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사랑한다 말하세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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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연 씨는 지난해 11월 남한에 도착한 햇내기 입니다. 무산 출신으로 선전대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30대 중반의 여성인데요. 하나원 교육을 끝내고 본격적으로 남한 생활을 시작한지 이제 5개월...

<세상 밖으로> 이 시간에는 남한 정착 7년차, 자강도 출신 탈북 기자 문성휘 씨와 함께 박소연 씨의 남한 적응기를 하나하나 따라 가봅니다.

INS - 부인한테 사랑한단 말 자주 해주세요?

오늘 얘기 시작합니다.

진행자 : 안녕하세요.

문성휘, 박소연 : 네, 안녕하세요.

진행자 : 소연 씨, 남한에 와서 드라마 많이 보신다고 했는데요. 어떤 걸 즐겨 보세요?

박소연 : 로맨스? 북한식으로 말하자면 사랑 이야기가 재밌죠. 청년 남녀의 사랑 얘기를 담은 드라마 그러니까 텔레비전 연속 소설을 자주 봅니다.

문성휘 : 아, 근데 너무 많아... 연애 얘기가 없는 텔레비전 연속극이 없지 않아요? 이제 하도 봐서 좀 시시해졌습니다. (웃음)

진행자 : 지어는 역사극에도 연애 얘기가 나오잖아요?

문성휘 : 그렇죠! 우리 조상들이 언제 당신을 사랑한다, 너를 사랑한다... 이렇게 말했겠어요? (웃음)

진행자 : 너무 많기도 해요. 가요에도 온통 사랑 얘기죠. 근데 이렇게 해도 해도 계속 나오는 거 보면 사랑이 정말 많은 얘깃거리를 만들어 내긴 하는 모양입니다.

박소연 : 사랑해서 미안해... 좋아해서 미안해... (노래) 맞아요. 사랑에 대한 얘깃거리는 끊임이 없습니다.

문성휘 : 한국뿐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는 예술의 80%가 사랑과 얽혀 있는 것 같습니다. 하긴 북한도 사랑에 대해서 꽤나 많이 취급하죠. 다만 당과 수령을 받드는 길에서 사랑이 맺어진다... 이렇게 나가니까 좀 어색한 면도 있지만요.

진행자 : 남녀 간의 사랑을 부정하고 당과 수령에 대한 사랑만 허용한다는 얘깁니까?

문성휘 : 아, 그러니까 당이나 수령, 국가에 충성하는 과정에서 남녀간의 사랑도 맺어진다는 거죠.

진행자 : 아... 남녀가 길가다 눈이 맞아 좋아하는 게 아니고요?

문성휘 : 북한엔 그런 사랑이 현실에는 존재하도 예술에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순수한 사랑이 인정이 안 됩니다.

박소연 : 문 기자는 북한에 사랑이란 말을 써보신 적 있어요?

문성휘 : 어우... 닭살 돋는다. (웃음) 북한 사람들도 연애야 다 합니다. 아마 못 해본 사람이 거의나 없을 거예요. 그런데 솔직히 난 너를 좋아해... 이런 말은 해봤지 사랑한다? 이런 말은 진짜 못 했어요. (웃음) 대개 북한 애들은 내가 널 좋아해 이 정도지 사랑한다는 말은 잘 안 씁니다. 근데 소연 씨, 요즘은 어떤가요?

박소연 : 문 기자님이 북한에 있을 때도 그 노래가 있었는지 모르겠는데 '아내에 대한 사랑'... 그 마음 아신다면 사랑하시라, 그 진정 아신다면 사랑하시라 (노래)...

문성휘 : 아, 저도 그 노래 기억하고 있습니다.

박소연 : 그 노래가 나온 지 오래됐군요... 지금 북한 노래 중에 당성, 수령성이 유일하게 빠진 게 그 노래에요. 근데 이 노래도 마지막에 총체적인 결론은 혁명의 한 길을 함께 가는 아내이기 때문에 이렇게 사랑한다고 끝을 맺습니다. 그게 어딜 가겠어요? (웃음) 북은 그저 그렇습니다. 당과 수령에 대한 사랑... 조국에 대한 사랑... 사랑의 씨앗은 어디서 꽃 폈는가? 동지들 사이에 꽃폈다, 동지 호상(상호)간의 사랑! 사랑은 이런 것이죠. 아직도 북한에선 사랑한다는 말을 잘 안 씁니다.

문성휘 : 지금 외국 영화나 한국 영화가 많이 들어간다고 해도 북한 사람들이 그런 부분에 있어서 좀 폐쇄적입니다. 사랑한다는 말... 그런 말하기 진짜 어색해하죠.

진행자 : 남쪽은 특히 요즘 얘들은 전혀 어색하지 않은 것 같아요. 유치원 다니는 어린 아이들도 엄마, 아빠, 선생님, 친구들한테 사랑한다는 표현이 얼마나 자연스러워요? 그리고 요즘 젊은 세대들도 사랑한다는 얘길 하는데 스스럼이 없고요.

문성휘 : 아, 그럼 이 기자 때는 어땠어요? 그 때도 사랑한다는 말이 이렇게 자연스러웠습니까?

진행자 : 아니요. (웃음) 저희 때도 사실은 안 그랬습니다. 부모님한테는 진짜 결혼식 할 때나 눈물 흘리며 사랑한다고 말했을까요? 일생에 한번 특별한 때 나오는 얘기였고요. 그런 말을 꺼내기가 어색했죠. (웃음)

문성휘 : 저는 북한에 있을 때는 사랑한다는 말이 굉장히 어색했는데 남쪽에 오니까 좀 유순하게 들리고 부드럽게 안겨와요. 그리고 굉장히 자연스러워요. 제가 금방 여기 왔을 때... 1월 달 즈음이었을 거예요. 볼 일이 있어서 서울역을 갔는데 한 쌍의 남녀가 서로 포옹하고 입맞춤을 하는 걸 봤습니다. 조금 구석이긴 했어도 서울역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요? 그걸 보고 엄청 당황했어요. 그리고 이게 바로 썩어 빠진 자본주의 문화라는 거구나...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딱 일 년 됐을까? 지금도 잊혀 안 지는 게 서울보증보험 앞에 기둥이 하나 있습니다. 기둥 불빛 밑에서 20대 후반 정도 된 남녀 한 쌍이... 남자는 추운 겨울인데 정장을 입었고 여자는 동복을 입었어요. 남자가 여성을 꼭 끌어 앉고 키스를 하는 걸 봤는데 그때는 제 느낌이 완전히 달랐어요. 저도 막 가슴이 뛰매 그게 숭엄하게 보이더라고요. 남자가 그 추운 겨울에 동복도 안 입고 여자를 꼭 안아주는 걸 보니까, 아... 나도 저런 젊은 시절이 있었으면, 저렇게 스스럼없고 자연스럽고 부끄럼 없이 여자를 포옹해주고 입맞춰주는 나도 그런 시절이 있어봤으면...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젠 염치없이 사람들 많은데서 애정 표현을 심하게 하는 거 내놓고는 진짜 보기 좋아요...

박소연 : 그러면 문 기자님, 집에서 아내한테 사랑한다는 말 자주 해주세요?

문성휘 : 아하하하하 (웃음) 저는 지금도 이 말을 해줘야하나 어째야 하나 고민인데 진짜 한 번도 못 해봤습니다.

박소연 : 아내를 어떻게 부르세요?

문성휘 : 저기, 너 있지 않아... 그리고 애초에 집사람이 그걸 바라지도 많습니다. 저희 집 사람에게 그랬다가는 어디 아프나? 무슨 일이 있는가? 그럴 겁니다. (웃음) 여하튼간 이게 바로 북한 사람들입니다. (웃음) 속으로 사랑하는 마음은 한국 남자들과 똑같은데 입 밖으로 못 내는 게 북한 남자들입니다.

진행자 : 저도 결혼한 지 한 7년 됐는데요. 결혼한 다음에는 그런 얘기 잘 안 합니다. (웃음) 우리 아버지, 어머니 세대도 그렇고요.

문성휘 : 근데 내가 보니까 이 기자님네 세대들, 참 섭섭한 게 있다... 컴퓨터랑 나왔으니까 연애편지를 못 써봤잖아요.

진행자 : 아닙니다. 저희 때만해도 손 편지를 써봤죠. 북쪽에서는 연애편지를 많이 쓰나 봐요? 소연 씨는 연애편지 많이 써보셨어요?

박소연 : 네, 많이 받기도 하고 많이 썼어요. (웃음) 첫사랑에게 많이 썼는데 이룩되진 못했죠. (웃음) 근데 제가 북한에 살 때는 당과 조국에 대한 사랑을 떠나서 개인 간의 사랑은 부모 자식 간의 사랑, 연인 사이에만 존재한다고 생각했는데 남한에 오니 새로운 사랑의 종류도 있더라고요. 제가 하나 센터에 다닐 때 야구 경기를 조직해서 집체적으로 갔는데 북한으로 말하면 지지자들이죠. 문 기자님이 야구 선수라면 문 기자님을 적극 지지한다고 막 열성적으로 소리도 치면서 표현하는... 남쪽에선 이걸 팬이라고 하더라고요. 야구 경기는 태어나서 처음 봤으니까 공이 어디로 날라 가도 저는 이게 어떻게 되는 건지 잘 몰라요. 일단 갔으니까 보는데 앞에 앉아있는 여성분들이 글을 쓴 구호판을 들고 '오빠 사랑해'... 난리가 났는데 저는 처음에 그 여성분들이 좀 아프지 않나 생각했어요. (웃음) 제가 그 때만 해도 사회에 나온 지 정말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니까요. 여자가 야구에 미쳐서 야구 선수를 사랑한다고 소리를 지르고 왜 저러나... 근데 사회에서 생활하면서 텔레비전이랑 보니까 이름 난 배우, 가수들이 나오면 사랑한다고 하더라고요. 아, 사랑한다는 게 자기가 지지하는, 따르고자 하는 사람에 대한 감정도 응당 사랑이구나 새롭게 이해를 했어요.

문성휘 : 남한의 팬이라는 거 대단하죠. 북한에도 이런 문화가 제발 좀 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 북한은 기껏해야 떠들 수 있다는 게 딱 두 가지, 제가 생각하긴 딱 두 가지입니다. 우선 첫째,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데 필름이 뚝 끊기는 거예요. 한국은 다 디지털화됐지만 북한은 영사기로 필름을 돌리거든요. 영사기가 돌아가다 필름이 딱 끊기면 그 때는 다들 소리를 쳐요. 영화관 안이 난리가 나죠. (웃음) 그 때 유일하게 맘껏 항의할 수 있습니다!

박소연 : 맞아요. 맞아 (웃음)

문성휘 : 두 번째 축구경기. 다른 경기는 사람들이 관심이 없는데 축구 경기는 다들 좋아하죠. 골인하면 막 소리는 치는 거... 이게 답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좀 재미없는 사회죠.

박소연 : 문 기자님, 그 세계 마라톤 경기에서 정성옥 선수가 우승할 때 봤죠? 우승도 했지만 말을 너무 잘했어요. 어떻게 달려서 일등을 했는가하고 기자가 물으니까 그 105리를 장군님을 생각하며 달렸습니다... 그랬거든요. 기억나시죠?

문성휘 : 북한은 모든 게 다 장군님과 연결됐으니까요. 그때 정성옥 선수 기자회견을 했는데 보는 내내 어색하더라고요. 마지막 급한 때는 자기 아버지, 엄마도 생각이 안 났을텐데... 이렇게 인간의 모든 감정을 다 장군님께 향하게 하죠. 옛날엔 그래도 조국, 당, 수령이었는데 이게 지금은 오직 수령이죠. 조국에 대한 사랑이라는 것도 장군님이 곧 조국이라고 만들어 놓았으니까요. 남녀 간의 사랑도 같아요. 서로 감정이 통하는 것도 나도 장국님을 생각하고 당신도 장군님을 생각하고... 장군님을 생각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감정이 통해 사랑을 한다고 하거든요. 진짜 저 사회, 재미없죠...

사실 당에서 하라는 사랑은 그렇지만 북쪽 주민들의 실제 삶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젊은이들은 남한 젊은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게 사랑을 나누고 부모와 자식, 친구와 동료 간에도 서로 아껴주고 존중하고 사랑하고 있을텐데요. 문 기자 말대로 그걸 입 밖에 내지 않는 게 북쪽식 사랑인 것 같습니다.

남쪽 사람들이 사랑에 대해 너무 많이 말을 한다고 가볍다고 생각하진 말아주세요. 사랑은 표현하지 않으면 모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방송을 제작하는 지금, 남쪽은 12월 25일 크리스마스입니다. 교회에서 온누리에 뿌려진 사랑을 얘기하는데요. 북쪽에도 오늘, 여러분과 사랑이 함께 하시길 빕니다.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밖으로> 오늘은 사랑 얘기였습니다. 다음 주 이 시간,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