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태권도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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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안녕하세요. <통일로 가는길>의 노재완입니다. 체육 종목 중 태권도는 남북의 분단처럼 갈라선 종목입니다. 그러다 보니 태권도 국제기구 역시 남북이 각각 다르게 소속돼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러시아에서 열린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에서 남북한 태권도의 뜻깊은 교류가 이뤄졌는데요. 이번 주 <통일로 가는길>에서는 남북한 태권도의 만남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다음 조 준비~!!, 출발~~!!!"

서울의 한 태권도장. 우렁찬 기합 소리와 함께 발차기 연습이 한창입니다. 기본동작부터 화려한 돌려차기까지 선보인 기술도 무척 다양한데요. 최근 한국에서 생활체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동네 체육관마다 태권도 수련생들로 가득합니다. 심지어 나이 든 할머니까지 유연성을 끼운다며 체육관을 찾고 있습니다.

이윤순 할머니: 아주 의욕이 생기고 한 번 도장에서 운동 한 번 하고 가면 스트레스가 팍 날라가는, 그러니까 아주 좋은 운동이라고 생각하죠.

태권도는 한반도 고유의 무술입니다. 다른 무술과 비교했을 때 태권도는 발기술이 무척 다양한데요. 발기술이야말로 태권도가 차별성 있는 종목으로서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태권도는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을 정도로 외국에서도 널리 알려진 체육 운동입니다. 태권도가 몸을 단련할 뿐 아니라 마음을 수련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요즘엔 미국의 일부 공립학교에서도 정규 체육 시간에 태권도를 가르칩니다.

모아제즈 베렌도 중학교 교감(LA지역 공립학교): 처음에는 한국어 이중 언어 프로그램의 일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인기가 높아지면서 모든 학생이 참석을 원했습니다. 그래서 태권도를 모두에게 개방하기로 했습니다.

태권도가 이처럼 국제적인 운동 경기로 자리를 잡게 된 데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한국 태권도인들이 눈물 나는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외국인들의 태권도 기량도 해를 거듭할수록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올림픽 때 외국 선수들이 한국 선수들을 꺾는 모습도 자주 볼 수가 있는데요.

[SBS 2012년 런던올림픽 태권도 실황중계]

아나운서: 우리 대한민국의 이대훈 선수가 입장하고 있습니다.

해설가: 드디어 이대훈 선수가 입장하고 있네요. 정말 긴장되는 순간입니다. (중략)

아나운서: (경기 종료 후) 오늘 태권도 첫날 경기 대한민국의 58kg 이하의 우리 이대훈 선수가 최선의 경기를 펼쳤지만, 아깝게 은메달에 머물렀습니다. 경기 운영 면에서는 우리가 좀 더 배워야겠고요.

사실 태권도의 세계화는 고(故) 최홍희 씨의 도움이 컸습니다. 1959년 한국에서 대한태권도협회를 창립한 최홍희 씨는 1966년 국제태권도연맹을 창설하고 초대총재로 취임하는데요. 이후 최홍희는 캐나다를 중심으로 국제태권도연맹의 국제화 사업을 벌였습니다.

김희영 태권도 사범: 최홍희 씨가 결국 72년 캐나다로 와서 1~2년 사이는 미국보다는 남아메리카, 유럽 이런 곳으로 중점을 둬서 시범단을 조직하고 계속 다녀 ITF가 번성은 했지만, 미국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태권도 보급에 한계를 느낀 최홍희 씨는 북한과 접촉을 시도했고, 1979년에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을 만나게 됩니다. 한편, 이보다 앞서 한국에서는 정부의 지원을 받아 1973년에 또 다른 국제기구 세계태권도연맹(WTF)이 창설되게 되는데요. 이때부터 태권도는 남북의 주도 아래 각기 다르게 성장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경기 규칙과 방식도 점차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남한에서는 태권도 경기를 할 때 머리, 가슴, 낭심 보호대를 착용하지만 북한의 태권도는 남한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격렬한데도 불구하고 보호대를 착용하지 않습니다. 또 남한과는 달리 북한 태권도는 경기용 장갑과 신발을 착용하게 돼 있는데요. 남한의 태권도에서는 주먹으로 몸통 공격만 허용되는 반면 북한에서는 주먹으로 얼굴을 때릴 수 있기 때문에 경기용 장갑을 끼도록 하고 있습니다. 호신술과 격파는 남북한 사이에 큰 차이가 없으나 기본동작과 틀(품새), 맞서기(겨루기)는 일정한 차이가 있습니다.

(현장음: 북한 태권도시범단 내한공연)

한국과 마찬가지로 북한에서도 태권도의 인기는 매우 높습니다. '건강 태권도'라는 이름 아래 생활체육의 하나로 널리 보급되어 주민들의 건강증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올림픽에서 유일하게 인정하는 것은 남한이 주도하는 WTF뿐입니다. 당연히 경기는 WTF 규칙을 적용하고 참가 자격도 WTF 소속 선수에게만 부여해왔습니다. ITF에 가입된 북한 선수들이 올림픽에 참가하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인데요.

그러던 남북한의 태권도가 사상 처음으로 한 무대에 섰습니다. 지난 5월 12일 한국이 주도하는 세계태권도연맹의 국제대회에 북한의 태권도 선수들이 초청됐습니다. 북한 주도의 국제태권도연맹이 한국 주도의 세계태권도연맹(WTF) 공식행사에 참가한 것은 이번이 처음 있는 일입니다.

조정원 세계태권도연맹(WTF) 총재: 어떤 형식으로 태권도를 배웠든 같이 만날 수 있는 장이 됐다는 게 큰 변화라고 볼 수 있겠죠.

북한 태권도 시범단은 세계태권도선수권 대회 개막식에서 실전 호신술과 격파술을 선보여 관중들로부터 많은 박수갈채를 받았습니다. 특히 몸에 각목을 내리치는 차력 시범은 최고의 압권이었습니다.

황호영 국제태권도연맹(ITF) 수석부총재: 태권도는 원래 전체적으로 호신술입니다. 자기방어의 기술이라고 보죠. 실제 급한 상황에서 어떻게 자기를 보호하는가...

이어 진행된 한국 태권도 시범단도 화려한 공연으로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았습니다.

러시아 관객: 정말 대단했어요, 어른들도 아이들도 모두 감동했어요.

태권도의 남북교류는 지난해 8월 21일 중국 난징에서 북한의 장웅 국제태권도연맹 총재와 남한의 조정원 세계태권도연맹 총재의 만남에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는데요. 남북은 이 자리에서 태권도 발전을 위해 서로 협력하기로 하고 의향서에 서명했습니다. 의향서에 따르면 두 단체는 상호 이해와 단결을 목적으로 상대방이 주최하는 대회에 선수를 파견하기로 하고 교류의 일환으로 시범단도 서로 파견하기로 했습니다. 또 이르면 내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리는 하계올림픽에 북한이 주도하는 국제태권도연맹 소속 선수들도 참가할 수 있도록 노력하기로 했습니다.

장웅 북한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 통합, 앞으로 꼭 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만의 요구가 아니라 국제기구 IOC의 요구이기도 하고요.

오현득 한국 국기원 부원장: 서로의 주장을 반복하지 말고, 또한 소모적인 경쟁을 끊고 서로가 협력할 기회의 장이 됐으면 합니다.

뿌리는 하나라는 것을 확인한 두 단체는 앞으로 태권도 발전에도 힘을 모을 계획입니다. 북한 태권도 선수들의 올림픽 참가나 태권도 양대 국제기구 통합 등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한 자리에서 만난 건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태권도인들은 국제태권도연맹 ITF와 세계태권도연맹 WTF가 통합되면 태권도의 위상도 지금보다 한층 더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오노균 동아시아태권도연맹 회장: 기술 통합이 우선 먼저 이뤄지고, 그다음에 양 단체 간의 기구 통합이 자연스럽게 이뤄지면 큰 부작용 없이 무리 없이 통합될 것으로 봅니다. 또 나아가서 올림픽의 영구적인 종목화를 위해서도 양 단체는 반드시 통합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름지기 국기 태권도로서의 위상이 더욱 높아질 것으로 봅니다.

이번 러시아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는 지난 5월 18일 폐막식을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 2년에 한 번씩 열리는 세계태권도대회는 다음 개최지가 한국의 전라북도 무주로 정해졌습니다. 내년 올림픽에 이어 무주에서도 북한 선수들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길 기대해 봅니다. 통일로 가는길, 오늘 순서 마칩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노재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