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무산 출신 박소연 씨는 2011년 남한에 도착해 올해로 남한에서 생활 5년차를 맞고 있습니다. 갖은 고생 끝에 2012년 아들도 남한으로 데려와... 지금은 엄마로, 또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 밖으로> 이 시간은 소연 씨가 북한을 떠나 남한이라는 세상에서 보고 겪은 경험담을 전해드립니다. 남한의 신기한 세상만사를 얘기하다고 보면 떠오르는 고향의 추억들도 함께 나눠 봅니다.
INS - 벌써 졸업 사진을 찍었고요.
이 맘 때 사람들이 제일 많이들 하는 얘기가 시간 참 빠르다, 세월 참 빠르다... 이런 말일 것 같습니다. 그 시간 속에 우리에게 남겨 진 것 있는지, 빈손으로 시간만 흘려보낸 건 아닌지... 매년 이 시간엔 우리 모두, 같은 마음이겠죠.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저희 세 사람도 오늘 세월 빠르다... 이 얘기 많이 했네요. 소연 씨가 또 소연 씨 아들도 벌써 졸업이랍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 갑니다.
문성휘 : 우리랑 방송을 시작할 때 공부를 시작했다고 했는데 벌써 졸업이라니.
진행자 : 제가 소연 씨가 그 얘기를 하는 걸 들으면서 방송에서 소연 씨에게 졸업했다는 얘기를 들으리라고 생각하지 못 했습니다. (웃음) 그건 저희 방송을 들은 청취자 여러분도 마찬가지 일 것 같습니다.
문성휘 : 그러게요. 저도 그랬어요.
박소연 :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좋은 일은 맞는 것 같습니다.
문성휘 : 세월이 빠른 건지 우리가 철이 없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웃음)
진행자 : 둘 다 정답입니다. (웃음) 지난 시간에도 얘기했지만 졸업은 2월입니다만 졸업 사진은 12월에 찍고 또 상급 학교를 진학하는 학생들은 취학통지서를 받아놓은 시기입니다. 졸업과 입학을 한꺼번에 준비하는 시기이죠.
박소연 : 그러니까 북한의 12월과 남한의 12월이 이렇게 달라요. 문 기자님도 북한의 12월이 아시죠? 얼마나 바빴는지 모릅니다. 남한의 12월은 마무리를 하는 시기입니다. 졸업 사진도 찍고 공부 잘 한 아이들에게 장학금도 주고. 저희 아들도 탔습니다. 잘 하는 것도 없는데 탈북 청소년이라고 도에서 내줬습니다. 그래서 저한테는 12월이 참 고마운, 좋은 한 달입니다.
진행자 : 그런데 북쪽에선 12월이 왜 바쁘십니까? 총화 때문입니까?
문성휘 : 연간 결산, 연간 총화! 뭐... 200 전투 총화... 이런 것이요.
박소연 : 그 모든 것이 다 합쳐서.
문성휘 : 정말 불이 나지.
박소연 : 그러니까 12월이면 정말 힘들었습니다.
진행자 : 남쪽도 총화는 하죠. 그 방법이 다른 것 뿐이죠.
박소연 : 뭘 총화해요? 저는 4년 간 살면서 한 번도 못 해봤는데요.
문성휘 : 나도 모르겠는데요.
진행자 : 직장들에서도 올해의 업무를 어떻게 했나 이런 정리를 하잖습니까?
문성휘 : 그런데 북한은 분기별 총화가 있고요, 12월엔 이런 분기별 총화와 함께 연간 총화도 있습니다. 지금은 그냥 대충 대충 문건이나 잘 만들면 되지만 사실 규율이 까다로웠을 때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형식주의도 있지만 여전히 연간 총화든 분기 총화든 위에서 간부가 한 명이 내려와서 집행하는 걸 보면 그때는 정말 죽어나죠. 책을 또박또박 다 옮겨 써야하고 그걸 혁명적으로 읽고 또 호되게 호상비판 해야하고.
박소연 : 말로 하는 비판은 괜찮죠... 연말이면 우리에게 부과된 외화벌이 과제. 이것을 총화 지어야 해요. 해를 넘기지 않거든요.
문성휘 : 그건 진짜 짜증나는 거다...
박소연 : 그러니까 12월이 되면 진짜 마른 나무에서 물을 짜냅니다. 그래서 아까 우리 얘기한 문 기자 인상처럼 아스피린 풀어먹은, 쓰거운 인상이 저절로 나옵니다.
진행자 : 그래서 문 기자가 아까부터 그렇게 인상을 쓰고 계신 건가요?
문성휘 : 아니, 북한은 그래요. 총화를 할 때는 땀을 뻘뻘 나게 총화를 하고 송별회요, 송년회를 하는데 그때는 진짜 인상 깊어요. 여기는 맨날 마시던 술 마시고 먹던 음식 먹으니까 송년회라는 게 의미가 없지 않습니까?
진행자 : 남쪽도 예전에는 직장에서 연말이면 사장부터 전 직원이 다 모이는 송년회를 조직해서 사장부터 임원까지 다 한 말씀하고 거국적으로 한 잔 마시고... 이런 거한 총화 겸 송년회를 했었는데요.
박소연 : 듣기만 해도 불편하다.
문성휘 : 에이... 난 그런 송년회는 진짜 싫다!
진행자 : 그래서 이제는 간소화했습니다. 형식적이고 필요 없다는 거죠. 간단하게 짧게. 대신에 내가 하는 1년의 총화. 내가 올해 어떻게 살았는지, 나의 일 년은 어땠는지...
박소연 : 그런 것 하죠! 저는 가계부 총정리 합니다. 얼마를 벌었고 얼마를 썼고.
진행자 : 일 년 동안 어떤 일을 했고, 누구를 만났고, 뭘 했었는지...
박소연 : 그런 건 합니다. 그거 할 때 너무 행복하지 않습니까?
문성휘 : 뭐? 행복이요?
박소연 : 내가 올해 얼마나 벌었고 그 중 얼마를 저금했고... 이런 거 보면 좋지 않습니까?
문성휘 : 아, 정말 다들 불편하게 산다. 깨알처럼 써놓은 일정표를 찾아보고 가계부를 일일이 다 적어보고 계산기를 두드리고... 어제 보고 싶다는 영화가 있었죠? 요즘 인기 있는 영화인데 '라라랜드'라고. 그 영화의 주제가 그겁니다. 그냥 우리 어떤 계획을 세우지 말고 흘러가는대로 그냥 살아보자. 저는 그 주제에 공감합니다.
진행자 : 제가 말을 총화라고 표현을 해서 그렇지 문건을 만들고 그러자는 것이 아니라 지금 소연 씨 얘기한 것처럼 나, 개인의 일 년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는 말이었습니다.
박소연 : 그렇죠... 그런데 저는 아직도 북한 여자인 것이 가계부도 핸드폰으로 꽁꽁 누르면 다 되는데 그걸 다 연필을 잡고 종이에 씁니다. 그리고 12월이면 뭐가 좋냐면요. 남한에서는 탈북자들에게 적은 돈이지만 국민은행이나 이런 시중 은행에 일 년에 4.5퍼센트 이자를 주는 적금을 하게 합니다. 일반 국민들에게는 낮은 이자를 주지만 탈북자들에게 4.5퍼센트 이자를 주는 것이 있습니다. 행복 적금 같은 것이요... 이걸 저는 아들과 제 이름으로 넣었는데요. 이 이자가 12월에 나옵니다. 그걸 계산해 보면 액수가 많지 않아도 공짜 돈이니...(웃음)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그러니 얼마나 뿌듯한 지 모릅니다...
문성휘 : 그렇게 계산하며 뿌듯해할 필요도 없습니다. 인터넷에서 가계부에 연결 시켜놓으면 자동적으로 은행과 연계해서 계산이 다 나옵니다.
박소연 : 저는 손으로 쓰는 게 좋다는데요!
문성휘 : 너무 불편하게 사시는 것 같아서....
박소연 : 아니, 그렇게 편하게 사시는 분이 인상은 왜 아스피린 풀어 드셨습니까? (웃음)
문성휘 : 지금은 북쪽도 요즘 많이 바뀌었다고 하는데요. 금방 들어온 탈북자들 만나봤죠? 이제는 북한도 디지털화가 돼서... 이제는 카메라도 웬만한 집도 다 있어서 이제 사진을 찍어서...
박소연 : 시디로 구워서?
문성휘 : 이제는 시디 굽는 시절도 지났답니다. 졸업 사진도 찍어서 작은 메모리에 넣어서 스마트 폰, 타치폰으로 본다고요. 그 대신 요즘 북한이 만드는 타치폰에 불법 영상물을 보지 말라고 메모리칩을 못 끼우게 했어요. 아.... 그러다나니까 엄청 욕먹는 거죠. 애들이 졸업 사진이랑 좀 보게 그런 건 좀 허용하지. 뭘 막겠다, 막겠다 하면 사람이 더 하고 싶은 것이죠...
이래서 북한의 시계 바늘은 앞으로 갔다가 다시 또 뒤로 오고 그러고 있습니다.
소연 씨가 적금 얘기를 했는데 우리의 일 년이 딱 은행 정기 적금 같으면 좋겠습니다.
매달 따박따박 돈을 넣으면 12개월 뒤 약속한 이자를 딱 주는 그런 정기 적금처럼 일 년 동안 살면 보장된 이자를 받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 보통은 기대했던 이자도 안 나오는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생각해볼랍니다. 내 적금은 일 년 짜리가 아니라 10년 짜리다! 10년 뒤에는 이자에 이자가 붙어서 훨씬 더 나을 것이다! 내일 사는 데는 지금 몇 푼의 이자보다 희망이 더 요긴하지 않을까요?
올해 <세상 밖으로>는 여기까집니다. 지금까지 박소연, 문성휘, 이현주였습니다. 2017년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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