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안녕하세요. <통일로 가는길>의 노재완입니다. 요즘 남한의 통일부는 한반도 통일문제에 대한 청소년들의 관심을 높이기 위해 교육용 프로그램 개발에 나서고 있는데요. 지난 11월 중순, 남한의 텔레비전 교육전문 통로인 EBS와 함께 통일문제를 다룬 청소년 연속극을 방영해 주목을 받았습니다. 무엇보다 연속극의 소재가 북한 음식이라는 점에서 무척 이채로웠는데요. 오늘 <통일로 가는길>에서는 남한의 통일기획 연속극 ‘슴슴한 그대’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INT: 슴슴한 그대]
할머니: 배, 사이다, 단감, 설탕, 매실..
성태: 게네 다 아닌 것 같은데..
할머니: 양파도 달지. 시원하게 달지.
성태: 시원하게 달다고?
방금 들으신 내용은 10대들의 소소한 일상에서부터 진로, 꿈, 사랑, 가족 이야기를 사실감있게 담아낸 연속극 ‘슴슴한 그대’ 중 한 대목입니다. 아시겠지만 ‘슴슴하다’는 음식 등이 싱겁다는 뜻의 북한말입니다. 통일부와 교육방송인 EBS가 공동으로 제작한 이 연속극은 최근 한국 사회에서 일고 있는 통일 준비와 통일의 당위성에 대해 청소년들의 관심을 고취하려고 제작됐습니다.
박수진 통일부 부대변인 : 본 드라마에서는 평양음식이라는 소재로 다채로운 조리법과 미각을 자극하는 영상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북한의 맛을 알리고, 나아가 우리 민족이 하나임을 다시금 깨닫게 하고자 통일부 통일교육원과 EBS가 공동으로 기획하였습니다.
‘슴슴한 그대’는 목표도 없이 심심한 인생을 살던 고등학교 2학년 성태의 성장기를 바탕으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주인공 성태 할머니의 이름을 그대로 딴 ‘순자네 식당’은 할머니의 갑작스러운 치매로 인해 점점 유명세를 잃어가게 됩니다. 급기야 할머니는 길짱구를 찾아 혼자서 야산으로 들어갑니다. 할머니가 집을 나갔다는 것을 안 가족들은 뒤늦게 찾아 나서는데..
[INT: 슴슴한 그대]
아빠: 성태 엄마?
엄마: 응.
아빠: 어머니 집에 계셨던 것 아냐?
엄마: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아빠: 일단 전화 끊어라. 내가 그쪽으로 갈 테니까.
(야산에서 할머니~! 할머니~!)
성태: 오늘 할머니가 떡볶이를 해주셨단 말야. 틀림없이 이쪽이야. 할머니 옷에 배인 떡볶이 냄새가 나네..
성태는 결국 동네 야산에서 혼자서 길짱구를 캐고 있는 할머니를 발견하고 집으로 모셔옵니다. 그때부터 할머니는 어릴 적 먹었던 ‘길짱구’를 먹고 싶다고 떼를 쓰기 시작하는데 가족들은 무슨 말인지 모르고 어리둥절해 합니다.
[INT: 슴슴한 그대]
할머니: 길짱구 먹고 싶어!
아빠: 네, 어머니
할머니: 길짱구 지짐 먹고파요?
아빠: 네, 알겠어요. 이거 좀 드세요.
엄마: 식사하세요. 어머니.
성태: 이게 길짱구야 할머니? 먹을래?
할머니: 길짱구..
엄마: 그게 뭔지 알고.. 갖다 버려~
할머니: 길짱구 먹고 싶단 말야.
그러던 어느 날 성태는 평양음식 조리법이 적혀있는 할머니의 빛바랜 공책을 발견하고 이를 토대로 따뜻한 추억의 맛을 되살리게 되는데요. 그러나 성태가 처음으로 도전한 길짱구 요리는 실패하고 맙니다. 처음부터 생소한 요리에 맛을 내기란 쉽지 않겠죠. 이번에는 공책에서 발견한 ‘행베리’ 요리가 성태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평안북도 어느 냇가의 기억이 담긴 ‘행베리고추장찜’. 성태는 학교 친구와 함께 냇가로 달려가 ‘행베리’를 잡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성태의 ‘행베리고추장찜’은 제맛을 내고, 할머니는 성태의 요리를 먹으며 무척 행복해합니다.
[INT: 슴슴한 그대]
성태: 행베리고추장찜이야.
할머니: 행베리?
성태: 맛있어?
할머니: 응. (행복한 표정으로 먹는다)
할머니의 기억은 오락가락하지만 성태는 자신의 진로를 정하고, 요리사가 되겠다고 결심하는데요. 결국, 다른 사람에게 넘어갈 뻔한 식당은 성태의 북한요리로 재개장하게 되고, 이때 처음으로 선보인 음식이 바로 ‘평양온반’입니다. 온반으로 가족은 모두 하나가 되고, 휴업 중이던 식당이 다시 문을 열면서 이 연속극은 끝나게 됩니다.
[INT: 슴슴한 그대]
성태: 아빠, 온반이 먼저
아빠: 이쪽으로?
엄마: 여보 여보, 우리 장 보러 가야 해..
아빠: 어 그래?
엄마: 닭고기도 떨어지고..
아빠: (가게) 잘 보고 있어?
성태: 다녀오세요.
엄마: 그래..
‘슴슴한 그대’를 본 청소년들은 잔잔한 여운을 느꼈다고 합니다. 자신의 꿈을 찾아간다는 청소년의 이야기 속에 북한요리라는 이색소재가 들어가면서 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 같습니다. 서울방송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노현지 양도 이 연속극을 보고 나서 북한 요리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합니다.
노현지 : 10대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가 별로 없잖아요. 그런데 이번에 EBS에서 청소년 드라마를 한다고 해서 저도 관심을 갖고 봤습니다. 드라마에서 나온 북한요리가 무척 이채로웠습니다. 텔레비전으로 봤지만, '길짱구지지개'와 '행베리고추장찜' 등이 되게 맛있게 보이더라고요. 통일은 표면적으로 정치, 경제 이런 것이 하나로 통합되는 것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한국과 북한 사람들의 생활이 하나가 된다는 것, 특히 이런 먹거리가 어떻게 보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연속극 촬영은 때론 밤샘으로 이어지고, 촬영 후반부로 치달을수록 제작진과 배우들은 체력적으로 지쳐갑니다. 그런데 촬영을 위해 준비했던 평양온반을 먹으면서 제작진들과 배우 모두 온몸이 따뜻해졌다는 재미난 미담도 있습니다. 닭고기와 닭알(계란) 등을 넣어 담백하게 우려낸 국물이 일품인 평양온반. 온반을 처음 맛본 제작진과 배우들은 희한하게도 이구동성으로 “옛날 우리네 어머니가 해주던 그맛”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습니다. 연속극 제작을 맡은 EBS 미디어 최우준 씨는 “할머니 역을 맡았던 배우 정영숙 씨가 실제 고향이 평안북도 선천”이라며 “정영숙 씨를 통해 북한 요리에 대해 여러 가지로 공부했다”고 말했습니다.
최우준 : 이 드라마를 하게 된 배경은 통일에 대해서 너무 직접 하게 되면 학생들이 좀 부담스럽게 여길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통일이라는 주제로 북한과 우리나라의 괴리감을 없애는 방법으로 요리를 소재로 담은 겁니다.
청소년들이 연속극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북한을 생각하고, 또 통일을 한 번쯤 생각할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새로운 시도라고 볼 수 있는데요. 사실 통일을 생각하면 답답하고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교원들에 따르면 중고등학생 절반가량이 통일에 대해 부정적이라고 말합니다. 10대들이 가지는 이질감과 고민이 반영된 결과라고 볼 수 있는데요.
중등 교사 : 우리 아이들이 통일의 미래라고 하잖아요. 정말 통일은 언제 이뤄질지 모르는데, 여기에 맞게 우리나라의 통일교육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학교에서 교과서로 북한에 대해서 막연하게 배우는 것보다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이런 소재로 통일문제에 접근하니까 아이들도 흥미를 갖고 재밌게 보는 것 같습니다.
연속극 ‘슴슴한 그대’는 5부작으로 지난 11월 19일부터 21일까지 EBS에서 전국에 방영됐는데요. 이 연속극은 내년부터 중고등학교 통일교육 자료로 활용하게 될 예정입니다..
통일교육원 관계자 : 방영이 완료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지금 뭐라고 말씀드리기 어려운데요. 일단 통일교육 자료로 활용할 계획을 하고 있고요. 저희는 앞으로도 더 많은 통일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할 예정입니다.
‘길짱구 지지개’와 ‘행베리 고추장찜’. 솔직히 저도 처음 들어보는 북한 요리입니다. 북한의 맛과는 좀 다르겠지만, 냉면이나 온면 등 북한 요리는 여기 남한에서도 인기가 많은 편입니다. 시청자들도 이번 연속극을 보면서 북한 요리에 더 관심을 갖게 됐을 것입니다. 평양 제1의 맛집 옥류관에 가서 마음대로 북한 요리를 먹을 수 있는 그런 날은 언제쯤 올까요. <통일로 가는길>, 오늘 순서 마칩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노재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