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강이야기] 나일론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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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북한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요즘 서울에서는 구제역이 발생한지 100일째로 접어들면서 소고기, 돼지고기 문제가 큰 사회적 이슈로 되고 있습니다.

'돼지 고기'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북한에서 교도대훈련을 하면서 친구들과 나누던 유머입니다. 어쩌다 명절이 되면 돼지고기국이라고 끓여주는데 고기를 얼마나 적게 넣었는지 '나일론 국'이라고 불렀습니다.

어떤 친구들은 '야! 지난 번엔 돼지가 우산 쓰고, 비옷 입고 지나 갔는데 오늘은 장화까지 신고 지나 갔대'라고 말하면서 실망스런 표정으로 국 그릇을 내려다 보군 했습니다. 이 말 한마디면 당시 돼지고기국 사정이 얼마나 딱했는지 짐작하고도 남을 것입니다.

북한에서도 구제역이 발생하여 비상이라니 인민들의 식탁에 오르는 국에 이번에는 아예 돼지고기가 '지나가지도 않지 않았을까' 걱정입니다.

남한에서는 당연히 '나일론 국'정도는 아니지만 이 병 때문에 큰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구제역이란 발굽이 2개인 소, 돼지 등의 입, 발굽 주변에 물집이 생긴 뒤 치사율이 5-55%에 달하는 바이러스성 급성 전염병입니다. 영어로는 발을 뜻하는 foot와 입을 의미하는 mouth를 조합하여 foot and mouth disease라고 부릅니다.

초기에 고열이 40-41℃로 나고 사료를 잘 먹지 못하며 통증을 수반하는 급성구내염과 제관, 지간에 수포가 생기면서 앓다가 죽습니다.

특별한 치료법은 없고 보통 조직배양 백신을 이용한 예방법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일단 병이 발생하면 검역을 철저히 해야 하며 감염된 짐승과 그와 접촉한 모든 가축을 소각하거나 매장합니다.

지난 몇 달 동안 급속히 퍼진 전대미문의 구제역으로 피해도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습니다. 벌써 전국적으로 돼지의 3/1이 살처분 매몰되었습니다. 북한사람들에게도 그 이름이 익숙한 경기도의 포천, 연천, 동두천에서는 94%에서 99%까지 매몰시켜 돼지 씨가 말랐을 정도입니다.

한국정부에서 축산농가 피해보상과 방역비에만 지출한 돈이 2월말 기준으로 30억달러에 달합니다. 이는 공식환율을 적용한 북한 전체 1년 예산에 맞먹는 돈입니다. 시장환율로 환산하면 북한 전체 1년 예산의 20배가 되는 재정이죠.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2001년 650만 마리의 가축을 살처분한 영국의 경우에는 방역비에만 40억 달러, 농업, 관광 등의 추가 손실액을 더하면 피해액이 90억달러를 넘었다고 합니다.

현재 현실화 되고 있는 지하수 오염 등 매몰지 환경피해를 막기 위한 추가 관리비용, 70억달러 규모의 시장을 갖고 있는 사료업계 피해 등 2차, 3차 피해들을 모두 합치면 그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전망입니다.

국민소득이 1인당 2만달러에 달하는 남한에서의 구제역 확산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북한에서도 이 병이 급속히 확산된다는 점입니다. 국제식량기구의 구제역 전문가단이 현황파악을 위해 평양을 방문하고 이와 별도로 전염병 전문가와 대북사업운영 요원들을 추가로 북한에 보낼 계획이라고 합니다.

이번 구제역 사태가 잘 정리돼 그렇지 않아도 열악한 북한의 축산현황과 인민들의 식탁사정이 더 나빠지지 않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