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무산 출신 박소연 씨는 2011년 11월, 남한에 도착해 올해 남한 생활 3년 차를 맞고 있습니다. 2012년 아들을 데려와 혼자서 키우는 열혈 '워킹맘' 그러니까 일하는 엄마입니다.
<세상 밖으로> 이 시간에는 남한 정착 8년 차 자강도 출신 문성휘 기자와 함께 박소연 씨의 남한 적응기를 하나하나 따라 가봅니다.
INS - 망년회(송년회) 할 때 63빌딩에서 했는데 다섯 명이서 70만 원 정도, 그러니까 북한 돈으로 490만 원이 나온 거예요. 490만 원이면 우리 아버지 죽을 때까지 술을 마실 돈인데 그걸 한 끼에 앉아 먹었다...
남한에서는 연말이면 유명 음식점들의 경우 일찌감치 예약이 완료됩니다. 각종 송년 모임 때문에 단체 손님이 많기 때문인데요. 이렇게 함께 모여 음식과 술을 나누면서 화기애애하게 한 해를 마무리하곤 합니다. 소연 씨도 연말이면 이런 남한의 송년회를 즐기게 됐는데요.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늘 떠나온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하다고 합니다. 남한에서 보내는 연말 얘기, 지난 시간에 이어서 계속 들어보시죠.
진행자 : 요즘 연말이라서 송년 모임들 많을 것 같은데 어떠세요?
문성휘 : 무척 힘들어요. 북한에서는 '설날은 술 날이다'고 해서 그날 술을 실컷 마시잖아요. 그런데 남한은 11월 말부터 송년회를 하니까 매일 참가해서 이 사람 저 사람 만나야 하고, 술을 마셔야 하니까. 그렇다고 빠질 수도 없고.
진행자 : 직장에서도 모이고 친구들끼리도 모이고 각종 모임이 많은데, 탈북자들끼리도 송년회 하시나요?
문성휘 : 많이 모이죠. 탈북자들끼리 모이면 재밌어요. 우리끼리만 통하는 말들이 있어요. '수령님 바깥 정세가 위험하니 안에 모시겠습니다.' 이런 말이 있는데, 북한에서는 아주 재밌는 소리거든요. 그런데 남한에서 이런 얘기를 하면 다 눈을 깜빡거리면서 무슨 소린가 하죠.
우리끼리는 그런 농담이 오갈 수 있고, 그래서 연말에 모이면 자연스레 추억이 되살아나요.
지난해 탈북자들끼리 모여서 화제가 됐던 건 화장실, 변소였어요. 남한에서 우리가 화장실에 대해 웃으면서 할 얘기가 뭐가 있겠어요. 그런데 북한에서는 특히 연말이 되면 남자들 술 마시고 화장실 들어가서 자던 얘기, 문짝이 없는 화장실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 보기가 창피했던 얘기 등 고향을 추억하는 다양한 얘기가 나오죠.
박소연 : 문 기자님은 탈북자들끼리 모인다고 했잖아요. 저는 안 모여요. 왜냐면 탈북자들끼리 모이면 저도 모르게 측은해지고 마음이 산란해져요. 그래서 저는 탈북자들과 모여본 적이 없어요. 그냥 집에 있지 않으면 회사 사람들과 약속해서 영화를 보러 가요. 탈북자들과 만나면 고향 얘기가 나오니까 울 것 같아서. 아직은 마음의 준비가 안 됐어요.
작년에 망년회(송년회) 할 때 63빌딩에서 했는데 돈이 엄청 나왔어요. 와인이라는 것도 마시고, 북한으로 말하면 가공 들쭉술, 발효주 같은 거예요. 그런데 마지막에 돈을 계산하려고 보니까 다섯 명이서 70만 원 정도, 그러니까 북한 돈으로 490만 원이 나온 거예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저희 아버지가 술을 엄청 좋아하셨거든요. 그런데 한두 병씩 사오니까 어머니한테 자꾸 지청구를 들었어요. 이 돈이면 국수를 몇 개나 사겠는데 왜 자꾸 똥오줌으로 나가는 술을 먹느냐고. 그래서 아버지가 그 좋아하는 술을 엄마 눈치를 보며 마셨는데, 설날 전이라고 엄마가 '영감한테 한 턱 쏜다'고 깡통으로 술을 사왔어요, 5킬로그램짜리.
북한에서는 제일 도수가 높은 게 40도, 그걸 원주라고 하는데 엄마가 원주 5킬로라고 했어요. 실제로는 그게 원주가 아니었어요. 돈을 아끼려고 25%짜리를 사오고 40도라고 속였어요. 그리고는 엄마가 아버지한테 '이건 딱 설날부터 마시라'고 했는데, 아버지가 몰래 잡수다 절반도 안 남은 거예요. 그래서 마누라가 들어오면 또 지청구를 들을까봐 거기에 더운 물을 부었어요. 25%인지는 몰랐거든요. 그런데 설날에 손님들이 와서 마시려고 하니까 맹물인 거예요. 그때는 막 웃었는데, 저는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남한에서는 소주에 누가 물을 타겠어요. 남아도 안 가져가잖아요. 그래서 490만 원이면 우리 아버지 죽을 때까지 술을 마실 돈인데, 그걸 한 끼에 앉아 먹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63빌딩에서 내려왔어요.
문성휘 : 북한에 그런 말이 있어요. 여우도 죽을 때는 자기가 태어난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죽는다. 다른 탈북자들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한 해가 지나갈 무렵이면 혼자 있는 걸 굉장히 싫어해요. 특히 이맘때 혼자 있으면 사람이 굉장히 울적하고 순간적으로 고향 생각이 치밀면 거의 미치거든요. 그건 겪어본 사람만 알아요. 저는 초반에 그런 걸 체험한 뒤로는 연말이면 될수록 혼자 있으려고 안 해요.
진행자 : 마음에 맺힌 게 있어서 그러신 것 같아요. 아이고, 소연 씨는 우십니다.
문성휘 : 소연 씨뿐만 아니라 탈북자들은 지금 같은 때 혼자 있으면 안 돼요. 혼자 있으면 다 울 거예요. 그래서 나는 송년회를 일부러 찾아다니기도 해요.
박소연 : 제가 울컥한 게 문 기자님이 '여우도 죽을 때는 머리를 고향 쪽으로 돌린다'고 하셨잖아요. 제가 아직 젊지만 가끔 아들한테 '엄마가 죽으면 유해를 압록강에 뿌려 달라'고 말하거든요. 고향을 떠나와서 그 고향에 다시 갈 수 없는 사람들은 앞날이 없는 거예요. 남한도 조국이 맞지만 내가 태어난 곳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죽어서라도 고향에 가서 흐르고 싶다...
문성휘 : 내가 서울인데, 고향이 부산이다. 어떻게든 가려고 하면 갈 수 있잖아요. 따지고 보면 우리 고향도 비슷한 거리에 있어요. 그런데 갈 수 있다는 것과 갈 수 없다는 것은 완전히 다르죠. 정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다는 거, 어떻게 설명할 수가 없죠.
진행자 : 남한에도 혼자 지내는 분도 있고, 고향 떠나온 사람도 있고. 소외된 계층이 가장 외로움을 느끼는 시기가 이맘때라고 해요. 그래서 12월이 되면 서울 시청광장에 대형 성탄 나무가 설치되기도 하지만, 사랑의 온도탑도 설치돼서 한 달 동안 불우이웃돕기가 진행되고요. 그 사랑의 온도탑이라는 게 이번 해 모금 목표가 만약에 100억 원이라고 한다면 1/100이 채워질 때마다 1도씩 올라가는 식입니다. 또 구세군 자선냄비도 있잖아요. 그런 것들도 북한에서는 보지 못했던 광경일 것 같아요.
박소연 : 그렇죠, 구세군 자선냄비도 여기 와서 처음 봤죠.
문성휘 : 광화문 광장에 있는 사랑의 온도계가 그러니까 100억 원이 다 모이면 그 온도계가 100도가 되는 거잖아요. 온도탑이 100도가 되는 순간은 뉴스에서도 엄청 떠들잖아요. 한 2년 전에는 120도까지 올라가더라고요. 나도 마음이 뿌듯하고.
남한은 구세군, 사랑의 열매 등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한 단체가 얼마나 많아요. 또 잘 사는 사람들이 돈을 지원하면 어려운 이웃들한테 나눠주기도 하고요. 북한에도 그런 마음이 왜 없겠어요. 북한에도 돈 많은 사람들이 있고, 잘 사는 사람들이 그런 걸 생각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북한에서 그런 행위를 하면 곁가지예요. 북한은 '백두의 혈통'이라고 하잖아요. 백두의 혈통이라는 줄기 하나로 뻗어나가야 하는데, 이 혈통에서 곁가지가 커지면 기본 백두의 혈통이라는 줄기 자체가 불안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이런 곁가지를 절대로 용납하지 않아요. 북한 사람들이라고 왜 동정심이 없겠어요. 이웃에서 먹을 게 없고, 땔감이 없어 죽게 생겼다 하면 옆집에서 몇 끼씩 도와줘요. 그런데 몇 끼씩밖에 못 도와줘요. 그러다 자기네들도 다 죽게 생겼으니까. 그걸 국민적인 운동으로 활성화하면 숱한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 텐데. 아무리 고난의 행군을 겪든 지금처럼 어려운 때라고 해도 북한도 이렇게 다 모으면 어려운 때에도 죽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진행자 : 송년이라는 말이 한자로 '보낼 송(送)'이니까 올 한 해를 잘 보내자는 거잖아요. 돌이켜 보면 올 한 해 어떻게 지내신 것 같아요?
박소연 : 저는 남한에 와서 좋았고, 잘 보낸 것 같아요. 아들도 작년에 왔고요. 아들이 오기 전 첫 해는 북한에서 금방 떠나왔으니까 내일이라도 우리 집 골목으로 올라갈 수 있을 것 같고 그랬어요. 제가 남한에 와서 '아버지가 보고 싶다'고 붓글씨를 써서 벽에 붙여놨어요. 그냥 흰 종이에 비뚤비뚤하게 쓴 건데, 그걸 계속 보면서 울었어요. 그때 그 순간만큼은 죽을 것 같았어요. 어떻게 그 사람들을 못 보고 살 수 있을까. 그해는 그렇게 보냈는데, 작년에 아들이 오니까 아버지, 엄마가 잘 생각이 안 나더라고요. 솔직하게 말하면(웃음). 점점 잊히지는 것 같아요. 잊히지만 어느 순간에는 또 원점으로 가고요. 어쨌든 저는 남한에 와서 두 해 동안 힘든 일도 많았지만, 지금을 살고 있잖아요. 참 잘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좋았어요.
진행자 : 올 한 해 직장생활도 안정이 된 것 같고, 아들도 와서 남한살이를 잘 즐기고 계시다는 생각이 들어요. 적응 잘 하시면서.
박소연 : 북한에서는 직장을 다녀도 뭐 하나 주는 게 없어요. 그런데 남한은 1년 동안 잘 다녔다고 취업 장려금 550만 원(5,500달러)을 정부에서 주더라고요. 얼마나 좋아요, 내 통장에 돈이 들어오고. 또 연말이면 분위기에 맞춰서 놀러도 다니고.
진행자 : 네, 사실상 12월 31일에서 1월 1일 하루가 바뀌는 거고, 2014년에서 2015년으로 숫자만 바뀌는 건데도 마음은 굉장히 다른 것 같아요. 어쨌든 한 해 잘 마무리하시고, 행복한 새해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새해에 뵐게요.
문성휘, 박소연 : 감사합니다. 새해에 봬요(웃음).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너를 남기고 온 작은 마을에도
'그리움'이라는 시의 한 부분입니다. 남한의 한 대형 서점 건물 앞에는 계절마다 좋은 글귀가 붙는데요. 이번 겨울에는 방금 전해드린 시인 이용악 씨의 '그리움'이 실렸어요. 고향, 그리고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애틋한 그리움을 쏟아져 내리는 함박눈을 통해 담아낸 시인데요.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어서일까요? 저는 유독 '눈이 오는가 북쪽엔'이라는 부분에 시선이 멈추는 것 같습니다. 정말이지 북쪽에는 눈이 내리고 있나요? 남쪽이든 북쪽이든, 어디에든 내릴 수 있는 함박눈처럼 언젠가 연말에는 문 기자도, 소연 씨도 고향에서 송년회를 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오늘은 여기서 마무리하고 2015년 새해에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윤하정이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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