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안녕하세요. <통일로 가는길>의 노재완입니다. 개성공업지구는 지금 남북 간에 유일한 경제협력의 장입니다. 남북 경색과 갈등으로 개성공업지구가 몇 차례 존폐위기에 직면한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10년 넘게 지속해 왔습니다. 그런 개성공업지구에 또 다시 위기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습니다. 바로 근로자 임금 문제 때문인데요. 이번 주 <통일로 가는길>에서는 개성공업지구의 10년을 되돌아보고 남북한 경제공동체의 의미를 알아보겠습니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의 결실로 이뤄진 개성공업지구. 개성공업지구는 남측의 기술•자본과 북측의 토지•노동력이 결합한 남북 경제협력의 상징입니다. 개성공업지구는 3년의 준비 끝에 착공됐습니다. 2004년 6월 시범단지 입주업체 15개 기업이 선정돼 가동에 들어가 그해 12월 15일 첫 제품이 생산됐는데요. 당시 남측 언론은 남북이 힘을 합쳐 '통일 냄비'가 만들어졌다며 크게 보도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개성공업지구 조성으로 끊어졌던 도로와 철도도 이어졌습니다.
권호웅 내각 책임참사 (북측): 이번 화물열차 운행은 개성공업지구 사업에 활력을 줄 것이며 통일을 이룩하는 데 크게 이바지하게 될 것입니다.
이재정 통일부 장관 (남측): 평양 신의주를 지나 대륙철도와 연결됨으로써 한반도를 넘어 동북아를 새로운 물류망으로 통합하게 될 것입니다.
사실 개성공업지구는 당초 1단계 100만 평에 이어 2단계 250만 평, 3단계 550만 평 등 총 2천만 평을 개발한다는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2, 3단계는 아예 시작도 못 했고, 진행된 1단계 사업도 절반에 못 미치고 있습니다. 개발 면적으로만 봤을 때 당초 목표했던 계획의 5%, 업체 수로는 6% 내외에 불과한데요. 비록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결과를 만들어냈지만, 남북 경제협력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개성공업지구가 매력적이라고 말합니다.
임병수 남북경제인총연합회 사무총장: 남북경협은 북한의 경제적 여건을 상승시켜 차후 통일을 대비한 비용의 절감을 도출해 내고 즉 통일 비용을 줄일 수 있고요. 개성공단의 예처럼 중소기업의 경쟁력 회복 및 회생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우리 경제에도 적지 않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나아가 북한 주민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어 남과 북의 거리감으로부터 마음의 문을 여는 즉 대남인식의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개성공업지구에 대한 이러한 의미 부여는 개성공업지구가 남북 간의 긴장을 완화하고 화해와 협력의 분위기를 이끄는 중요한 수단임을 강조한 말입니다. 개성공업지구가 처음 문을 열 때 남측에서는 기대 이상의 효과를 거뒀습니다. 북에서 생산된 물건이라 그런지 무척 관심을 보였습니다. 개성공업지구가 조성되기 전까지만 해도 남북 간의 경제협력이라고 해봤자, 임가공무역을 중심으로 한 교역과 금강산관광 정도였습니다. 개성공업지구가 좋아진 남북관계 속에서 태동한 만큼 입주 기업들도 설렘으로 개성공업지구의 발전을 기대했습니다.
옥성석 개성공단기업협회 부회장: 2004년 12월 15일 개성에서 제품 첫 출하 기념식이 있었습니다. 그때 저도 개성 현장에 있었습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기념식에 참석한 가운데 남북이 공동으로 기념식을 열었는데요. 당시 개성에서 생산된 제품이 대형 트럭에 실려 출하되는..
그러던 개성공업지구가 시간이 가면 갈수록 남측 국민의 인식 속에서 존재감이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애초 계획대로 경제적인 논리로 접근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정세에 따라 개성공업지구의 운영도 영향을 받았는데요. 2010년 천안함 침몰사고가 결정적이었습니다. 이어 2013년에는 개성공업지구가 잠정 중단되는 사태까지 벌어졌습니다. 북측은 그해 4월 공업지구 운영과 관련 없는 연례적인 한미군사훈련장을 트집 잡아 통행을 제한하고 "최고 존엄 훼손" 운운하며 공업지구 운영을 파국으로 몰고 갔습니다. 심지어 공업지구에 잔류한 남측 인원들의 생필품 지원까지 가로막았습니다. 결국 남측 인원이 전원 철수해야 하는 상황까지 벌어졌고, 잠정 폐쇄라는 위기를 맞았습니다. 그러나 사태 5개월 만에 남북이 극적으로 운영 재개에 합의하고 9월 중순부터 재가동에 들어갔습니다.
김기웅 개성공업지구 공동위원회 남측위원장: 그동안 우리 기업들이 공단의 가동, 재가동과 관련해서 많은 희망이 있었는데, 16일 자로 가동에 들어가게 됨으로써 이제 우리 기업인들로서도 굉장히 큰 고비를 넘어서 정상적으로 공장을 운영할 수 있는 출발이 되었다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북측의 비정상적인 행동은 2년이 지난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노동자 월급이 문제입니다. 사건의 발단은 작년 11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북측은 당시 남측과 아무런 상의 없이 개성공업지구 노동규정 13개 조항을 개정했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조항은 노동자의 임금 인상률 5% 제한 폐지입니다. 또 야근수당 기준도 상향 조정했습니다. 남북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공업지구인 만큼 충분히 상의하고 진행했어야 했지만, 북측은 공업지구가 북측 땅에 있는 만큼 상의해야 할 이유가 없다며 막무가내로 밀어붙였습니다.
임병철 통일부 대변인: 북한이 과연 남북이 합의한 대로 개성공단을 발전시킬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러울 뿐입니다. 정부는 이러한 북한의 일방적 조치를 결코 수용할 수 없으며, 개성공단 제도개선 사항은 남북 당국 간 협의를 통해 해결되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사실 북측의 일방적 노동규정 개정은 남북 간 합의 위반입니다. 남측 정부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통지문을 두 차례에 걸쳐 전달했지만, 북측은 접수마저 거부했습니다. 운영의 원칙과 신뢰가 깨지면서 개성공업지구는 남북 경제협력의 상징에서 멀어진 느낌입니다. 남측 정부는 강경 자세로 일관했고, 입주 기업들을 설득시켜 북측의 요구에 응하지 않게 했습니다. 만약에 북측의 요구대로 임금을 인상하는 기업에는 남북교류협력법에 따라서 처벌할 수 있다, 이런 경고까지 했는데요. 지금 입주 기업들은 남북한 양측에 끼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당연히 개성공업지구에 대한 신뢰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최근 개성공업지구에 대한 제품 주문이 급격히 줄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옥성석 개성공단기업협회 부회장: 만약 북한의 주장대로 임금의 제한폭이 없어진다면 우리 기업들은 예측 불가의 환경 속에서 사업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건 개성공단의 근간을 흔드는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기업들은 개성공단에서 사업해야 할 이유가 없어지게 되는 겁니다.
현재 개성공업지구에 입주한 기업은 모두 123개사로, 북측 근로자는 5만3천 명에 이릅니다. 미완성의 1단계 조성사업이 완료되면 450개사에 10만 명의 북측 근로자가 생산 활동에 참여하게 됩니다. 남북이 합의한 내용을 보면 2017년까지 2천만 평에 1천 개 이상의 기업과 35만 명의 북측 근로자를 고용하도록 돼 있습니다. 우선 현재 5만 명 이상이 고용됐다면 개성 일대 인력은 거의 동원됐다고 볼 수 있는데요.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합의 당시 "안 되면 군병력이라도 투입하겠다"고 말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아무튼 북측도 초창기에는 개성공업지구 조성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말이 있듯이 개성공업지구가 지금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앞으로 더 나은 발전이 있을 것이란 희망도 있습니다. 2000년대 중반 개성공업지구 건설에 참여했던 토목 기술자 김상종 씨의 말입니다.
김상종 개성공단 토목기술자: 언제가 통일되면 다시 북한 땅에 들어가 열심히 일하고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남은 개성공단 2, 3단계 공사가 잘 마무리되었으면 좋겠고요.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은 지난해 11월 열린 '개성공단 발전 방안 토론회'에서 "개성공업지구가 한반도 긴장 완화뿐 아니라 북측 주민에게 시장경제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켜 상호 이질감 해소와 통일기반 조성에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했습니다. 김 회장은 그러면서 "제2, 제3의 개성공업지구 조성으로 중소기업의 대북투자가 확대되면 통일경제시대를 앞당길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는데요. 김기문 회장의 말처럼 광복 70주년을 맞이해 남북이 상생할 수 있는 따뜻한 기운이 개성공업지에서 솟아나기를 기대해 봅니다. 통일로 가는길, 오늘 순서 마칩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노재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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