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나라, 큰 당은 있어도 높은 당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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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친애하는 북한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광명성절'을 잘 보내셨는지요? 이번에는 여느 때보다 더 특별한 행사들이 진행된 것 같습니다. 김정일의 고향집이라고 하는 백두밀영 '정일봉'에서는 얼음조각 축전도 열렸죠. 총 216점이 전시되었던데 노동당원들과 주민들의 정성과 로고에 다시 한 번 감탄하였습니다.

또 백두산 밀영 고향집 주변에서 기이한 자연현상도 나타났다면서요. '정일봉' 상공에서 태양 둘레에 테두리가 생기는 '해 무리' 현상이 관측되는가 하면, 백두산 밀영 주변 버드나무가 때 이른 꽃을 피웠다고 하죠.

제가 평양에 있을 때는 겨울철에 꽃이 피면 그해 농사를 망친다고 들었는데 식량사정이 곤란한 북한의 형편에서 기이한 자연현상이 과연 좋을지 안 좋을지는 두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한 겨울 김정일 생일날에 버드나무에 꽃이 피어 주변 당 비서들이 이를 우상화 선전에 활용한 모양인데, 나라 농사야 어떻게 되든 말든, 자연이 이상해지든 말든 말입니다. 어쨌든 버드나무에 꽃은 폈어도 올해 농사는 잘 되기를 기원합니다.

북한에는 이런 말이 있죠. '세계에는 큰 나라, 큰 당은 있어도, 높은 나라, 높은 당은 없다.' 김일성의 교시입니다. 정치에서 자주, 경제에서 자립, 국방에서의 자위를 주장하면서 '미 제국주의'는 물론 구소련과 중국의 대국주의, '패권주의'에 맞서 싸우던 시절에 김일성이 펼친 주체적 논리입니다.

높은 나라, 높은 당이 아닌 중국과 중국공산당은 지금 북한의 핵문제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미국의 존 케리 국무장관이 한국을 방문한 뒤 중국에 가서는 중국의 국가지도자들을 만나 북한에 대한 원유공급 중단을 논의했다고 합니다.

앞으로 이것이 현실화될지는 미지수이지만 어쨌든 중미 최고외교당국자들이 북한이 지금까지의 합의를 이행하지 않고, 비핵화에 비협조적일 경우 대북압박을 더욱 강화하기로 공감하고 이에 대한 논의가 깊숙이 진행되었다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일입니다.

중국은 북한이 작년 2월 3차 핵실험을 했을 때는 조선무역은행을 포함해 북한의 대부분 은행들에 금융제재를 가했습니다. 전례가 없는 일이죠. 그리고 이번에 김정은이 자기 고모부 장성택을 잔인하게 처형했을 때도 경악했습니다.

장성택은 중국과의 긴밀한 연계 밑에 중국의 대북원조를 끌어 들이고 황금평, 라진, 선봉지역 특수경제지대를 성공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 인물입니다. 이번 숙청으로 중국은 신뢰할만한 인물, 오랫동안 친분을 쌓은 중국 통을 잃은 셈이죠.

중국이 정말 원유공급중단의 선택을 한다면 북한은 어떻게 될까요? 그리고 과연 며칠이나 버틸 수 있을지 참 흥미롭습니다.

1990년대 중반 북한은 역사상 최악의 '고난의 행군'을 겪었죠. 당시 북한의 전시물자, 전략물자 창고까지 몽땅 거덜이 났습니다. 휘발유 창고는 텅텅 비어있었고, 항공석유가 빠져나와 시중에 팔렸으며, 2호미, 전시식량창고도 다 털렸었죠.

공장들의 변압기, 전기기관차의 앞대가리가 해체돼 중국으로 팔려나갔고, 고압선이 절단돼 사람들이 사형에 처할 때 많은 북한사람들은 이러다 망하지 않을까 걱정을 했었습니다.

그때는 사회주의 붕괴와 자연재해, 제국주의의 압살책동을 고난의 원인으로 당국이 설명했지만 지금은 '큰 나라'이며 형제나라인 중국이 '덤벼들고' 있습니다.

과연 북한이 중국의 압박에도 얼마나 견딜 수 있을 지요?

'대동강 이야기'의 김광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