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의 올림픽 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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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한국은 1948년 7월에 열린 런던올림픽대회에 태극기를 앞세우고 참가한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가하고 있는데 6. 25전쟁 중에 열린 핀란드 헬싱키올림픽대회에도 빠지지 않았지요. / 북한당국의 체육 활성화 조치가 개인들이 체육시설을 만들어 이를 돈벌이에 이용하도록 조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백과사전 위키백과에 올림픽은 각 대륙에서 모인 수천 명의 선수가 참가해 여름과 겨울 스포츠 경기를 하는 국제적인 대회라고 했습니다. 2년마다 하계 올림픽과 동계 올림픽이 번갈아 열리며,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International Olympic Committee)가 감독한다고 했습니다.

오늘날의 올림픽은 기원전 8세기부터 서기 5세기에 이르기까지 고대 그리스 올림피아에서 열렸던 고대 올림피아 경기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19세기 말에 쿠베르탱이 고대 올림피아 제전에서 영감을 얻어, 근대 올림픽을 부활시켰다고 합니다. 이를 위해서 쿠베르탱은 1894년에 IOC를 창설했으며, 2년 뒤인 1896년에 그리스 아테네에서 제1회 올림픽을 열었습니다.

이때부터 IOC는 올림픽 운동의 감독 기구가 되었으며, 조직과 활동은 올림픽 헌장을 따르고 있습니다.

올해 8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Rio de Janeiro)에서 제31차 올림픽이 열립니다. 한국은 얼마 전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23세 이하 아시아축구대회에서 준우승을 하면서,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습니다. 북한은 불행히도 준결승전에서 탈락했습니다. 한국의 축구 출전권은 1988년부터 8회 연속 출전으로 세계축구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축구 강국인 브라질도 못해 본 8회 연속 출전은 대단한 일입니다. 통일문화산책 오늘은 남북한이 올림픽에 참가한 역사에서 특이한 사실들을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알아봅니다.

임채욱 선생: 네 한국은 1948년 7월에 열린 런던올림픽대회에 태극기를 앞세우고 참가한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가하고 있는데 6. 25전쟁 중에 열린 핀란드 헬싱키올림픽대회에도 빠지지 않았지요. 북한은 1972년 서독에서 열린 뮌헨대회에 처음으로 얼굴을 내밀었는데, 첫 참가에서 사격 금메달 획득으로 주목을 받기도 했지요. 하지만 북한은 이보다 앞서 1964년 도쿄올림픽, 1968년 멕시코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었는데도 자기들 뜻대로 안 된다고 선수단을 철수시켜 버렸지요.

북한이 올림픽선수단을 철수시킨 것은 한 번만도 아니고 두 번이나 되는군요. 작년 12월 북한 모란봉악단은 북경에서 공연 몇 시간을 앞두고 돌연 평양으로 철수해서 세계의 이목을 끌었는데, 과거 올림픽 선수단도 철수한 사실을 가지고 있으니 그 이야기를 한 번 들어 보지요.

임채욱 선생: 1964년 올림픽 경우는 동경에 머물고 있는 상태에서 철수를 했고, 1968년 멕시코 경우는 이웃인 쿠바에 머물러 있다가 철수를 한 것인데 둘 다 올림픽 정신을 훼손했다고 국제적으로 비난을 받았지요. 동경올림픽 경우는 북한이 내세우는 육상 금메달감인 신금단 선수가 출전을 못 한다고 하니까 철수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은 자기들이 원하는 선수단 명칭 DPRK가 안 된다고 철수한 것이고 멕시코 올림픽 경우도 자기들 국호를 여전히 North Korea로 하니까 철수를 한 것입니다.

신금단선수가 출전을 못 하게 국제올림픽위원회, 즉 IOC가 막은 것도 이유가 되는 것은 아닙니까?

임채욱 선생: 아닙니다. 그렇게 알려지게 된 것은 도쿄올림픽 한 해전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신흥국경기대회라는 가네포 대회에 참가한 선수는 도쿄올림픽에 참가 못하게 국제올림픽위원회, IOC가 결정을 한 것이죠. 그럼 가네포대회에 대해 설명을 드려야 할 것인데, 가네포대회는 당시 제3세계 국가지도자로 좀 나서는 인도네시아 대통령 스카르노가 만든 경기대회로 46개국 2200여 명의 선수단이 참가했습니다. 그런데 IOC는 왜 이 대회를 인정하지 않았을까요? 그것은 가네포 대회 1년 전인 1962년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아시안게임에 주최국인 인도네시아가 지금의 타이완인 중화민국과 이스라엘 선수단에 비자발급을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IOC는 이것은 정치적 행위라면서 인도네시아의 올림픽회원국 자격을 박탈한 것이죠. 이에 인도네시아 대통령 수카르노가 반발해서 가네포대회를 만들었는데 이 대회에서 앞에서 말한 북한의 육상선수 신금단은 400m, 800m에서 금메달을 땄지요. 이런 선수가 출전을 못 하면 북한으로서는 참가의 의미가 반으로 쪼개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겠지요. 그래서 철수를 해버린 걸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은 그 문제는 올림픽 직전에 해제됐다는 거지요. 오히려 북한은 국호를 원하는 대로 DPRK로 안 해주고 North Korea라고 하는데 불만을 품고 철수한 것입니다.

이어서 1968년 멕시코 대회에서도 선수단을 철수시킨 것도 국호 때문이라면 이때까지도 국호문제가 해결이 안 된 모양이지요?

임채욱 선생: 북한이 1952년부터 IOC에 가입하려고 했는데 이미 대한민국이 1947년에 가입해 있으므로 거부됐지요. 그러다가 1957년에 와서야 국제대회 참가는 서울에 본부를 둔 한국올림픽위원회, 즉 KOC를 통해서만 할 것을 조건으로 해서 잠정적으로 가입됐죠. 그 뒤 1962년 6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공산권국가들의 영향으로 남북한 단일팀 구성이 결정됐죠. 이 결정에 따라 남북한은 1963년 스위스 로잔느에서 단일팀을 만들기로 원칙적인 합의를 하고 그 자세한 것을 논의하기 위해 홍콩에서 두 차례 더 회담을 가졌으나 단일팀 구성협상이 실패했죠. 그 뒤 도쿄올림픽에 처음으로 North Korea라는 이름으로 참가하라고 했으나 철수를 한 것이고 계속 이름을 DPRK로 해달라고 요구를 했으나 멕시코 올림픽 때까지 거부됐죠. 그것은 한국의 올림픽위원회, 즉 KOC가 한반도를 대표하기 때문에 DPRK가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이었죠. 그 뒤 1972년 뮌헨올림픽 때 드디어 DPRK가 허용돼서 처음 올림픽에 참가한 거죠.

북한정권으로서야 자기들 입장을 지키려고 철수를 시켰겠지만, 고대하던 올림픽 참가를 못하는 선수들 입장이야 얼마나 아쉽고 억울했겠습니까? 물론 이번에 북경에서 철수하는 모란봉악단 단원들 표정을 보면 아쉬움이 묻어나는 게 아니라 결연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고 하는데 당시에도 선수들이 겉으로는 의연한 체했겠지만 속으로는 역시 섭섭했을 것 아닙니까? 그런데 도쿄올림픽 때 북한 육상선수 신금단과 한국에 사는 아버지 신문준씨가 애끓는 상봉을 했다는 사실도 있지요?

임채욱 선생: 네 북한선수단 중 금메달감 선수 신금단이 있다는 사실을 안 아버지가 한국당국에 도쿄에 가서 딸을 만나겠다고 해서 당국이 허락했죠. 현지에서 우여곡절 끝에 딸을 만났지만, 그 시간은 한 7~8분에 불과했고 두 부녀는 "아버지, 금단아"하고 외치지만 금세 헤어지게 되는 겁니다. 이 슬픈 스토리를 노래 가사로 만들어 한국에서는 한동안 신금단의 노래가 널리 불려지기도 했지요.

그밖에 특이한 사실은 없는가요?

임채욱 선생: 네, 뮌헨올림픽에 북한이 처음 참가했다고 했는데 사격 종목에서 금메달을 딴 이호준이란 선수가 소감을 묻는 기자들 앞에서 "원쑤의 심장을 쏘는 심정으로 화살을 당겼다"고 해서 스포츠정신에 어긋난다고 비난을 받은 일이 있지요.

올림픽에서 남북한 단일팀 구성은 안 됐지만 개회식 때 함께 입장한 일은 있지요?

임채욱 선생: 네. 2000년 9월 제27차 시드니올림픽인데 이때 남북한선수단은 한반도기를 앞세우고 1920년대 아리랑 연주 속에 함께 입장했지요. 한반도기는 흰 바탕에 하늘색 한반도 지도를 형상화한 깃발이고 1920년대 아리랑은 좀 빠른 곡조의 아리랑이죠. 이때는 남북한이 어느 때보다 민족화해를 내세우면서 대화를 하려던 시기였는데 한국 내에서는 개별경기도 아닌 올림픽에서 태극기를 접은 것에 대한 비판여론도 높았다고 기억됩니다.

올해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남북한이 함께 입장할 일은 없겠네요?

임채욱 선생: 물론이지요. 지금까지의 남북한 단일팀 구성 같은 문제는 언제나 북한이 제의한 것에 한국이 받아들인 것이죠. 북한이 단일팀 구성을 제의하거나 공동입장을 제의할 때는 대체로 개별참가가 어렵거나 불리할 경우에 한 것이였죠. 북한은 현재로서는 그럴 이유가 없습니다. 김정은은 체육을 매우 강조하면서 온 나라가 체육 열기로 들끓게 하려고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북한에 개인들이 운영하는 체육시설들이 크게 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작년 10월 노동당창건 70돌을 앞두고 개인들이 운영하는 체육시설들이 활기를 띠고 있다고 소식통들이 전했는데 북한 내부소식 김지은 기자의 보도로 함께 듣겠습니다.

김지은 기자: 북한당국의 체육 활성화 조치가 개인들이 체육시설을 만들어 이를 돈벌이에 이용하도록 조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각 지역의 '공설운동장'에 등장한 오락형 체육시설부터 여관과 기업소들에 세를 내고 운영되는 개인(사설) 체육시설들도 크게 늘고 있다고 소식통들은 언급했습니다.

함경북도의 한 소식통은 "청진경기장을 비롯해 수남, 청암, 신암, 송평구역 들에 개인이 운영하는 체육오락 시설들이 늘고 있다"며 김정은 제1비서의 체육대중화 방침이 돈벌이를 목적으로 한 개인체육시설 확산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소식통은 "체육의 대중화로 개인이 운영하는 체육시설들이 많이 생겨나 운영자들에게는 좋은 돈벌이 기회가 될지 몰라도 시설수준에 따라 이용금액이 다양해 경제적 여건이 어려운 주민들에겐 오히려 소외감을 안겨주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