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잘하는 자식이 제일!

2008년 4월 28일 베이징올림픽 평양 성화봉송 마지막 주자인 1999년 세계육상선수권 여자마라톤 우승자 정성옥이 김일성경기장 성화대에 불을 옮기고 있다.
2008년 4월 28일 베이징올림픽 평양 성화봉송 마지막 주자인 1999년 세계육상선수권 여자마라톤 우승자 정성옥이 김일성경기장 성화대에 불을 옮기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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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강원도 평창에서 열리는 동계올림픽에 북한선수단이 참가함에 따라, 그리고 이와 관련된 연이은 회담과 대표단 상호교환으로 많은 화제와 논쟁을 낳고 있고 또 관심도 뜨겁습니다.

특히 북한이 이번에 선수단과 함께 서울로 보내기로 한 삼지연관현악단의 공연 사전점검을 위해 노동당 중앙위 후보위원이며 모란봉악단 단장인 현송월이 1박 2일로 남한에 와 여기저기를 둘러보는데 대한 취재열기와 언론관심이 정말 뜨겁습니다.

그의 옷차림에 핸드백, 행동거지, 웃음, 식사, 묵고 있는 호텔까지 모든 것이 뜨거운 취재와 관심 속에 있습니다.

사실 지상 최대의 올림픽이면 선수단 파견과 체육경기, 그리고 금메달을 딸지, 은메달을 딸지 여기에 더 많은 관심을 돌려야 할 텐데, 북한은 예술단 파견부터 논의하자고 했고, 또 공연준비를 위한 점검단까지 먼저 파견한 것을 보니 역시 정치를 중시하는 북한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북한에서는 체육도 정치의 한 부분이죠. 체육은 '사회주의강성국가 건설에서 노동당이 중시하는 또 하나의 전선, 노동당이 제시한 체육중시사상을 관철하고, 주체조선의 기상과 위력을 온 세상에 과시하기 위한 전투마당'이죠. 김정일시대 때는 선군체육사상이라는 표현도 등장했습니다.

김정은집권이후 지난 2015년 평양체육관에서는 제7차 전국체육인대회가 성대하게 열렸죠. 대회에 김정은은 '백두의 혁명정신으로 체육 강국 건설에서 새로운 전성기를 열어 나가자'라는 제목의 서한을 보냈습니다.

백두의 혁명정신이라고 하면 결국은 김씨 일가의 혁명정신으로 체육도 하라는 거죠. 김정은시대에 새로 등장한 표현 '백두의 칼바람정신'으로 국제경기들에서 새로운 체육신화를 창조하라고도 했습니다.

또 북한식 경기전법인 '사상전, 투지전, 속도전, 기술전'의 원칙들도 언급됐죠. 체육도 사상이 강하고 투철하고 견실해야 잘 할 수 있다는 겁니다. 남한과 미국, 일본 등과는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사상도 내포되어 있죠.

그래서인지 북한에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한 체육종목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미국 놈 때리기' 놀음이죠.

나이가 아주 어린 유치원이나 소학교 아이들은 앞에 도람 통을 하나 세워놓고 거기에 '미국 놈'을 그려 그것을 누가 더 빨리 막대기로 치고 오나 경기를 합니다.

좀 성숙된 청년학생들이나 어른들은 군사훈련에 비슷한 종목이 추가되죠. 훨씬 더 실전의 분위기속에서 합니다. 총이나 목총을 들고 달려가 총창으로 찌르기 경기, 또는 훈련이죠.

국제체육경기에 나가 금메달을 따고 말 한마디만 잘해도 팔자가 달라집니다. 대표적으로 마라톤선수인 정성옥인데요, 그는 1999년 8월 스페인 세비아에서 열린 세계 육상선수권대회에 출전해 1등을 하고는 그 비결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장군님(김정일)을 그리며 달렸다'고 해 일약 대스타가 됐습니다.

평양에 100만 환영군중대회를 조직해 주었고 '공화국 공민의 최고영예인 영웅칭호'를 수여하였으며, 인민체육인 칭호, 김일성 명함시계, 고급차, 평양시내 아파트까지 선물 받았습니다.

지방에 있던 온 가족이 평양으로 소환됐고, 이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까지 됐죠.

혹시 이것 때문일까요? 북한에는 주민들 속에 이런 유머도 있죠. '잘생기고 똑똑한 아들보다 말 잘하는 아들이 제일!'

'대동강 이야기'의 김광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