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상 위에 올라간 세상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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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무산 출신 박소연 씨는 2011년 11월, 남한에 도착해 올해 남한 생활 4년 차를 맞고 있습니다. 2012년 아들을 데려와 혼자서 키우는 열혈 '워킹맘' 그러니까 일하는 엄마입니다.

<세상 밖으로> 이 시간엔 남한 정착 9년차, 자강도 출신 탈북 기자 문성휘 씨와 함께 박소연 씨의 남한 적응기를 하나하나 따라 가봅니다.

INS - 저희 동기 중에서 가장 빨리 간 친구가 하나원 나와서 1달 있다가 결혼했습니다. 1년 뒤에 돌잔치를 갔는데 그게 남한에서 처음 가본 돌잔치였어요. 감동 받았어요. 영화관처럼 큰 화면에 주변을 어둑어둑하게 해놓고 영상을 틀어주는데 아이를 임신하면서부터 배가 불러오고 아이를 낳고. 그리고 아이가 성장하는 1년 간의 모습 모두를 DVD로 잡아서 화면에 틀어주고...

남한에 한 때 유행했던 유행가 중에 '세상은 요지경'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세상은 요지경, 요지경 속이다... 이런 노래인데요. 청취자 여러분이 남쪽 돌잔치 얘기를 들으면 딱 그렇게 생각할 것 같습니다.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지난 시간에 이어 돌잔치 얘깁니다.

문성휘 : 사실 북한의 돌잔치가 인상에 남아요. 한국은 돌잔치라는 게 돈만 얼마 주면 다 해주지 않습니까?

진행자 : 업체에 맡기면 알아서 해주죠.

박소연 : 자기 손으로 직접 만들면 힘은 들지만 애잔하기도 하고 마음에 남는 것도 있잖아요? 근데 업체에서 배달을 시키고 식당에서 결제만 하고 그러면 저도 별로 기억에 안 남을 것 같아요.

진행자 : 무슨 말씀이세요. 고생합니다... 수많은 식당, 수많은 업체 중에서 하나를 골라야 하잖아요. (웃음)

박소연 : 그렇죠. 인터넷에 딱 달라붙어서...(웃음)

문성휘 : 사실 대사라는 건 먼저 떠오르는 게 과줄입니다.

박소연 : 와... 맞아요. 과줄!

문성휘 : 과줄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고생을 합니까? 그걸 이렇게 얇게 밀어서... 집 안에 쪼르르 말려요.

박소연 : 그걸 아랫목에 말리고 사람들은 막 찬데서 자고 그랬네요. (웃음)

문성휘 : 그걸 또 잘 못 밀면 두꺼워 진다, 얇아진다... 평가가 엄청 많아요. 맥주병으로 얇게 미는데 잘 못 하면 두꺼워지죠. 그럼 이 집 과줄은 먹은 알은 있는데 솜씨가 없다고 하죠. (웃음) 잔칫상 양 옆에는... 저희들이 살던 고장이 못 살던 고장이라 그런지 잔칫상에 제일 높은 게 과줄이었습니다. 이렇게 산처럼 쌓아서.

박소연 : 그건 풍습입니다.

진행자 : 남쪽도 원통형으로 쌓아서 올립니다.

문성휘 : 근데 한국 과줄은 북한 과줄하고 뭔가 다릅니다. 맛도 틀리고...

진행자 : 맛없다고 하시려고 했죠? (웃음)

문성휘 : 네, 맛없어요. (웃음) 그리고 북한은 뭔가 대사다, 돌잔치다 하면 떠오르는 게 돌잡이나 이런 게 아니고 과줄입니다. 떡은 귀해서 많이 못하고 쌀이 나오는 고장에서나 하고요. 지금 같은 식량난에 떡은 무슨. 잔칫날엔 국수를 하죠. 강냉이 국수요. 잘 한다 하는 집이 상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씩 맛 볼 수 있게 떡이랑 과줄을 접시에 담아내고요.

진행자 : 남쪽에선 돌잔치 하면 생각나는 게 백설기와 수수팥떡입니다. 꼭 합니다.

박소연 : 그것도 집에서 하시는 건 아니죠? (웃음)

진행자 : 네, 맞습니다. (웃음) 떡집에 시키죠.

박소연 : 문 기자님 말씀하셨듯이 저희는 동네에 잘 아는 사람 아이의 돌 생일이면 은근히 기다렸어요. 그 집 문 앞에만 가도 콩나물 데친 냄새, 고사리 데친 냄새, 과줄 튀기는 냄새가 나면서 대사 집 분위기가 나고요. 그 집 문을 딱 열면 겨울엔 뜬 김이 뽀얗게 나오면서 아... 기다리게 되고요. 여기는, 남한이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여기는 돌잔치 집에 가면 바닥이 아니라 의자에 앉아서 뭔가 회의하는 것처럼, 먹고 싶은 건 자기가 알아서 떠와서 먹고요. 북한에선 뜨끈한 구들에 앉아서 입고 갔던 동복을 둘둘 말아 뒤쪽에 밀어 놓고 나면 상이 들어옵니다. 그것도 딱 공식이 있어요. 한 사람 앞에 송편 2개, 절편 2개, 속도전 떡 1개, 골미떡 몇 개... 이렇게 돌아가게 동그란 상에 차려 나옵니다. 그리고 농마국수 위에 아예 김치를 올려서 줘요. 작은 상에 김치 그릇까지 놓을 자리가 없으니까요. 그럼 국수는 먹고 '비닐봉지 주오...' 해서 떡은 그 비닐봉지에 담아 식을까봐 배 안에 넣어서 집에 가서 가족들과 나눠 먹던 기억이 나네요. 이게 옛날이 아니라 지금의 일입니다. (웃음)

문성휘 : 이건 잘 사는 집 얘기다... (웃음) 그러고 보니까 잔치 준비라는 게 정말 기억에 남을 만합니다. 한 달 전부터 술을 담가야 하죠. 그리고 그 술 끓는 소리를 잘 들어봐야 합니다. 술이 쉽게 망쳐요. 근데 대사를 할 때 이게 엄청 중요합니다. 술, 두부! 두부도 쉽게 쉽니다. 그리고 과줄. 사람들 그런 얘기 잘 하는데요. 술이 잘 끓는 소리가 들리면 얘 앞날은 술술 잘 풀릴 것 같다...

박소연 : 아, 맞아요!

문성휘 : 콩나물도 진짜 매칠하게(매끈하게) 잘 자라면 좋다고 하고 밑에 잔뿌리가 많으면 엄청 욕을 하죠. 물을 잘 주라고 그랬지! 하면서... 마치 콩나물 대에 아이의 운명이 달린 것처럼 얼마나 신경을 쓰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두부를 하다가 쉬면 그때는 막 아이의 일생이 망하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랄까요?

박소연 : 첫돌이니까요.

문성휘 : 결혼식도 그렇죠. 대사 음식이 뭔가 잘 못 되면 그땐 정말 큰일입니다.

진행자 : 신경 많이 쓰이겠습니다.

문성휘 : 그렇죠. 돌에도 그렇지만 대사 때는 옆집들에서 상을 많이 빌려옵니다. 그리고 자기네 집이 좁으면 옆집을 빌리고요.

박소연 : 옆집도 덩달아 좋아하죠.

진행자 : 그냥 우리 집 잔치가 자연스럽게 동네잔치가 되는군요. 그야말로 대사, 큰일입니다.

박소연 : 여기는 돌잔치 때 아이를 안고 있고 애가 자면 유모차에 많이 태우던데요. 북한에선 돌 생일날에 조선 저고리를 입고 떡 그릇을 들고 자기상에 가져가면 부모들이 너무 좋아해요. 근데 북한은 허약이 많이 걸리니까 한 돌이 되도 다리가 아주 가늘고 걷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죠. 그러니까 이게 장가갈 때까지도 부모들의 자랑거리로 남는데 한국에서는 그런 자랑을 안 하더라고요.

문성휘 : 솔직히 남한 사람들 과줄 만들라 하면, 특히 젊은 세대는 어떻게 만드는지 모를 겁니다.

진행자 : 맞습니다. 용어를 모르는 친구들 있을 거예요. 저도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입니다. (웃음)

문성휘 : 인터넷을 두드려 봐야겠죠. 그리고 이 대사를 치를 때는 정말 물이 문제입니다. 물이 정말 많이 들거든요. 수돗물은 맛이 안 나서 멀리 가서 샘물을 떠오고요. 그 멀리 가서 그 샘물을 길어오던 생각... 아유! 끔찍해. (웃음)

진행자 : 인터넷에서 많은 식당 중에 하나를 고르고, 많은 떡집 중에 하나를 고르고, 많은 한복집 중 하나를 고르고... 이게 힘들다고 얘기할 게 아니네요.

문성휘 : 그렇죠! 그런데 그렇게 고생해서 음식을 마련하는데 음식이 다 잘 되면 정말 안도의 한숨을 쉬죠. 우리 아이는 정말 잘 될 것 같다. 게다가 돌잔치에서 아이가 5천 원 짜리 돈을 딱 쥐었다... 부모들 난리 납니다. (웃음) 정말 똑똑하다고. 아마 아이를 낳았던 그 순간만큼 기쁠 겁니다.

박소연 : 만년필이나 학습장을 쥐면 뒤통수를 치죠. 놓으라고. 그리고 남한은 돌 생일이면 부조 돈을 봉투에 넣어서 주니까 부조가 얼마나 들어왔는지 모르는데요. 북한에선 옷을 합니다. 이 집에 돌 생일에 부조가 정말 많이 들어왔다는 건 집에 양복장 앞에 빨래밧줄을 매고 옷이 들어오는 족족 거기에 걸어 놓습니다. 그러면 들어오는 사람마다 세보고 와... 부조 많이 들어왔다 그러죠.

진행자 : 남쪽은 돌 반지를 합니다. 금 한 돈짜리 돌 반지를 해주죠. 금 한 돈이 갖는 절대적인 가치가 있잖아요? 예전엔 이 돌 반지를 모아서 애들 대학 들어갈 때나 이렇게 학자금으로 보탰다고 하는데요. 최근엔 금값이 너무 많이 올라서... 한 돈에 20만원 약 200달러가 넘었습니다. 거의 다 그냥 현금으로 하는 추세입니다. 이런 것도 좀 재미가 없어졌죠? (웃음)

문성휘 : 맞아요. 어쨌든 까놓고 말해 돌잔치는 정말 힘이 듭니다. 준비하는 것도 그렇죠. 그래도 여자들이 일하기 힘들어 설 명절은 없었으면 좋겠다 그래도 돌잔치가 없었으면 좋겠다, 힘들다 이런 말은 하지 않아요.

박소연 : 안 하죠. 이 세상은 사람이 태어나서 돌상을 받고 결혼 잔칫상을 받고 환갑상을 받아서 '세상'이라고 한 답니다. 살아서 세 개의 상을 받아야 세상을 산 것과 같다고 해요. 그러니까 우리 돌상은 꼭 해줘야 하고요. 맹물을 한 잔 떠놓고라도 해줘야하고 그러니까 엄마들은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문성휘 : 내 결혼식은 그렇게 신경 쓰지 않았죠. 돌잔치는 엄청나게 신경이 쓰이더라고요. 저뿐 아니라 저희 아버지가 술을 참 좋아했는데 술독에 귀를 대고 들어보는 건 그때 처음 봤습니다...(웃음)

소연 씨의 설명을 들으면서 눈 앞 북한의 돌잔치 풍경이 죽 그려지네요.

남쪽도 예전에 그랬습니다. 돌 때 아이가 걸어서 돌떡을 돌린 게 자랑이고 집에서 일일이 잔치 음식을 만들고 떡을 찌고...

사회가 변하면서 돌잔치 풍경도 달라진 것 같습니다.

요즘 평균 수명이 점점 늘어나면서 남쪽에서 환갑잔치는 거의 안 하는 추세인데 비슷하게 영아 사망률이 낮아지면서 돌 생일의 의미도 예전 같지 않은데요.

그렇다고 해도, 환갑이 없어져도 돌 생일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우선 부모들의 마음이 그렇고요. 더불어 '일생의 단 한번'이라는 마법의 단어도 돌잔치를... 남이나 북이나 세상에 둘도 없는 대사로 만들고 있습니다.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오늘 얘기는 여기까집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이현주 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