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2016년의 70일전투, 200일전투에 이어 올해는 좀 조용하게 지낼 줄 알았는데 난데없이 또 다른 '정신 운동'이 등장했습니다.
바로 '강원도 정신'이라는 건데요, 김정은이 2016년 12월 소위 '자력갱생의 창조물'이라고 내세우는 원산군민발전소를 찾았을 때 간부들과 노동자들을 격려하며 한 말인 '강원도 정신의 창조자들'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노동신문은 2017.1.13 '조선은 또다시 질풍쳐 달린다'라는 제목의 정론에서 '고난의 행군 시기 자강도 인민들이 만난(어려움)을 이겨내며 강계정신을 창조하였다면 강원 땅의 인민들은 강원도 정신을 창조하였다'며 '모든 것이 부족하고 어려운 속에서도 강인하게 일어서는 정신력의 무서운 분출 이였다'고 표현했습니다.
이를 해석하면 김정일시대 어려웠던 '고난의 행군' 시기의 강계정신에 비견될 만한 정신력이 강원도에서 김정은시대에 발휘되었다는 뜻입니다. 이는 원산군민발전소를 건설하면서 발생한 희생을 정당화하고 이를 '자발적이고 영웅적인' 모습으로 포장하려는 시도에 따른 것입니다.
나아가 김정은의 핵 고집으로 강화된 국제사회의 대북제제와 이에 따른 경제위기 속에서 주민들의 인내와 자발적인 노력동원 참여를 독려하고, 궁극적으로는 주민들에 대한 착취를 더욱 강화하려는 의도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북한에서의 대중운동, 정신운동, 속도전은 수십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김일성시대를 대표하는 것은 천리마 운동, 청산리 정신, 청산리 방법, 대안의 정신, 사상.기술.문화의 3대혁명운동 등입니다.
대부분 북한에 사회주의. 공산주의 시스템을 정착시키고 사회주의 건설을 하기 위한 것들이죠. 김정일 시대의 정신운동은 혁명적 군인정신, 강계정신입니다. 즉, 사회주의 동구권의 몰락과 고난의 행군이라는 사상최악의 위기 속에서 소위 '선군 정치'라는 대응 시스템을 가동하면서 만들어낸 위기관리, 위기대응의 정신, 운동이었죠.
그러나 김정은시대 들어 지난 5년 사이 그 무슨 정신, 운동, 속도라는 것이 너무나도 정신없이 난발되고 있습니다. 이 짧은 사이 창조되거나 언급된 것들만 해도 '마식령속도, 군자리 정신, 새로운 조선속도, 새로운 평양속도, 평양정신, 만리마 속도, 만리마 정신, 강원도 정신, 백두의 칼바람 정신, 위대한 백두영장의 공격정신, 주체의 정신' 등 정신없이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김정은은 소위 '강원도 정신'으로 현 난국을 타개하고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를 돌파하려 하고 있지만, 이렇게 남발되고 있는 정신운동에 북한 주민들은 정말 정신 차릴 틈이 없을 것 같습니다.
죽음까지 포함한 온갖 희생을 강요하는 북한의 정신 운동, 대중 운동, 이것은 누구를 위해, 그리고 어디서 초래되는 고통일까요? 다름 아닌 정권안보, 체제생존에만 신경 쓰는 김정은의 핵.미사일 광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북한당국이 진심으로 인민을 위해 복무하고 인민의 충복이 되는 길은 핵개발로 국제사회의 매를 벌고 그 결과를 주민들에게 고스란히 전가하는 무슨 무슨 운동을 할 것이 아니라, 핵을 포기하고 개혁, 개방을 통해 주민들이 인간으로서 행복하게 먹고 살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아닐까요?
'대동강이야기'의 김광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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