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강이야기] 공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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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북한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도 올해 신년공동사설에서 제시한 '자기 땅에 발을 붙이고 눈은 세계를 보는 넓고 혁신적인 안목을 가지고 자기 부문, 자기 단위를 혁명적으로 개변시켜 나갈 데' 대한 당의 방침을 철저히 관철하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지금 세계의 곳곳에서는 북한보다 먼저 '자기 부문, 자기 단위를 개변'시키기 위한 혁명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습니다.

몇 주 전 북아프리카 지중해연안 뜌니지에서는 인민봉기가 일어나 23년간 통치해 온 독재자 벤 알리가 축출되었습니다. 혁명의 발단은 거리에서 무허가 노점상을 하던 한 청년이 경찰의 단속으로 생계수단을 모두 잃자 분신자살을 시도한 사건입니다. 이 소식은 인터넷을 타고 순식간에 전국으로 퍼져 인민들을 격분시켰습니다.

뜌니지의 가장 흔한 꽃의 이름을 따 '재스민혁명'으로 불리는 이번 사건은 주변나라들을 자극시켜 애급 (이집트), 예멘, 레바논 등으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으며 애급의 수도 카이로의 해방광장에서는 지금 30년간 통치해 온 독재자 무바라크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절정에 달하고 있습니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하는 법인가요, 그도 자기 대의 권좌가 모자라 아들 가말에게 다음 권력을 세습하려 했지만 결국 몇 개월 남지 않은 자기 임기도 채우기 어렵게 됐습니다.

과거 북한당국이 숨을 죽이고 관찰했던 1989년의 루마니아혁명, 1991년 러시아에서의 반고르바쵸브 쿠데타에서처럼 지금도 특별히 주목 받고 있는 것은 혁명에서의 군의 역할입니다. 당시 저를 비롯해 북한인민들에게 큰 충격을 준 것은 군인들이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는 결코 명령을 내려도 국민들을 향해 발포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지금도 경우는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무바라크가 30년간 군부를 통해 국가를 통치해 왔지만 나라와 국민의 안전이 최우선인 군인은 이에 배치된다면 군 통수권자의 명령도 따르지 않을 수 있다는 진리를 다시 한 번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위대와 군인들이 서로 포옹하고 담소를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모습, 탱크와 장갑차에서 함께 사진 촬영을 하는 모습, 통행금지령을 내렸으나 도심 곳곳을 누비는 시위대를 연행하지 않는 군인들의 모습, 시위를 막기 위해 군을 수도 중심에 배치하자 시민들이 박수를 치며 환영하는 모습은 수령 독재만 보아 온 북한인민들에게는 다소 기이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현실입니다.

북한에서 군인들에게 붙인 수식어는 수십 개가 넘습니다. '인민의 군대, 수령의 군대, 당의 군대, 혁명의 군대, 무적의 군대, 일당백의 군대, 강철의 군대, 필승의 군대,,,'

그러나 인민들에게서 받은 불명예스러운 별칭도 여럿 됩니다. 그중에서도 '공산군'은 사상통제가 엄격한 북한에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부를 수 있게 만들어 낸 은어입니다. 겉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공산군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이 부르던 나쁜 어감이 묻어나는 불쾌한 표현입니다.

당과 수령의 현명한 영도 밑에 나라의 경제가 파괴되어 먹을 것, 입을 것, 신을 것, 땔감, 물 등 어느 것 하나 흔하지 않은 바르고 각박한 세상에서 수많은 군인들이 생존을 위해 마을을 털고, 빼앗고, 도둑질 하여 생긴 불길한 명칭입니다. 혹시 살림집이나 도로, 발전소, 혁명사적지건설 때문에 군인들이 도시나 마을 가까이에 집단 주둔하면 그 지역은 초토화 됩니다. 남아나는 것이 없죠.

그래서 군인들만 나타나면 아이든 어른이든 '야, 공산군 온다'하고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공산군'도 북한에 애급과 같은 사태가 벌어지면 인민의 군대, 나라의 군인들로 변할 것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을 겁니다. 왜냐면 그들도 엘리트 집권층의 소수출신이 아니라 노동자, 농민, 지식인 등 사회의 평범한 계층에서 모인 집단이니까요.

그리고 군인의 임무는 나라를 지키고 국민의 생명재산을 보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김정일이 선군정치로 아무리 군을 통한 독재와 대대손손 영구집권을 꾀하여도 종당에는 인민의 편인 군인들로부터 끈 떨어진 조롱박 대접을 받으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 한 역사의 진리, 현재진행형의 진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