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안녕하세요. <통일로 가는길>의 노재완입니다. 45억 아시아인의 체육축제인 제17차 인천 아시아경기대회가 지난 19일 개회식을 시작으로 16일간의 연전에 돌입했습니다. 북한은 축구를 비롯해 16개 종목에 150명의 선수가 참가했는데요. 이번 대회에는 남북 간의 정치적 문제로 북한 응원단이 오지 않았습니다. 경기장에선 남측 일부 관람객들과 북측 선수단이 응원전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번 주 <통일로 가는길>에서는 예전만 못한 남북 공동응원단의 위상을 전해드립니다.
(장내방송)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가 연주가 있겠습니다."
인천 아시아경기대회 개막을 하루 앞둔 지난 18일 오후 5시. 화성시 종합운동장에서는 북한과 파키스탄의 남자 축구 조별예선 2차전이 펼쳐졌습니다.
이 경기장의 전체 좌석 수는 3만 5천여 석. 그런데 이날 경기장을 찾은 관중은 500여 명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관람객보다는 오히려 경기장 안전 요원과 자원 봉사자들이 더 많았습니다.
예선전이고 상대가 약체인 파키스탄이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경기장을 찾은 사람들이 너무나 적었습니다. 그런데 경기장 본부석 아래쪽 일반 관람객 사이에 붉은색 옷을 입은 여러 명이 경기장에 들어오는 북측 선수들을 열렬히 환영했습니다. 이들은 북측 축구 선수들을 응원하기 위해 온 남측 통일운동 단체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입은 빨간색 옷에는 '우리는 하나'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이들의 양손엔 나무로 만든 짝짝이 응원 도구가 있었는데, 북소리에 맞춰 저마다 '우리는 하나'라는 응원 구호를 목청껏 외쳤습니다.
(현장음) 우리는 하나다~ 우리는 하나다~, 이겨라 코리아~ 이겨라 코리아~
이들은 경기 시작 1시간 전부터 자리에 앉아 북측 선수들을 응원했습니다. 북측 선수 한 명 한 명 이름도 불렀습니다.
(현장음) 힘내라~ 이명국!, 힘내라~ 이명국!
경기가 시작될 무렵, 어디선가 또 20여 명의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응원하기 위해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오자마자 크고 작은 한반도기를 꺼내 흔들었습니다. 경기가 시작되고 북측이 먼저 선취골을 넣자 응원 열기는 더욱 타올랐습니다.
(현장음) 잘했다~ 서경진! 잘했다~ 서경진!
반대로 아쉽게 골이 들어가지 않을 때는 괜찮아 괜찮아를 외쳤습니다. 또 결정적인 기회에서 파키스탄 선수가 반칙하면 상대편 선수에게 거센 야유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이들 중 몇 명은 지난 2002년 부산 아시아경기대회 때도 참여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때 함께했던 사람들이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자주 연락하며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12년 만에 다시 모여 감격스러울 법도 한데 그때보다는 흥이 나지 않습니다. 물론 경기장에 관중이 적은 것도 있지만, 기대했던 북측 응원단이 함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애초 북한 응원단과의 공동응원을 추진했지만 북한측이 정치적인 이유로 응원단을 파견하지 않았습니다. 과거 부산 아시아경기대회 때는 경기가 있을 때마다 북한의 대규모 응원단이 와 응원전을 펼쳤고, 일반 관람객들도 이들의 응원에 맞춰 덩달아 춤을 추고 격려도 보내주었습니다. 이날 응원을 이끌었던 이원규 씨도 "예전과는 조건들이 너무나 달라져서 서글픈 마음이 든다"고 말해 격세지감을 느끼게 했습니다.실제로 이날 모인 남북공동응원단은 고작 40명 안팎이었습니다.
이원규 응원단장: 2002년 아리랑 응원단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해주셨거든요. 이번에 인천에서 다시 아시안게임이 열린다고 하길래 그때 그 마음으로 가보자고 해서 조금씩 시간을 내서 이렇게 모였습니다. 아무래도 2002년도에 비하면 확실히 열기가 덜하죠.
최근 남측 언론에서도 북측 선수단에 대한 남측 국민들의 관심이 지난 2002년 부산 아시아경기대회 때와 비교하면 상당히 저하됐다고 보도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경기장에 와서 관람하는 사람들도 대체로 조용했습니다. 그러나 대놓고 응원하지 않지 이들은 분명 북측 선수들을 응원하고 있었습니다.
시민1: 북한 선수들이 우리말로 하면서 뛰어 다니까 마치 우리 선수들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시민2: 운동장이 텅 비어 있어서 좀 아쉽습니다. 북측 선수들이 뛰는 것을 보니까 마음이 좀 짠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응원을 했고, 이겼으면 하는 마음으로 계속 하고 있습니다.
남북관계는 2010년 이후 줄곧 좋지 않았습니다. 남북관계의 악화는 북측의 계속되는 도발 때문입니다. 특히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이 결정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거듭되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도 남측 국민들에게 실망을 넘어 분노를 가져왔습니다.
실제로 이번 아시아경기대회를 앞두고 북측 응원단이 인천을 방문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왔을 때 남측 국민들의 정서는 예전처럼 크게 환영하는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2002년 부산 아시아경기대회 때 거리에서 자주 봤던 한반도기도 좀처럼 볼 수가 없습니다.
김광인 코리아선진화재단 이사: 남북관계가 오랫동안 경색국면에 있고, 특히 북측이 남측을 향해 너무 거칠고 예의 없는 행동을 많이 하다 보니까 우리 국민들은 그런 북한에 대해서 예전과 달리 정이라고 할까요. 애정이나 관심이 덜해지는 것 같습니다.
이날 파키스탄과의 축구 경기는 2대 0으로 북한이 이겼습니다. 승리가 결정되는 순간 응원단을 비롯해 옆에 있던 남측 관중들도 박수를 치며 북측 선수들을 맞아주었습니다. 동시에 본부석 위쪽에 서 있던 북측 선수단 임원들에게도 격려를 보내주었습니다.
이원규 응원단장: 북측 축구 선수들이 잘 해서 좋은 결과 있길 바라고요. 스포츠에서도 남북이 정말 하나가 돼서 스포츠 강국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응원에 대한 보답으로 북측 선수들도 두 손을 높이 들어 관중들에게 인사했습니다. 일부 관중들은 빠져나가는 선수들의 뒷모습이 아쉬웠는지 경기장으로 나가 힘내라고 외쳤습니다. 경기장에 입장할 때만 해도 어색함과 경계심으로 가득했던 북측 선수들도 경기를 끝낸 홀가분함 때문인지 미소를 띤 얼굴로 멀리서 바라 보는 남측 동포들에게 손을 흔들어주었습니다.
시민3: TV 뉴스에서 볼 때는 잘 몰랐는데요. 막상 경기장에 와서 북측 선수단을 보니까 정말 우리 동포가 왔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또 우리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TV에서 듣던 북한의 그 말투를 현장에서 들으니까 좀 반갑기도 했습니다.
응원단은 남북 공동응원이 아시아경기대회의 흥행은 물론 남북관계 개선과 지역 경제에도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북측 선수들을 향한 이 날의 함성은 뭔가 부족함이 있었습니다. 남북 공동응원을 이끌었던 이원규 씨도 경기장을 나서면서 "대회 기간 열정적인 응원을 펼쳐 일반 시민들의 호응을 더 이끌어 내겠다"고 말했습니다.
<통일로 가는길>, 오늘 순서 마칩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노재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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