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이 반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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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북한의 4차 핵실험 후 국제사회가 전례 없이 강력한 대북제재를 준비하고 있는 와중에 평양에서는 뜬금없이 고추장생산에서 '맛 혁명'을 일으킬 것을 강조하고 있다고 하죠.

평양 대동강식료품공장에서는 미국을 비롯한 적대 국가들의 경제봉쇄가 가해질 것에 대비해 자립경제를 발전시켜야 한다면서, '수소탄으로 세계를 진감시킨 것처럼 고추장생산에서도 맛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고 당에서 지시했다는 군요.

그런데 문제는 고추장 생산의 주원료인 쌀을 비롯해 고추, 기름, 물엿, 포장용기에 이르기까지 생산에 필요한 모든 것은 위에 손을 내밀지 말고 자체로 머리를 짜내 생산하라고 했다는 군요. '닭알에 사상을 재우면 바위도 깰 수 있다'는 사상으로 말입니다.

'고난의 행군'이 한창이던 때 북한에서는 이런 말이 유행했습니다. '시장이 반찬이다.' 물론 우리 선조들이 오래 동안 써 오던 속담입니다. 맛있는 반찬이 없어도 배만 고프면 뭐든지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뜻이죠.

그런데 하도 가난하게 살고, 식량난에 허덕이다나니 이 말은 많은 사람들에게 특별하게 들렸습니다. 시장해도 먹을 게 있으면 괜찮은데 먹을 게 전혀 없는 형편이니까 말이죠. 악순환의 반복이라고 할까요, 식량이 부족하니까 곡식이 여물기도 전에 모조리 초토화해 버리니 식량생산이 더 급속히 감소할 수밖에 없었죠.

배고픔의 행군은 '옥류관 전술'이라는 신조어도 만들어 냈습니다. 옥류관에서 그 유명한 냉면을 한 그릇 먹으려면 식사 쿠폰을 쥐고 1-2시간 기다리는 것은 보통이었죠. 이렇게 기다리다 들어가면 냉면이 맛없을 리가 없었겠죠.

그래서 오랫동안 기다리게 한 다음 음식을 대접하는 것을 '옥류관 전술'이라고 빗대 얘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인민들이 만들어 낸 슬기인 '시장이 반찬', '옥류관 전술'도 있지만 고추장을 맛 혁명으로 맛있게 만들면 물론 좋겠죠. 그러나 한랭전선도 간부들이 다 나눠먹는 판에 백성들 손에 얼마나 차례지겠습니까?

북한이 핵폭탄 실험과 고추장 맛 혁명에 빠져있는 동안 외부에서는 이런 일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스위스가 오는 6월 국민투표를 실시해 소득 수준에 상관없이 성인 1인당 매달 2천500스위스프랑(2,500불정도)을 기본소득으로 지급하는 것을 결정한 다네요. 찬성으로 가결될 경우 스위스는 아무런 조건 없이 일을 하지 않아도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세계 첫 국가가 된다고 합니다.

이 제도도입을 촉구해온 지식인 모임이 13만 명의 서명을 얻어 국민투표가 가능해졌는데요, 그들은 이렇게 소득을 지급해도 국민 대다수가 일을 지속하거나, 일자리를 찾을 것이라는 설문조사를 정당화 사유로 제시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 제안이 빛을 보지 못한 채 폐기될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하고, 또 일부는 기본소득제가 실현되면 사람들이 일하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를 표시하기도 했습니다.

핀란드와 네덜란드 일부 도시들에서도 유사한 논의가 진행 중인데요, 이러다 자칫 북한이 핵에 빠져있는 사이에 그렇게 증오하던 '자본주의, 제국주의나라들'에서 공산주의가 먼저 실현되는 것은 아닐까요?

'대동강 이야기'의 김광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