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친애하는 북한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세월은 유수라고 했죠. 설날을 맞은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달이 지나 며칠 있으면 음력설날이네요. '설날은 술 날'이라는데 즐거운 명절 되시길 바랍니다.
어느 사회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사람이 살면서 술과의 인연은 피할 수 없겠죠? 적당히 마시고 잘 조절하면 보약이 되고, 지나치게 많이 마시면 독이 되는 것이 또 술이죠.
북한에도 술과 관련된 일화들, 유머들, 에피소드들이 참 많습니다. 술을 경계하는 말 중에서 '사람이 술을 마시고, 다음은 술이 술을 마시고, 마지막에는 술이 사람을 마신다.'라는 말이 제일 와 닿는 것 같습니다.
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런 말로 자기 합리화도 합니다. '주량은 도량이다.' 술이 센 사람들이 마음도 크고, 통도 크다는 말인데 사실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냉면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선주후면'을 외치면서 술을 한잔씩 기울이기도 합니다. 'ㄹ'자가 들어간 날에는 꼭 술을 먹어야 한다면서 월요일, 일요일은 거르지 않고, 그러다 참지 못하면 화요일을 '활요일', 수요일을 '술요일'로 고쳐서 부르기도 하죠.
김정일이 자주 했던 비밀파티에서는 술을 못 마시면 끼워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파티 장에 들어가면서 먼저 독한 코냑 한 컵씩 무조건 마시게 하고 시작했다는 말도 있습니다. 김정일 앞에서 대접으로 술을 들이켜 그의 환심을 샀다는 장성도 있죠.
김 부자 연회에 참여해 그와 축배를 부딪친 잔을 호위총국 사람들에게 얘기하고 집으로 가져오는 것은 오래된 관습입니다. 자그마한 크리스털 잔인데 집에 오는 손님들에게, 친지들에겐 큰 자랑거리죠.
얼마 전 중국에서는 군에 금주령을 내렸다고 하네요. 중국 중앙군사위원회가 군대 내에서 술과 고급 요리를 차리는 호화연회를 금지시켰다고 합니다.
그 덕에 명주인 마오타이와 우랑예, 바이주 '양허'의 주가가 뚝 떨어지기도 했죠. 마오타이는 공산당과 정부, 인민해방군이 제일 큰 고객이라니 그럴 만도 하죠.
중국에선 예로부터 새 왕조가 들어서면 금주령이 내려지곤 했답니다. 서한 때는 '세 명 이상 이유 없이 모여 술을 마시면 넉 냥 벌금을 매겼다'는 기록이 사기에 있습니다. 사학자들에 따르면 반대 세력이 모여 반란을 꾸미는 걸 막는 숨은 목적에서였다고 합니다.
아마 중국의 새 지도자 시진핑도 금주령으로 권력의 원천인 인민해방군의 기강을 다잡아 새 체제를 다지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술과 관련된 유명한 일화들은 참 많습니다. 소련과의 불가침 조약을 깨고 침공을 개시한 히틀러의 군대는 '6주 만에 해치우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결국은 두 차례의 혹독한 겨울을 치르며 큰 곤경에 처했죠.
반대로 소련군은 혹한에 익숙한데다 하루 100g씩 배급받은 보드카로 추위를 이겨냈습니다. 스탈린그라드 대격전을 비롯해 소련의 승리에 알코올이 한몫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추워서 그런지 러시아 사람들은 술에 관대하다고 합니다. '영하 40도 아래는 추위도 아니고, 알코올 40도 이하는 술도 아니다.' '마누라 없인 살아도 흑빵과 보드카 없인 못 산다'는 속담까지 있습니다.
언젠가는 기동훈련에 나간 옛 소련 기갑부대 장병들이 보드카 두 상자에 탱크를 팔아넘긴 일도 잇다네요. 시베리아 원동지역에 파견된 북한 벌목공들도 보드카 한 병에 소 한 마리와 바꿔먹었다는 일화도 전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술에 관대하지 않습니다. 통제도 많이 하죠. '관혼상제를 간소화해라, 식량사정이 긴박하니 집집마다 술을 담그지 마라.'
한 때 인민군내에서 담배를 금지시켰던 적도 있습니다. 그러다 큰 혼란이 와 몇 달 만에 결정을 번벅했죠. 군인들이 탈영하고 가랑잎을 말아 피우고, 군기가 무너지고, 참 요란했습니다.
중국군의 금주령도 얼마나 오래갈지 궁금하네요.
'대동강 이야기'에 김광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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