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박소연 씨는 2011년 11월 남한에 도착한 햇내기 입니다. 무산 출신으로 선전대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30대 중반의 여성인데요. 하나원 교육을 끝내고 본격적으로 남한 생활을 시작한지 이제 근 일 년...
<세상 밖으로> 이 시간에는 남한 정착 7년차, 자강도 출신 탈북 기자 문성휘 씨와 함께 박소연 씨의 남한 적응기를 하나하나 따라 가봅니다.
INS - 근데 지 공부를 지가 해서 대학을 가는 건데 뭘 이리 난리를 치나요...
지난 달 치러진 남쪽의 대학 입학시험을 지켜본 소연 씨의 평가입니다. 본인도 디지털 대학 그러니까 방송 대학에서 학기말 시험을 앞두고 있고 초등학생 아들이 있는 소연 씨에게 남쪽의 유난한 교육열과 시험 과민증은 외면할 순 없지만 불편한 현실입니다.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지난 시간에 이어 남쪽의 시험 얘기 이어갑니다.
진행자 : 자, 수능... 남쪽의 대학 예비 시험 얘기를 하고 있는데요. 두 분은 대학 시험 보던 날 기억나십니까?
박소연 : 문 기자님, 뭘 드시고 가셨어요?
문성휘 : 저는 찰떡...
박소연 : 부럽네... 저는 엄마가 그 찰떡을 안 해주시더라고요. 못 먹었어요. 근데 저는 기다렸는데 통지서가 안 왔어요. 부모도 안 따라가고 찰떡도 못 먹었고.... (웃음) 그래서 떨어졌나요?
문성휘 : 에이... 설마... 근데 남쪽에는 뭘 먹나요?
진행자 : 여기도 찰떡 먹습니다.
문성휘 : 저는 처음 한국에 와서 수능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아주 신기했어요. 수능을 위해서 지철도 증편된다... 무슨 얘기냐면 평소에 4-5대 뛰었다면 이때는 7-8대 뛰고요.
진행자 : 이날은 출근 시간도 좀 늦추죠.
문성휘 : 그리고 수능을 보기 며칠 전에는 불교를 믿는 사람들은 절에 가서 3천 번 절을 하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교회에서 기도를 합니다. 우리 아이가 꼭 붙게 해주십시오. (웃음) 저는 이게 굉장히 황당하고 웃기더라고요.
박소연 : 근데 저는 더 놀란 게 여기 수능 본 학생 중 최고령자가 78세? 그래서 속으로 그랬어요... 안 된 말로 정신 나갔나, 78세에 수능 시험을 쳐서는 어쩌려고?
문성휘 : 수능뿐이 아니죠. 신문에서 나지 않았어요? 일흔이 훨씬 넘은 할머니가 자동차 운전면허 시험에 700번 도전했다... 아니, 70세 나이에 왜 수능을 쳐요?
진행자 : 대학에 가고 싶은 거겠죠? 집안 사정이 안 좋아서 하고 싶은 대학 공부를 못했다... 이러면 나이 들어서도 꼭 가고 싶을 수도 있고요.
문성휘 : 한국은 이건 좋아요. 수능이라는 게 있고, 편견이라는 게 없으니까 누구나 막 애를 쓰며 공부하잖아요? 북한은 애초에 우리 생활이 어려워서 고이기 힘들다, 우리가 토대가 나빠서 대학가기 어렵다면 애들이 공부를 포기해버려요. 그냥 대충 학교에는 다녀야된다니까 출석만 하는 거죠.
진행자 : 대학에 가는 게 돈이 많이 들어가는 건 알겠는데요. 아직도 토대가 나쁘다고 대학에 못가고 그렇습니까?
문성휘 : 세대가 많이 지나왔으니 옛날처럼 토대를 많이 보지 않아요. 지금은 공개처형, 정치범 수용소 이런 게 있지 않습니까? 우리 집 직계에 처단자(공개처형당한 사람)가 있어서 가족이 있다면 아예 대학을 못가고 삼촌, 사촌이 처단자다... 이 정도는 대학에 갈 순 있지만 그것도 정치 대학은 안 되고 기술대학에 보냅니다. 이 경우에도 의대는 안 되고 광업대학, 농업대학... 이 정도만 가능합니다.
진행자 : 그렇군요... 남쪽은 대학 진학률이 대단히 높아요. 고등학교 학생의 80% 정도가 대학을 진학하고 있다고 하네요.
문성휘 : 한국이 세계적으로도 대학 진학률이 높은 나라라고 합니다. 아마, 일본이나 미국보다도 높은 것 같아요. 수능 볼 때는 부모들이 학교 철문에 매달려서 끝나고 애들이 나올 때는 기다리고... 꼴불견입니다.
진행자 : 왜요?
문성휘 : 수능을 볼 때는 전쟁 터진 것 같이 그러잖아요? 온 나라가 난리에요. 수능 날 아이가 아파서 수능 시험장에 못 가면 막 구급차가 와서 태워가고 지어는 작년인가? 강원도 어디에서 시험을 보러가야 하는데 못가니까 경찰 직승기까지 떴어요.
박소연 : 세상에... 근데 문 기자님, 저는 문 기자님과 생각을 달리해요. 전 그게 좋은데요? 그러니까 대한민국이 발전한 거죠.
문성휘 : 저도 막 그걸 읽어볼 때는 감동했어요. 그날 아픈 아이들은 병실에서 수능 시험을 볼 수 있도록 해주고... 물론 이게 참 감동된 사회다... 근데 너무 혼란스러워요.
진행자 : 혼란스러워서, 단순히 그 이유 때문에 싫다는 말씀인가요?
문성휘 : 그건요 사실... (웃음) 저도 대학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우리 아이들도 대학 시험 볼 때 얼마나 안타까웠는데요... (웃음) 시험 방법이 문제라는 거죠. 아예 북한처럼 10일 동안 학교 앞에서 합숙을 하면서 시험을 보던지, 수능 시험일을 지방별로 분산 시켜놓던가 이런 방법이 있지 않겠습니까?
진행자 : 전국이 같은 날 시험을 안 보면 시험 문제가 유출될 가능성이 있지요. 생각해보세요, 인터넷이 휴대 전화로도 되는데요. 카메라가 단추만 해졌고요. 문 기자님과 소연 씨는 이해가 안 되실지 몰라도 남쪽에서는 수십 년 동안의 시행착오를 통해 결론 낸 시험 방법입니다...
문성휘 : 취지는 좋습니다. 그리고 기회 균등이라는 거 있잖아요? 북한은 자본주의 사회가 기회 균등이 아니라며 온갖 비난을 하지만 수능이야 말로 기회균등인 것 같습니다. 아무리 재산 있는 사람도 공부를 못하면 대학을 못 간다, 공부를 잘 하는 사람은 아무리 가난한 사람도 학교를 갈 수 있고 그런 사람들은 장학금을 줍니다.
진행자 : 아니, 문 기자님, 말씀은 이렇게 잘 하시면서 수능을 왜 그렇게 비판하시는 겁니까? (웃음)
박소연 : 북한은 시험을 치면서도 참 억울한 점이 많아요...
문성휘 : 그리고 대학 예비 시험 치면서 학교 앞에서 방을 잡아 놓고 한 방에서 며칠씩 합숙을 하는데 그때 그런 걸 계속 물어봐요. 너희 어머니는 뭐하시니, 아버지는 뭐하시니... 애네 집이 얼마만큼 힘이 있나 그걸 먼저 보는 거죠. 아.. 근데 여긴 애초 시험에 그게 필요 없지 않아요?
박소연 : 저는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시험을 쳤는데요. 디지털 대학... 그러니까 쉽게 설명하자면 귀로 듣고 글로 보고 텔레비전으로 공부하는 대학이에요. 사실 전 좀 깔봤어요. 그래서 강의를 틀어놓고 저는 밥도 하고 집안일도 하고 했는데... 시험 볼 때 보니까 쉽지 않았어요. 다음 주부터는 기말고사, 학년말 시험인데 큰일입니다.
문성휘 : 저희집사람도 소연 씨와 같은 학교 2학년 때 휴학했는데요. 이제 학교 가기 어려워졌습니다. 1번 휴학하고 2번 기말고사를 통과 못했어요. 텔레비전을 보면서 절로 공부한다는 게 간단치 않아요. 저도 깔봤는데 강의도 정말 잘 해주고 시험 치는 것도 장난 아니에요.
박소연 : 그것뿐만이 아니고요. 수시 시험도 있고 리포트도 있고 토론도 있고...
문성휘 : 솔직히 내가 보건데 여기 사이버 대학을 제대로 졸업하자면 북한의 웬만한 지방대학에서 공부를 잘 하는 수준이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희 집사람 같은 건 두 번 기말고사를 통과 못하니까 그 다음부터는 국가적 혜택이 없어지더라고요. 탈북자들은 무료로 받아주잖아요? 그런데 졸업을 못하고 계속 휴학을 반복하니 학교에서 피해가 있고요. 그래서 새 규정을 만들었어요. 2번 이상 기말고사를 통과 못하면 학비를 짜릅니다. 자기 돈 내고 다니라는 것이죠...
진행자 : 소연 씨, 공짜로 학교 다니려면 기말고사 잘 보셔야겠습니다. (웃음) 소연 씨는 본인도 공부를 하지만 아이도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죠? 학부모인데요. 아이는 공부 열심히 합니까?
박소연 : 저는 애한테 강요를 해요. 니가 북한에서처럼 폰뜨를 쥘 수 있는 힘이 없어도 대학을 갈 수 있으니 얼마 좋냐,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하고 저는 좀 강하게 하는 편입니다. 학교 선생님에게도 전화해서 확인합니다. 선생님은 아이가 공부를 잘 한다는데 저는 영 불안한 거예요. 자꾸 누구는 뭣도 다니고 뭣도 공부하고 그런다니까요... 사실 책을 봐도 저는 잘 모르겠고, 숙제는 학원에서 다 했다고 하고. 선생님한테 뒤로 확인했더니 아이가 공부를 잘 한데요. 그러니까 저는 저 학교 다닐 때 생각만 했던 겁니다. 커닝만 하고 공부 안 하고... (웃음)
진행자 : 어쨌든 소연 씨도 아들이 남쪽에서 공부 좀 잘 했으면 하시는 군요.
문성휘 : 그러니까 뭐... 문제없네요. 소연 씨도 지금 사이버 대학에 다닌다니까 둘이 책상 앞에 마주앉아서 같이 공부를 하면 되겠네요. (웃음) 그리고 부모가 먼저 자식에게 모범을 보여야지 자, 봐라 아들아 내가 5점 만점을 받았다, 그래서 상도 탔다...
진행자 : 이번에 소연 씨가 기말 고사 잘 보시면 되겠네요.
문성휘 : 맞아요. 사이버 대학에도 장학금 같은 거 있거든요? ...
어째 소연 씨의 대답이 신통치 않은 걸 보니 이번 시험에 크게 자신이 없는 것 같습니다... (웃음)
공부를 잘 한다고 시험을 잘 본다고 인생에서 성공하는 건 분명 아니죠. 학교 1등과 사회 1등은 다르다...는 얘기도 있고요. 행복은 분명 성적순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공부는 분명 희망입니다.
어른이 돼서도 학교 다니며 공부를 하는 사람이 멋져 보이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고요.
그래서 감히, 바래봅니다. 북한 학생들도 열심히 공부할 수 있는 날!
누가 회의에서 어떤 말을 했는지 언제 그 회의가 열렸는지... 이런 거 말고요.
머리를 쥐어뜯으며 풀어낸 수학 문제의 기쁨과 눈 파란 서양인에게 내가 배운 말이 통하는 영어의 재미, 현재와 맞물리는 역사의 진리,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철학의 깊이, 아무것도 추구하지 않는 순수한 예술의 감동까지... 이런 공부였으면 합니다.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오늘 얘기는 여기까집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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