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강 이야기] 송팔사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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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친애하는 북한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뱀의 해, 계사년 새해 아침이 또 밝았습니다. 새해 계획하셨던 일, 꿈꾸시는 일들이 모두 이루어지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북한에는 한 때 유행했던 '송팔사탕'이라는 은어가 있습니다. 아직도 쓰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송신에서 팔골까지 다니는 버스노선이 있는데 송신에서 버스를 타면서 입에 넣은 것이 팔골 종점까지 도착했는데도 다 녹지 않아 붙은 이름입니다.

비록 돌 사탕 같지만 이런 사탕이라도 많이 있으면 지금처럼 추운 겨울날 몸을 조금이라도 녹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북한의 경제형편이 좋을 때는 농민시장이나, 식료품상점에 가면 '왕 눈깔사탕,' 이라크대추, 흘레브(러시아산 빵), 앙꼬 빵, 생과자 등도 어느 때든지 살 수 있었죠.

여성들을 가정일의 어려운 부담에서 해방하자고 만들어 놓은 각지의 밥 공장들에서는 밥은 물론 떡, 국수도 떨어뜨리지 않고 공급하였습니다. 물고기 상점들에는 통조림, 생선이 차고 넘쳤고 마른 미역이나 다시마는 끼워 팔거나 나눠주는 '천덕꾸러기' 상품이었죠.

겨울반찬은 비록 다양하지 않았지만 정 없으면 베란다에 주렁주렁 걸어 놓은 마른명태 꾸러미를 벗겨 코다리 반찬은 떨어뜨리지 않고 먹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가 참 유족했던 것 같습니다.

평양시내 어느 식당에 가도 아무 때나 2원 50전짜리 평양냉면, 얼음 보숭이(아이스크림) 두 스푼이 곁들여진 고급 빵을 쉽게 사먹을 수 있었습니다. 고급식당이나 일반 식당이나 그 맛과 질도 비슷했죠.

백두산 답사를 가면 찡한 호프맥주에 좀처럼 면발이 끊어지지 않는 농마국수까지 우리들의 입을 즐겁게 해 주곤 했습니다. 강원도는 곶감으로 유명해 인심도 후했고요.

그러나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을 맞으며 북한의 식량사정은 급속히 악화되었습니다. 저도 컴퓨터대학 학생들을 데리고 칡뿌리를 캐러 갔었는데, 아보다 배꼽이 더 크다고, 추운 겨울날 칡뿌리를 캐는 것 보다 가공해서 먹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더 힘들더라고요.

뿌리를 잘게 썰고 부신 다음 끓여서 전분을 내고 또 그 전분을 말려서 가루를 내고... 여기 드는 석유, 노력, 전기를 팔아 식량을 사 먹어도 될 것 같았습니다.

소나무를 벗겨 껍질로 음식을 대체했고 인조고기에, 속도전가루 등 처음 생긴 음식들도 많이 등장했습니다. 당시에 대용식품이라는 신조어도 생겼죠. 음식을 대용하는 음식이라는 뜻입니다. 벼 뿌리 가공도 시도했는데 성공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북한은 최근 김정은 생일 1월 8일을 맞으며 사탕, 과자, 간식을 전국 어린이들에게 공급했다고 하더군요. 과거에는 2월 16일, 4월 15일 두 번에 걸쳐 나눠 주었는데 하루가 더 늘었네요.

물론 나라의 경제가 흥해 나라가 책임지고 어린이, 학생들에게 선물을 많이 주면 더할 나위 없이 고맙겠지만, 북한의 경제사정은 지금 이를 감당할 겨률이 없죠. 그래서 자구책으로 언제부턴가 부모들, 인민들의 호주머니를 털어 선물을 마련하기 시작했죠.

각 동, 인민반, 구역별로 과제가 할당 돼 자기 지역에서 주는 선물은 자체로 해결하도록 했습니다. 물론 국가에서 보장하는 것도 결국은 전체 인민의 생산 활동을 통해서 마련되는 원리는 꼭 같지만, 그래도 점차 '장군님의 은덕, 수령님의 배려'가 무색해 지는 경제사정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눈감고 아웅 하는 식의 이런 선물정치를 계속 유지하기 보다는 차라리 중국이나 남한처럼 개인들이 자체로 알아서 먹고 살게 하는 것이 훨씬 더 쉽고 편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