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안녕하세요. <통일로 가는길>의 노재완입니다. 한반도 최대 명절인 추석이 다가왔습니다. 분단으로 가족과 헤어진 남북의 이산가족들은 추석날 아침, 고향 생각이 더 간절할 텐데요. 오늘 <통일로 가는길>에서는 남북이산가족협회 심구섭 회장을 만나 그 안타까운 심정을 들어봤습니다.
기자: 회장님, 안녕하세요?
심구섭: 네, 안녕하세요.
기자: 오늘부터 추석 연휴인데요. 고향 생각 많이 나실 것 같습니다.
심구섭: 그럼요. 저뿐만 아니고 모든 이산가족이 같은 마음일 겁니다. 남들은 고속도로가 밀릴 정도로 고향으로 내려가는 데 우리 이산가족들만 갈 곳이 없습니다. 물론 일부는 북녘땅이 바라다보이는 임진각이나 동해안 휴전선 쪽에 가기도 하지요. 그러나 이산가족 대부분은 추석 아침에 북쪽 하늘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고 한숨을 쉴 뿐입니다.
기자: 회장님은 과거 중국에서 가족을 만난 경험이 있는데 그때 만났던 가족이 동생이었다고 들었습니다. 이후 동생과는 계속 연락이 되고 있습니까?
심구섭: 제가 47년 만에 중국에서 동생을 만났습니다. 동생 만나기 전에 미국을 통해서 연락을 받았고요. 그때가 한국과 중국이 수교를 맺을 무렵이었습니다. 비합법적으로 여권을 만들어서 동생을 중국으로 건너오게 했습니다. 3일 동안 동생을 만났는데요. 첫날은 호텔에서 밤을 새워가며 얘기를 나눴습니다. 얘기를 나누다 보니까 동이 트더라고요. 가슴 찢어지는 얘기 많이 했습니다. 당시 저의 부친은 나이가 많아서 가지 못하고 대신 육성을 녹음해서 가져갔습니다. 그래서 동생이랑 녹음테이프를 들으면서 울다가 웃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기자: 몇 살 아래 동생이었습니까?
심구섭: 그 동생은 저보다 3살 아래였고요. 북한에는 그 밑에 10살 아래 여동생이 또 있습니다.
기자: 그러면 그때는 남동생만 나왔던 거죠?
심구섭: 네, 이후에 여동생도 만나려고 했는데 지금까지 만나지 못했습니다. 여동생은 4살 때 헤어졌는데 지금 74살이 되었습니다. 어렸던 그 동생이 할머니가 된 거죠. 그때 당시 북에서 온 편지에는 "오빠 무릎 위에서 재롱부리던 제가 이제 백발의 할머니가 됐습니다."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이산가족의 현실입니다.
기자: 이후 동생들과는 계속 연락하며 지냈습니까?
심구섭: 네, 지금도 연락하고 있습니다. 편지도 오고 물건도 보내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저뿐만 아니고 생사확인이 된 분들과 금강산에서 합법적으로 상봉했던 분들은 저희 협회를 통해 물건을 보내고 편지도 보내고 있습니다. 오늘도 한 분이 북한에 보낼 물건을 가져왔습니다. 북한에 있는 가족과 개인적으로 알음알음 연락이 된 분들도 저희를 통해서 보내고 있습니다.
기자: 지난해의 경우 추석이 끝나고 당국 차원에서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이뤄졌는데요. 올해는 상봉행사가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전망이 나올 때마다 마음이 답답하고 그러실 것 같습니다.
심구섭: 네, 저뿐만 아니라 많은 이산가족이 같은 심정일 겁니다. 그래도 100명씩이라도 만났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안 되게 됐으니… 지금의 남북관계를 생각하면 앞으로도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산가족 상봉은 점점 어렵게 됐습니다. 거의 절망적이라고 봐야죠.
기자: 당국 차원에서 상봉행사가 되지 않더라도 협회가 나서 이산가족을 찾아주는 경우도 있지 않습니까?
심구섭: 저희 이산가족 단체는 당초에 13군데가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통일부에서는 단체가 너무 많다며 협회를 만들라고 권고했습니다. 협회를 만든 지는 3년 정도 됐습니다. 그런데 예전보다 북중 접경지대의 경계가 엄격해지다 보니까 이산가족들의 교류가 뜸해졌습니다. 나이 많은 이산가족들이 계속 돌아가시고 있고 게다가 남북관계도 점점 나빠지고 있어서 이산가족 문제는 점점 더 어려워질 것 같습니다.
기자: 민간 차원에서 상봉하게 되면 거기에 들어가는 비용은 어떻게 합니까? 만약 개인이 전적으로 비용을 내야 한다면 얼마 정도 필요한지 궁금합니다.
심구섭: 지금 이산가족 상봉은 개인이 부담하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왜냐하면 통일부에서 관련한 비용을 지원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근래에는 민간 차원의 상봉이 거의 없는데요. 일단 상봉했을 때는 정부가 500만 원을 지원해줍니다. 그런데 국군포로라든가 납북 어부, 생활보호대상자의 경우에는 이보다 2배 많은 1천만 원을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신왕래와 생사확인의 경우에는 200만 원을 지원해줍니다. 저희 협회가 나서서 이산가족을 찾아줄 경우 의뢰자에게 250만 원을 받습니다. 여기서 50만 원은 계약금인데요. 나중에 상봉이 성사되면 통일부에서 200만 원을 받게 되니 이산가족 입장에서는 크게 부담될 게 없는 거죠. 그런데 문제는 상봉을 기다리던 이산가족들이 계속 돌아가신다는 겁니다. 그리고 의뢰를 받아 저희가 가족을 찾아 나서도 북한에 있는 가족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이 경우 저희 협회와 이산가족이 반반 손해를 본다는 의미로 계약금 50만 원 가운데 반을 의뢰자에게 돌려드립니다. 함경남북도와 평안남북도는 가족을 찾는 게 그래도 수월한데 황해도 같은 경우 내륙 깊숙이 있어서 무척 어렵습니다. 또 한 가지 생사확인이 된 다음에 북쪽에서 편지가 오면 통일부에서 한 번에 한해서 50만 원을 지원합니다. 그래서 저희가 세 번까지 지원해달라고 통일부에 요청했지만 요즘 재정 상황이 좋지 않은지 거절당했습니다.
기자: 상봉이 안 되면 생사확인이라든가 서신교환만이라도 하는 게 중요할 것 같은데요. 생사확인과 서신교환을 하기 위해서는 기간은 대략 어느 정도 걸립니까?
심구섭: 두만강과 압록강 접경지역인 함경북도와 평안북도는 그래도 빨리 되는데요. 황해도와 강원도 같은 경우에는 무척 오래 걸립니다. 일반적으로 의뢰를 받아서 서신이 성사되기까지 빠르면 3개월 정도 걸리는데요. 물론 더 빠르게 진행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한 달 반 만에 성사되기도 했는데요. 말씀드린 것처럼 황해도는 정말 성사되는 게 힘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에 연락을 취하는 사람들은 한 지역에 대해서 한 사람 것만 찾지 않고 적어도 3~4개를 묶어서 찾아 나섭니다. 그렇게 되면 3개 중의 하나는 찾을 수 있거든요.
기자: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문의가 줄어들고 관심이 덜해지면서 협회 운영에도 어려움이 있을 것 같습니다.
심구섭: 네,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요즘 정부로부터 약간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전화료라든가 사무실 임대료의 일부를 받고 있는데요. 금액은 아주 적은 편이라 여전히 협회 운영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협회 임원들이 돈을 조금씩 내서 근근이 운영하고 있습니다.
기자: 마지막으로 이산가족들에게 추석 명절 인사 부탁드리겠습니다. 이 말씀 들으면서 오늘 회견 마치겠습니다.
심구섭: 이산가족 여러분, 모두 건강하셔야 합니다. 건강하셔야 언젠가 북한에 있는 가족을 만날 수 있고, 편지도 받아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건강해서 그런 날이 오길 기원하겠습니다. 모두 건강히 지내십시오.
기자: <통일로 가는길>, 지금까지 심구섭 남북이산가족협회 회장을 만나 얘기를 나눠봤습니다. 회장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심구섭: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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