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과 함께한 남북 여자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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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안녕하세요. <통일로 가는길>의 노재완입니다. 남한과 북한의 동반 탈락으로 아쉬움을 남긴 올림픽 여자축구 아시아최종예선이 3월 9일 일본 오사카에서 마무리됐습니다.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 이후 남북 간의 군사적 긴장이 높아진 상황에서 경기가 펼쳐졌지만 27년의 우정을 간직한 양 팀 감독은 서로를 격려하고 응원해주었습니다. 오늘 <통일로 가는길>에서는 이들 감독의 우정 이야기와 남북 통일축구대회의 옛 추억을 전해 드립니다.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 등으로 남북관계가 경색된 가운데 남북 여자축구가 지난달 29일 일본 오사카 얀마르 스타디움에서 경기를 펼쳤습니다. 6개국이 출전한 올림픽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은 2장의 올림픽 본선 진출권이 걸려 있어 어느 때보다 경쟁이 치열했습니다.

경기는 1대 1 무승부. 국제축구연맹(FIFA) 순위에서 북한이 6위고 남한이 18위로 다소 차이가 나지만 이날 두 팀의 기량은 엇비슷했습니다.

(녹취: KBS 축구중계)

두 팀은 올림픽 출전을 위해선 반드시 승리를 거둬야 했습니다. 하지만 양 팀 모두 승리에 대한 부담감이 컸던 모양입니다. 특히 북한 선수들의 몸놀림이 썩 좋지 않았습니다.

(녹취: KBS 축구중계)

윤덕여 남한 감독 : 의도했던 대로 분위기는 나쁘지 않은 쪽으로 가기 때문에..

김광민 북한 감독 : 생각했던 것보다는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사실 이번 올림픽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은 이변이었습니다. 세계 4위 일본과 세계 6위 북한이 동반 탈락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축구 전문가들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입니다. 무엇보다 오스트랄리아(호주)와 중국, 한국의 선전이 아시아 여자축구의 전력 평준화를 이끌었다는 평가입니다. 어쨌든 남과 북은 올림픽 예선을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북한은 중국과의 무승부 경기가 가장 아쉬웠습니다. 1대 0으로 앞서다 후반 추가시간에 통한의 동점골을 허용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북한은 오스트랄리아와의 경기에서도 뒤심 부족에 울었습니다. 1대 1 동점에서 후반 5분을 남기고 결승골을 허용했습니다. 이 두 경기에서 미끄러지며 북한의 올림픽 본선행은 무산됐습니다. 남한도 아시아의 높은 벽을 절감해야 했습니다. 특히 체력적인 부분에서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조소현 남한 여자대표팀 주장 : 이틀 쉬는 동안 빨리 (체력을) 회복했으면 좋겠고요. 스태프와 선수들 모두 회복적인 문제를 많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대회에 앞서 한국 국민들은 남과 북이 나란히 올림픽 본선에 진출하길 희망했습니다. 국민들 뿐만 아니라 선수와 감독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경기를 앞두고 감독들은 대개 무뚝뚝합니다. 더구나 북한 감독의 경우 더욱 그렇습니다. 규정상 공식 기자회견에 의무적으로 나서야 하는데요. 이럴 때 북한 감독은 최고 지도자를 찬양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국제대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물론 항상 똑같은 것은 아닙니다. 이번에는 말을 아꼈습니다.

남한 취재진 : 김정은 위원장의 여자 축구에 대한 애정이 대단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이번 대회를 앞두고 특별한 격려가 있었습니까?

김광민 북한 감독 : 그런 얘기는 하지 맙시다. 내일 경기에 대한 거 합시다.

남과 북으로 서로 다른 체제에서 살다 왔지만, 또래들끼리는 통하는 게 있나 봅니다. 친한 선수들은 스스럼없이 다가가 안부를 주고받고 대화를 나누기도 합니다. 심지어 사진도 함께 찍으며 정을 과시하기도 하는데요. 특히 동갑내기인 남한 조소현 선수와 북한 라은심 선수의 애정이 각별합니다.

조소현 남한 선수 : 아무래도 라은심 선수가 많이 보고 싶어요.

라은심 북한 선수 : 저도 (조소현이) 보고 싶습니다. 무척 보고 싶습니다.

선수들만 친한 게 아닙니다. 남한의 윤덕여 감독과 북한의 김광민 감독도 1살 차이로 현역 시절부터 친했습니다. 승부는 경기장에서만 존재했을 뿐 경기장 밖에서는 우정을 나눴습니다. 남한의 윤 감독은 “김 감독 뿐만 아니라 탁영민 윤정수 등 당시 북한 선수들이 숙소에서 연락을 주고받으며 서로 방에 놀러 가기도 했다”고 회상했습니다. 두 감독의 우정은 2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들은 1989년 10월 싱가포르에서 벌어진 이탈리아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 처음으로 만났는데요. 남북이 화해 분위기가 이어진 시기에는 소중한 추억도 만들었습니다.

김광민 북한 감독 : 윤덕여 감독과는 선수 시절에 함께 했습니다. 90년도 북남 통일축구 때 평양과 서울에서 경기 할 때 서로 같은 경기장에서 함께 달렸습니다.

지도자로선 이번 맞대결을 포함해 모두 4번 만났습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남한의 윤덕여 감독은 경기장 등에서 우연히 마주치면 “끼니는 제때 챙기느냐”, “숙소는 불편함이 없느냐” 등의 이야기를 편히 건넨다고 합니다. 북한의 김광민 감독은 “당최 먹을 게 없었다” 등의 농담으로 화답한 적이 있다고 하는데요. 둘은 이번 오사카에서도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보였습니다. 남북 대결이 열리기 전인 지난달 28일 공동 기자회견이 있었는데요. 두 사람은 회견장에서도 서로를 챙기는 모습이 자주 목격됐습니다. 의자에 앉을 때도 먼저 앉으라고 권하고 취재진 앞에서는 어깨동무를 하는 등 친근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기자회견에서는 올림픽에 함께 진출하자며 덕담을 나누기도 했는데요.

김광민 북한 감독 : 양 팀이 다 자기 준비된 능력만큼 나가서 하면 되니까.

윤덕여 남한 감독 : 남북이 함께 본선 무대에 갔으면 좋겠습니다.

두 사람은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대회에서도 감독으로 만났는데 당시 준결승에서 북한이 남한을 2대 1로 꺾고 결승에 진출했습니다. 경기가 끝나고 양 팀 선수들은 함께 손을 잡고 운동장을 돌며 관중석을 향해 인사했습니다. 경기장을 찾은 남측 관중들은 모두가 승자라며 양 팀 모두에게 힘찬 박수를 보냈습니다.

관람객 : 지금 세계에서 유일하게 분단국이 우리나라 아닙니까. 하루라도 빨리 통일이 되어서 정말 단일팀을 갖고 세계인과 경기를 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남북이 정치적으로 교착상태에 빠질 때마다 축구는 남북관계 해결에 있어 물꼬를 트는 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가깝게는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대회부터 멀게는 1990년 남북통일축구대회까지 현대사를 관통하는 하나의 화두로 남북 축구가 자리 잡아 왔습니다. 특히 인천 아시아경기대회 폐막식이 열리던 날. 북한에서는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과 최룡해 당비서 등 최고위급 인사 3명이 인천을 방문해 남한 고위급 인사들을 만났는데요. 당시 고위급 인사들의 첫인사도 축구 얘기였습니다.

최룡해 노동당 비서 : TV로 보니까 구호도 부르고 통일기도 흔들며 응원하는 것을 보고 체육이 다시 말하면 조국통일에서 앞섰구나 하는 자부심을 갖게 됐습니다.

1990년 남북통일축구대회는 상징성으로 인해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는데요. 평양 5.1경기장에서 열린 첫 경기에서는 북한이, 서울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린 두 번째 경기에서는 남한이 승리해 우정을 나눴습니다. 그로부터 12년이 흘러 2002년에는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남북 통일축구대회가 열렸습니다. 또 2005년에는 친선경기 형태로 역시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또 한 번의 남북 통일축구대회가 성사됐는데요. 그 뒤로는 현재까지 통일축구대회의 명맥이 끊겼습니다. 아시다시피 지금 남북은 군사적으로 최고로 민감한 상황에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해결하려고 해도 많은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이럴 때 통일축구대회가 열린다면 어떨까요? 축구인들의 바람대로 평양과 서울을 오가며 경기를 펼친다면 쌓였던 남북 간의 나쁜 감정도 눈 녹듯이 사라지지 않을까요? <통일로 가는길> 오늘 순서 마칩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노재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