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헌장 제정

0:00 / 0:00

MC: 안녕하세요. <통일로 가는길>의 노재완입니다. 내년은 한반도가 일본 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난 지 70년이 되는 해입니다. 한국 정부는 광복 70주년을 맞아 통일의 지침이 될 수 있는 '통일 헌장'을 선포하기로 했습니다. 이를 위해 올 연말까지 통일 원칙과 방법 등을 담은 '통일헌장' 시안을 마련할 예정인데요. 오늘 <통일로 가는길>에서는 남한의 '통일헌장' 제정 취지와 의미를 알아보겠습니다.

20세기 한반도를 되돌아보면 그야말로 굴곡의 역사입니다. 주변 강대국들의 지속적인 개입과 간섭을 받았고, 결국 러일전쟁 후 일본의 식민지가 됐습니다. 그리고 1945년 광복과 함께 찾아온 기쁨도 잠시. 1950년 동족끼리 총부리를 겨누고 싸워야 했고, 결국 분단으로 갈라져야 했습니다. 이로 인해 남북의 많은 주민이 이산의 고통 속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사실 전쟁이 끝나고 머지않은 시간에 다시 통일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군사적 대치 상태는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북한은 정전협정을 발톱의 떄처럼도 안 여긴다는 겁니다. 군사적인 여러 테러라든가 그런 것을 정당화해버리는 그런 행태로 지속돼 왔습니다.

한국 정부는 요즘 분단의 고통과 긴장의 역사를 종식시키기 위한 '통일 헌장' 제정을 준비하고 있는데요. 통일 헌장은 지난 8월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가 출범하면서 나왔습니다. 이후 3차례 걸친 회의를 통해 더욱 구체화 됐습니다. 그리고 광복 70주년인 내년에 통일헌장을 선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통일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의지는 점점 강해지고 있습니다. 박 대통령은 독일처럼 통일이 갑자기 찾아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북한이 자체 붕괴로 인한 것이든, 외부의 요인에 의한 것이든 통일은 언제든 닥쳐올 수 있다는 겁니다. 통일에 대비하기 위해 박 대통령이 최근 가장 노력하는 게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는 일입니다. 국제사회가 한국 주도의 통일을 인정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려는 겁니다. 박 대통령은 지난 9월 뉴욕 유엔 총회연설 때도 15분짜리 연설의 3분의 1을 통일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데 썼습니다.

박근혜: 통일된 한반도는 핵무기 없는 세계의 출발점이자, 인권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며, 안정 속에 협력하는 동북아를 구현하는 시발점이 될 것입니다. 독일통일이 유럽통합을 이루어 새로운 유럽의 주춧돌이 되었다면, 통일된 한반도는 새로운 동북아를 만들어 가는 초석이 될 것입니다. 한반도의 평화통일은 그 자체로 유엔의 설립목표와 가치를 구현하는데 기여할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취임 2년 차를 맞고 있는 박 대통령은 모든 정상회담에서 상대 정상의 한반도 평화통일 지지 의사를 확보했습니다. 특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날 때 더 많은 공을 들이는 모습입니다. 한반도 평화적 통일을 위해선 중국의 협조가 절대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인데요. 실제로 요즘 중국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중국군 난징군구 부사령관을 지낸 왕훙광 예비역 중장은 12월 초 관영 환구시보 기고문에서 "북한이 붕괴해도 중국은 구할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오랫동안 혈맹관계였던 북한과 중국의 관계를 감안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합니다. 심지어 기고문에서 "중국은 북한의 구세주가 아니다"라는 표현도 썼습니다. 이는 동북아 국제정세의 커다란 변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허만호 경북대 정치학과 교수: 어떤 형태로 되든 통일 국면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중국의 적극적인 협력이 필요합니다. 이를테면 우리 대한민국 정부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돕는 것까지는 기대하기 힘들겠지만, 통일 과정에서 중국이 방해하지 않게 하는 게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선 중국 지도부와 중국 여론에 통일 이후의 모습에 대해 불신을 줘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미리 중국과 신뢰를 쌓아놓는 게 좋습니다.

통일준비위원회가 올 연말까지 남한 정부가 추구하는 통일 원칙과 방법 등을 담은 '통일 헌장' 시안(試案)을 마련해 내년 상반기 중 관련 공청회를 개최키로 했는데요. 통일준비위원회의 민간위원인 유호열 고려대 교수는 통일헌장의 분량은 500단어 미만이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유호열 통일준비위원회 위원: 내년 상반기에는 헌장 제정을 위해 본격적 공론화 과정에 들어갈 것입니다. 통일 헌장 시안에 대한 학술세미나를 개최하고 국내 광역별 토론회도 진행할 예정입니다. 마지막 단계로 공청회를 거쳐 내년 광복 70주년을 기해 만방에 선포할 수 있도록 준비해 나가겠습니다.

통일준비위원회에 따르면, 통일 헌장은 '공영통일', '평화통일', '열린통일'이란 3대 기조 아래, 민족과 이웃이 행복한 선진민주국가, 21세기 신(新)문명국가 건설을 통일 대한민국의 목표로 제시하게 됩니다. '통일 헌장'에는 통일원칙과 방법, 북한을 통일의 동반자로 인식한다는 것, 그리고 주변국에 이익이 되고 세계평화에도 기여한다는 뜻을 구체적으로 담을 계획인데요.

허만호 경북대 정치학과 교수: 우리가 지향하는 통일 후의 모습은 절차적인 민주주의와 제도적인 다원성이 보장되는 그런 사회가 돼야 할 것이고, 또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권이 보장되는 그런 사회가 돼야 하겠죠. 기본적으로 이런 것들이 들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통일준비위원회의 정종욱 민간 부위원장은 지난 5일 미국 워싱턴을 방문한 자리에서 내년에 발표할 통일헌장에 대해 과거 노태우 정부의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계승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1989년 국회 특별연설을 통해 발표했던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은 자주•평화•민주의 3대 원칙을 기반으로, 민족공동체헌장 채택과 남북연합을 거쳐 통일민주공화국으로 간다는 3단계 통일 방안입니다. 그러나 이 한반도공동체 통일방안은 김영삼 정부 들어 힘을 잃고 말았습니다. 통일에 대한 정부의 기본 입장이 다르다 보니까 이렇게 정권교체 마다 통일방안도 계속 달라졌는데요.

허만호 경북대 정치학과 교수: 통일방안 그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실 방법보다는 통일에 대한 의지가 중요하겠죠. 이미 우리가 취할 방법은 거의 다 해봤다고 봅니다. 그중에서 가장 현실성 있고, 합리적인 것이 남북고위급 회담에서 채택한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유럽의 모델을 받아들여서 신뢰구축을 강조했는데요. 우리가 이미 20여 년 전에 시도를 했었습니다.

남한의 '통일 헌장' 제정에 대해 북한 당국은 최근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데요. 북한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은 지난 11월 6일 발표한 서기국 보도에서 "지금 통일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은 결코 '통일 헌장'이 없어서가 아니다"라며 통일헌장 제정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습니다. 조평통은 그러면서 "조국통일3대헌장과 6.15공동선언, 10.4선언이라는 '통일헌장'과 '통일대강'이 이미 마련돼 있는 만큼 이를 지지하고 이행하는 길로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최윤철 북한전략센터 사무국장: 한국과 중국, 일본 등 동북아 국가들이 함께 평화공존을 위해 새로운 노력을 하고 있는데요. 반면 북한은 이를 흠집 내기 위한 반대를 계속 하는 것 같습니다. 북한도 무조건 반대만 할 게 아니라 여기에 동참해서 남북이 상생할 수 있는 통일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하고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천하대세는 분열이 오래되면 반드시 통합되고, 통합이 오래되면 반드시 분열한다."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의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이것이 역사의 순리이고 생리라면 70년 가까이 분열된 한반도도 결국 시간이 문제이지 통합으로 가게 돼 있습니다. 모처럼 '통일 헌장' 제정에 유리한 환경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국민적 합의라는 대원칙이 무너지면 통일 헌장의 의미도 사라질 것입니다. 때문에 앞으로 남은 가장 큰 과제는 정부가 국민적 합의를 어떻게 이끌어내느냐일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 문제만큼은 초당적으로 조정하고 중재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통일로 가는길>, 오늘 순서 마칩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노재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