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이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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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무산 출신 박소연 씨는 2011년 11월, 남한에 도착해 올해 남한 생활 5년 차를 맞고 있습니다. 2012년 아들을 데려와 혼자서 키우는 열혈 '워킹맘' 그러니까 일하는 엄마입니다.

<세상 밖으로> 이 시간엔 남한 정착 10년차, 자강도 출신 탈북 기자 문성휘 씨와 함께 박소연 씨의 남한 적응기를 하나하나 따라 가봅니다.

INS - 17평보다 더 큰, 그것도 2012년도에 지은 아파트여서... 산이 마주 있어서 공기가 너무 좋고. 아파트 14층인데요...

소연 씨가 지난주 이사를 했습니다. 남한에 와서 처음 받았던 방 하나짜리 작은 아파트를 반납하고 크기가 2배나 되는 새 아파트로 이사했습니다. 목소리 톤이 두 배는 높아졌고 자다가도 웃을 것 같이 좋아하네요. 슬픔은 나누면 절반이 되고 기쁨은 나누면 두 배가 된답니다. 청취자 여러분도 소연 씨의 기쁨, 함께 들어주시죠. 두 배가 돼서 청취자 여러분께 돌려드리겠습니다. 오늘 <세상 밖으로> 소연 씨의 이사 얘깁니다.

진행자 : 안녕하세요.

문성휘, 박소연 : 안녕하세요.

진행자 : 오랜만에 뵙는 것 같아요. 잘 지내셨습니까?

박소연 : 보고 싶으셨어요? 잘 지냈습니다. (웃음)

문성휘 : 소연 씨, 그 동안 이사하셨다면서요?

박소연 : 네, 인생 대업을 했습니다.

문성휘 : 이사가 인생 대업까지 되나요?

박소연 : 이사하고 환경이 좋아져서 지금까지도 벙벙하고요. 자다가도 일어나면 이 방 저 방 다닙니다. 넓은 베란다도 슬리퍼 신고 나가보고. 현실이 잘 믿기지 않아요.

문성휘 : 원래 살던 집이 작았나요?

박소연 : 남쪽으로 12평 되는데 북한은 사방 1미터가 한 평이니까 북한식으로 하면 한 30평 됐겠죠.

진행자 : 평이라는 면적이 남쪽은 좀 다릅니다. 남쪽에선 한 평이 3.3 제곱미터인데요. 그럼 소연 씨 12평 사시다가 좀 늘려 가신 건가요?

박소연 : 23 평, 북쪽 식으로 하면 60평 정도 입니다... 크죠?

진행자 : 소연 씨가 남한에 와서 아들 무사히 데려온 이후 가장 큰 경사인 것 같네요.

박소연 : 제가 4년 전에 그랬어요. 첫 번 째 소원은 아들을 데려오는 것이고 두 번째 소원은 17평짜리 집으로 이사 가는 것이다. 시작을 할 때는 그 소원이 죽기 전에 이뤄질까 싶었는데 4년 만에 17평보다 더 큰, 그것도 2012년도에 지은 아파트여서... 산이 마주 있어서 공기가 너무 좋고. 아파트 14층인데요. 북한에선 아파트 14층이면 엘리베이터도 없는데 물동이 한번 올리면 사람들이 반쯤 죽죠. 여기는 엘리베이터도 빠르고요, 14층이니까 파리도 없고요.

문성휘 : 그리고 바람이 잘 통하죠?

박소연 : 네, 밤엔 추울 정도입니다. (웃음) 높은 데서 사는 게 좋다는 걸 남한에 와서 알았네요. 북한은 4-5층 아파트가 태반입니다. 거기서 집값이 제일 비싼 것이 2-3층이고 1,4,5층이 쌉니다. 단층 건물 아파트엔 엘리베이터 자체가 없어서 4,5 층은 힘들고 1층은 도둑이 많이 들고 파리도 너무 많습니다. 높은 층에 살면서 이렇게 뿌듯하게 생각하긴 처음인 것 같습니다. 북한 같아선 큰 걱정이죠.

문성휘 : 북한에도 기준이 있습니다. 8층 건물부터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게 돼있는데 이건 평양 기준이고 지방은 15층부터입니다.

진행자 : 그럼 지방의 14층 아파트 경우엔 걸어 올라가야 한다는 겁니까?

문성휘 : 대신 지방에는 15층짜리가 없습니다. 11층... 제일 높아야 청진, 함흥에 12층 정도요. 어쨌든 이런 아파트들부터 평양에 8층 아파트까지 모두 걸어 올라가야 하죠.

박소연 : 그런 기준이 있는 건 처음 알았습니다...

진행자 : 북쪽에서도 고층 아파트가 인기라는 소식을 들었는데요.

문성휘 : 꼭 그렇진 않습니다. 고층 아파트도 3층부터 5-6층 사이가 가장 값이 비싸요. 3층부터는 파리도 적고 도둑도 거기까지 올라가긴 곤란하죠. (웃음)

진행자 : 그렇군요. 어쨌든 소연 씨... 축하드립니다! 이게 공짜로 생긴 건 아니잖아요? 본인이 열심히 알아보고 열심히 모으고, 타산도 하고... 그래서 얻어진 것인데요. 자다가도 눈을 뜰만큼 기쁜 심정이신 것 같습니다.

박소연 : 무슨 감정이랄까요? 침대도 이불도 다 새것이고요. 이불은 텔레비전 홈쇼핑에서 이불, 요, 배게까지 샀습니다. 아들은 청색을 하고 저는 분홍색. 제가 하나원에서 타온 이불을 지금까지 덮었습니다. 솜도 다 뭉치고 그랬는데 새 이불은 값도 눅고 너무 좋습니다. (웃음) 그리고 침대도... 아끼고 아껴서 제일 싼 것으로. 북한에서는 매트리스를 마다라스라고 하거든요? 제일 싼 것이 뭐냐고 했더니 딱딱한 게 싸답니다. 여느 침대 한 개 살 돈으로 두 개 샀습니다. (웃음) 아들도 사실 어리니까 집을 전혀 거두지 않습니다. 늘어놓기 선수인데 새 집에 가니까 아이가 청소기를 돌립니다. 그러면서 이사한 집에서 처음 식탁에서 밥을 먹는데... 저희는 작은 집에서 살았기 때문에 식탁이 없고 바닥에 앉아서 밥상을 동그란 것을 놓고 먹었어요. 이제는 식탁을 사서 의자를 놓고 앉아 먹는데 아들이 기껏 한다는 소리가 엄마, 출장 안가? (웃음) 친구들이 집에 놀러오고 싶다고 하면 저번 집에서는 좀 그랬나 봐요. 사실 이전 집도 좋았는데... 지금은 친구들이랑 집에 같이 와서 놀고 싶다고요. 자기는 너무 좋다고, 이런 집에서 살아야 여유가 있지... 이럽니다. (웃음)

진행자 : 아이가 더 좋아하는군요.

박소연 : 솔직히 제가 더 좋습니다. (웃음) 지금 막 꿈 같습니다.

문성휘 : 저도 금방 왔을 때 17평이었는데 조그마한 주방에 그저... 방이 2개였습니다. 우리집 식구 4명. 그래서 남매가 방 2개를 쓰고 우리 부부는 잘 곳이 없어서 그냥 거실에서 잤습니다. (웃음) 다 큰 애들을 한 방에 재울 수도 없어서 그냥 그렇게 살았는데 방 3개짜리 집으로 이사한 뒤엔 우리도 방 한 개가 차려지니까 그게 엄청 좋더라고요.

진행자 : 집이라는 게 뭔지... 어떻게 보면 그냥 잠자고 먹고 나오는 곳인데 우리에게 정말 중요하죠?

박소연 : 그럼요. 우리의 요람인데요. 제가... 처음 한국에 와서 버스를 타고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다 운 적이 있습니다. 다행이라는 노래였는데 가사가 그랬어요. 길거리에 혼자 있지 않다는 게 너무 다행이다... 내가 그래도 작지만 비를 끊을 수 있는 집이라도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으로 생각이 되는지. 제가 노래를 들으면서 버스 좌석에 앉아 우니까 운전기사님이 계속 뒤를 돌아보시더라고요. 웬 여자가 쭈그리고 앉아 계속 우니까... 그때는 그런 심정이었는데 지금은 어떤 심정이냐면... 그래, 내가 이렇게 살려고 한국에 온 것이지! 이제야 사람처럼 사는구나... 이런 느낌? 참 사람이 많이 바뀌죠? (웃음) 사람의 마음이 요괴입니다.

문성휘 : 비유를 하자면 소연 씨는 이제 막 병아리에서 벗어나 중닭이 된 것입니다. (웃음)

박소연 : 그래요. 저 태어난 지 40일 됐습니다!

소연 씨가 그 버스에서 들었다는 노래가 바로 이 노랩니다. 이적의 다행이다... 인생은 불행보다는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노래와 함께 저는 인사드리겠습니다.

<탈북자 박소연의 세상 밖으로>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