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무산 출신 박소연 씨는 2011년 11월, 남한에 도착해 올해 남한 생활 3년 차를 맞고 있습니다. 2012년 아들을 데려와 혼자서 키우는 열혈 '워킹맘' 그러니까 일하는 엄마입니다.
<세상 밖으로> 이 시간에는 남한 정착 8년 차 자강도 출신 문성휘 기자와 함께 박소연 씨의 남한 적응기를 하나하나 따라 가봅니다.
INS - 옆 회사에서 냉동 오징어를 한 상자 가져왔는데 갖고 가자니 싫은 거예요. 좋아하지 않으니까. 그래서 지인한테 줬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북한에서는 구경도 못하던 걸 남한에 와서 다른 사람한테 가져가라고... 내가 큰 부자가 된 기분이었어요.
해산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소연 씨는 얼마 전 공짜로 얻은 오징어, 북한 말로 하면 낙지를 지인에게 주면서 불현듯 옛 생각이 났다고 합니다. 북한에서는 잔칫날에나 상에 놓던 낙지를 거저 다른 사람에게 주는 모습이 신기했다고요. 남한에서는 해산물을 살 때도 이래저래 북한과는 꽤 다른 모습이라고 하는데요. 지난 시간에 이어서 소연 씨 얘기, 직접 들어보시죠.
박소연 : 그런데 남한에 와서 혼돈스러운 게 북한에서는 고기도 그냥 크기로 나눠서 값을 치르는데 남한에 오니까 자연산이냐, 원산지가 어디냐, 유기농이냐, 되게 헛갈려요. 북한 사람의 시각으로 보면 잘 사니까 이렇게 골라 먹지. 우리는 골라 먹지를 못했어요.
문성휘 : 이보게 후배, 원산지를 왜 따지는지 아나... 이런 게 있어요. 중국은 바닷가도 다 오염돼서 거기서 잡은 물고기를 들여와서 시료를 분석하면 몸에 황이나 수은 같은 성분이 많아요. 그런데 남한은 바다가 깨끗하니까 남한산 물고기는 우리 몸에 더 안전한 거죠. 예전에는 일본 물고기도 꽤나 안전했는데 쓰나미(지진.해일)로 원자력 발전소가 붕괴돼서 방사능에 오염됐어요. 그러니까 남한 사람들 꼭 따지게 되죠. 중국산이냐 일본산이야, 또 양식이냐 자연산이냐.
박소연 : 아, 이제 저도 따져야겠네요.
진행자 : 그리고 가격차가 큽니다. 원산지를 불법으로 바꿔서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걸 점검하기도 해요.
박소연 : 저는 남한에 와서 명태 한 번 사보고 아직 생선을 사본 적이 없어요.
진행자 : 남한 사람들은 해산물을 굉장히 좋아하는 편이거든요. 회도 무척 좋아하고. 해산물을 별로 안 좋아하시나 봐요.
박소연 : 안 좋아해요.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알잖아요. 무산에서는 물고기가 좀 비쌌어요. 북한에서는 '해어'라고 하는데. 그래서 저희는 이면수밖에 먹어본 게 없어요.
문성휘 : 이면수하고 청어.
박소연 : 청어도 저는 비려서 안 먹었어요. 이면수는 '어두진미'라고 머리가 맛있는데 청어 대가리는 못 먹어요.
문성휘 : 대가리 소리가 나오니까 생각났는데, 남한 시장에서 물고기 사면 머리, 꼬리 다 자르고 내장도 빼서 손질해 주잖아요. 처음에는 그렇게 떼 내는 게 우리 돈을 앗아가는 것 같았어요.
박소연 : 맞아요!
문성휘 : 엄청 놀랍고 화가 났어요. 북한 텔레비전국에서도 나오잖아요. 생선은 어두진미라고. 물고기는 머리가 맛있어요, 먹을 게 없어서 그렇지. 그런데 그 머리를 툭툭 잘라내고. 그리고 내장도 씻어서 먹을 게 있는데 막 뽑아내니까 얼마나 화가 났던지.
진행자 : 집에 가서 손질하려면 번거롭고, 또 이걸 음식물 쓰레기로 분리해서 버려야 해서 그냥 손질해달라고 하죠.
박소연 : 저도 문 기자님 말씀 공감해요. 처음에 대가리 잘라주고 이러니까 '그걸 왜 자릅니까?' 물어봤어요.
문성휘 : 그러면 우리더러 중국에서 왔느냐고 물어요. 왜 자르냐고 하면 그럼 그대로 가져가라고. 그런데 지금은 저도 손질해 달라고 해요.
진행자 : 그렇죠, 번거로워요. 냄새도 나고. 그리고 요즘은 한두 명 사는 가구가 많다 보니까 생선도 1인이 먹을 수 있게 딱 포장돼서 나오는 것들도 많아요.
박소연 : 네, 마트에 가면... 그런데 저는 아직도 그런 관념이 있어요. 재래시장에 가면 뭔가 싸 보여요. 그런데 마트가 비싼 것도 아니더라고요. 북한에서는 포장 안 한 걸 바라로 판다고 하잖아요. 바라로 파는 나무새나 쌀은 무게로 계산하지만 포장해 놓은 건 포장비가 들어서 비싸요. 그런 인식이 아직도 있어서 물고기도 가끔 보면 정말 예쁘게 손질해 놓은 거예요. 들었다 놨다 하다가 재래시장 가서 사야겠다고 돌아서요.
진행자 : 보통 재래시장, 남한에서는 전통시장이라고도 하는데요. 그런 곳들이 조금 더 싼 면은 있을 거예요. 그런데 보통의 마트는 대형 기업들이 운영을 하면서 대량유통을 하니까 가격이 떨어지는 면도 있고, 부분적으로 조금씩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남한사람들도 아직 전통시장이 저렴하다는 생각은 있는 것 같아요.
문성휘 : 요새는 대형 마트가 훨씬 싸요. 그래서 지금 시장 상인들이 들고 일어나는 거잖아요.
진행자 : 배달도 다 해주잖아요.
문성휘 : 맞아요, 한 2만 원어치 사면 집까지 다 배달해주잖아요.
진행자 : 전화나 인터넷으로 주문해도 집까지 무료로 배달해주죠.
박소연 : 그런데 한 달 전인가 저희 옆 회사에서 냉동 오징어를 한 상자 가져왔는데 너무도 생칠한 거예요. 깨끗해서 한 여덟 마리 일단 회사 냉장고에 담아뒀는데, 갖고 가자니 싫은 거예요. 좋아하지 않으니까. 그래서 지인한테 전화해서 줬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오징어, 북한에서는 낙지라고 하죠. 진짜 결혼식 상에나 놓는데, 구경도 못하던 걸 남한에 와서 다른 사람한테 가져가라고... 내가 큰 부자가 된 기분(웃음)?
진행자 : 생선을 정말 안 좋아하나 봐요.
문성휘 : 딱 북한식이네, 북한 중에서도 산골.
박소연 : 저는 푸새기만 좋아해요. 감자밥, 감자채만 먹고, 왜 그런지 모르게 고급스러운 음식은 입에 안 맞아요. 그런데 저 옛날에 해삼 장사는 했어요. 해삼을 칼로 쭉 째서 그 안에 무연탄을 집어넣어요. 무게수를 늘리자는 거죠. 그렇게 해서 저랑 사촌오빠랑 같이 장사를 했는데 돈을 많이 벌었어요.
문성휘 : 북한에서는 일반적이에요.
박소연 : 탈북하기 전에도 청진에서 청어를 가져와서 어떻게 팔았는지 아세요? 주사기에 물을 넣어서 삽입했어요. 북한에서는 다 그렇게 팔아먹어요.
문성휘 : 그러니까 남한은 재래시장이나 현지에 가서 직접 산다고 해도 한 근에 얼마인지 값을 알려주면 그냥 달라고 하면 끝이잖아요. 북한에서는 저울을 두 눈 똑바로 뜨고 들여다봐야 해요. 저울추를 놓고 계속 싸워요. 그런데 장사꾼들 참 용해요. 그렇게 뚫어지게 보고 있었는데도 집에 와서 보면 달라요. 북한에서 직접 장사하던 분들한테 물어보면 저울을 조종하는 비밀이 있어요.
박소연 : 멀리서 물어보실 필요 없을 것 같아요(웃음).
진행자 : 남한에서도 해산물의 무게나 크기를 늘리기 위해서 장사하는 사람들이 수법을 쓰기도 합니다. 그런 불법적인 행동을 수시로 점검하고. 원산지도 중국산인데 국내산으로 속이거나, 양식인데 자연산으로 속이는 것들이 많아서 정부 기관에서 끊임없이 점검을 하는데도 그런 일들이 계속 발견되는 것 같아요.
문성휘 : 그런데 남한에서는 끊임없이 점검하고 잘못된 것은 언론에 공개하잖아요. 북한은 그게 없으니까 우리가 뭘 먹고 어떻게 사는지 모르는 거예요. 건강에 좋은지 나쁜지도 모르고. 그리고 남한 사람들이 가장 격분하는 게 먹을 것 가지고 장난하는 거잖아요. 그랬다가는 인터넷이고 언론이고 난리도 아니죠. 자본주의 좋다는 게 그거예요. 우리가 그런 게 없던 사회에서 살았으니까 좀 이상한 거고. 여하튼 나쁜 게 유통되면 어느 순간 나도 먹었을 수 있으니까 분한 거죠.
박소연 : 이제 대한민국 국민이 다 되셨네. 저는 그냥 '죽을 놈이 죽겠지' 그래요. 그렇잖아요. 우리는 시장에서 먼지 다 묻은 새까만 이면수도 돈이 없어서 못 사먹었는데, 그거 갖고 이게 균이 없다 있다 안 따졌거든요. 가서 그냥 씻어서 끓여 먹으면 병균이 다 죽는다고 생각하니까. 그러니까 저는 아직 문 기자님처럼 예민하게 반응하지는 않아요.
문성휘 : 그런 게 있어요. 낚시를 가도 아무데서나 낚시를 하는 게 아니다. 허용수치라는 게 있어요. 예를 들어 한강에서 잡은 고기는 건강에는 무해하지만 기준치에 가깝다. 그러면 차라리 청정구역에 가서 잡으면 훨씬 더 무해한 고기를 잡을 수 있잖아요. 그런 걸 엄청 따져요.
진행자 : 함유 성분을 무척 따지는 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어떤 물고기들은 희귀종이라고 해서 사라질 위험에 처한 것들도 많잖아요. 그런 것들은 보호하는 차원에서 특정 구역에서는 낚시를 허용하지 않기도 합니다. 그리고 남한에는 환경단체를 비롯해서 각종 동식물, 하천과 관련된 전문 기관들이 많아서 유기적으로 같이 활동을 해요. 주기적으로 점검을 합니다. 그래서 성분이 얼마나 달라졌나, 오염 여부, 물고기가 얼마나 많아졌는지를 인공적으로 조절하기도 합니다.
문성휘 : 환경보존이 잘 되니까 남한에는 이런 근심도 있잖아요. 고라니가 너무 많아서 논밭에 피해를 준다, 멧돼지가 서울 도봉구 주택가로 나오기도 하고. 참 좋은 거 같아요. 자연이 그대로 살아있다는 거잖아요. 그래서 생태환경을 보존한다는 게 정말 어려워요. 이게 1~2년에 이뤄지는 게 아니에요. 그러니까 북한이 지금 바다에 물고기가 없는 것, 중국 어선들이 남한에 고기 잡으러 오는 거, 이게 다 생태계가 파괴된 것 때문이잖아요. 그래서 남한이 정말 어려운 환경에서 발전하면서도 이리저리 결과적으로 잘 했다, 생태환경도 잘 보존됐고.
박소연 : 생태환경도 나라의 재부예요. 후대에게 물려줄 재부.
문성휘 : 이럴 때 미안하기도 해요. 나 남한에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이렇게 와서 이걸 다 누리니까. 사실 이걸 이룩해 놓은 현재 대한민국 젊은이들을 만들어 놓은 전 세대들에게 상당히 미안하고 그래요.
진행자 : 사실 저희 부모님 세대가 정말 허리띠 졸라매고 열심히 일해서 이뤄놓은 것들인데 저희 세대만 해도 그 고마움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원래 이렇게 생겼겠지 합니다.
박소연 : 우리는 알아요. 항상 미안하고 고마워요. 그런데 낚시라는 것도 해보니까 재미인 것 같아요. 꼭 먹으려는 게 아니라 내 손으로 움직이는 무엇인가를 잡는다는 게 좋아요.
진행자 : 낚시도 잡는 재미라고 하셨잖아요. 사실 해산물을 즐기지 못하면 남한 음식의 절반을 놓친다는 생각이 들어요. 남한에서는 정부 차원(해양수산부)에서 각 달별로 제철 해산물을 알려주거든요. 12월은 과메기와 대구랍니다. 그러니까 아드님과 가셔서 꼭 한 번 드셔보시기 바랍니다.
박소연 : 한 번 해볼게요(웃음).
남한의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기준 남한의 수산물 어획량은 313만5천 톤으로 북한보다 4.2배 많다고 합니다. 물론 남한은 삼면이 바다니까 북한과 단순 비교를 하는 것은 맞지 않겠죠. 하지만 그 격차를 줄이려면 얼마나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까요? 문 기자와 소연 씨 말처럼 생태 환경을 복원하는 일은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일이 아니니까요. 그걸 알고 있는 두 사람이기 때문에 한국전쟁 이후 남한의 경제성장은 물론 환경보존에도 힘썼던 세대에게 어쩌면 남한 사람들보다 더 큰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는 게 아닐까 합니다. 덕분에 바다낚시도, 각종 해산물도 즐길 수 있는 거니까요.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윤하정이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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