 아는 것이고요... 정치가 개인의 일생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도 맞지만 개인은 또 개인의 인생을 살아가지 않습니까? 소연 씨는 올 한 해 여러 가지 사건이 있었고 그 일들을 겪으면서 어떤 일이 흔들리지 않게 내 마음을 다잡아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했는데요. 문 기자님은 어떠셨나요?

문성휘 : 아쉬워요. 저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내가 젊었을 때 못 이뤘던 꿈, 하고 싶었던 것들이 이제는 이룰 수 있는데 내 뜻대로 안 되는 것이 아쉬워요.

진행자 : 문 기자님은 한 해 두 해 나이가 먹어 가는데 그 꿈이 이뤄지지 않는 게 아쉬운 심정이다?

문성휘 : 네, 전 젊었을 때 작가의 꿈을 꾸어 보았고, 가족들과 다함께 외국여행도 가고 싶었고 큰 저택을 지어서 살고도 싶었고.. 여러 가지 꿈이 많았어요. 북한에 살 때는 그 꿈을 다 버려야 했는데 이제는 길이 다 열려 있어요. 내가 글을 얼마든지 쓸 수 있는데 그런데... 머리로 생각만 굴리고 이제 잘 안 되더라고요.

진행자 : 자, 내년에는 게을러지지 않는 걸로 하시면 되겠습니다. (웃음)

문성휘 : 젊었을 때 꿈이 많았는데 그 중에 하나라도 제대로 이루고 싶어요.

진행자 : 그런데요. 평균적으로 오래 산 사람도 심지어 대통령까지 지낸 김영삼 대통령도 젊었을 때 꿈이 다 이뤘을까요?

문성휘 : 못 이뤘죠.

박소연 : 죽을 때까지 도전하는 거죠.

문성휘 : 그래도 뭐가 죽을 때 아, 이건 정말 만족했다 이건 내가 잘 한 거야... 뭔가 인정 받을만한 세계가 다 인정을 못해도 내 주변 사람이나 나 혼자라도 마지막 순간에 만족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음만 바쁩니다.

박소연 : 아니, 문 기자가 어때 서요! 이 정도면 다 잘 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진행자 : 문 기자님이 꿈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요. 소연 씨의 해답이 문 기자님의 해답에 되지 않을까요? 우리 모두의 해답도 되고요. 상황이 어떻든 자기 마음먹기에 따라 다르다. 급한 마음을 괜찮다, 잘하고 있다, 열심히 하자 이렇게 마음을 바꾸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박소연 : 그래요. 진짜 저는 아침마다 거울을 보면서 '그래도, 괜찮아! 오... 잘했어!'... 막 그래요. 아들이 우리 엄마 약간 정신이 이상한 것 아닌가 신기하게 봐요. (웃음)

문성휘 : 다 혁명적 책임을 망각하고 계급성이 무뎌져서 그래요.

진행자 : 이게 무슨 소리입니까!

박소연 : 아직도 사회주의 사상이 남아있어서 그래요. (웃음)

문성휘 : 제가 왜 마음이 급한가... 격동하는 시대가 다 끝났구나 하는 생각이 하니까 그 시대를 살아간 내 부모들이 너무 속절없었구나... 더욱 무서운 건 나보다 나이가 많은 우리 형제들의 시간도 흘러간다는 조급함 그리고 그 사람들도 그냥 속절없이 죽어갈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아... 뭔가 좀 빨리 변해서 우리가 마음을 터놓는 시대가 왔으면 합니다.

내년에는 그런 길이 열리길 바랍니다. 전 여러 가지 꿈과 도전이 많아요. 그 중에 내가 가장 희망적으로 바라는 건 가족 형제들을 만나는 것입니다. 치열했던 격동의 시대를 속절없이 살아간 사람들처럼 우리도 그렇게 지지 않기를 바라고 내년엔 뭔가 희망이 보이는 해가 되기를 소연 씨가 집을 뻔히 강 하나 사이에 두고 보고 왔다는데 내년쯤에는 길이 열려서 거기서 전화 연락을 해서 가족들이 나오면 옆에 경비대들이 다 지켜서도 손을 흔들고 "요새 너 어떻게 사냐" 소리라도 칠 수 있는 세상이 되길 바라는 거예요.

박소연 : 요새 어떻게 사냐? 돈 아껴 써라!! 그러매... (웃음)

문성휘 : 아, 그러고 보니 내년에 걱정도 되고 꿈도 많아요. 젊어서 못 이룬 꿈들도 야심차게 해봐야겠고 부모 형제를 강변에서 소리치며 만나기도 해야 되겠고. 내년에 내가 너무 꿈을 크게 가지는 건가요?

박소연 : 꿈을 크게 가지는 건 좋은 겁니다. (웃음)

진행자 : 두 분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문성휘, 박소연 : 감사합니다.

올해 국제 사회에서 화제가 된 정치인으로 캐나다의 쥐스탱 트뤼도 총리를 꼽을 수 있겠습니다.

트뤼도 총리의 아버지도 총리였습니다. 그것도 두 번이나 총리를 했고 '현대 캐나다의 아버지'로 불린다니 대단한 정치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또 43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출중한 외모도 주목을 받았습니다. 지난 10월 당선 이래 계속 화제가 되던 트뤼도 총리였는데요. 그 정점을 찍은 것은 지난 11월, 그가 내놓은 파격적인 내각 구성이었습니다.

트뤼도 총리는 캐나다 역사상 처음으로 남녀 15명 씩 동수의 성평등 내각을 출범시켰습니다. 30명 중 딱 절반인 15명이 여성, 15명이 남성이라는 말입니다.

30대 난민 출신 여성 장관부터 이민자와 원주민 그리고 장애인을 장관으로 발탁했고 연령대도 3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하게 또 출신 지역도 캐나다 전역에서 골고루 선발했습니다.

내각을 발표하던 자리에서 한 기자가 트뤼도 총리에게 물었습니다. 왜 이런 내각을 구성했나? 트뤼도 총리의 답변은 이랬습니다. 2015년이니까요.

같은 2015년을 살았던 것 맞지요? 적어도 2016년은 우리도 그렇게 얘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오늘 얘기는 여기까집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