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강 이야기] 열성이 말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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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경애하는 북한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북한에는 이런 말이 있죠. '열성이 말썽이다.' 정도를 초월하여 너무 열성을 피우면 오히려 당과 국가에 손해가 되고, 말썽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김 부자에게 충성한다고 남보다 튀게 설레발치는 사람들을 비꼬거나 야유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뭐든지 지나치면 남에게 민폐를 끼친다는 것은 수령절대주의사회 북한이나 자유민주주의세계 남한이나 같기는 마찬가진가 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아마 정춘실일 겁니다. 그는 강계시의 한 상점에서 열심히 일해 김일성의 눈에 들었고, 일약 스타가 됐습니다. 급기야 '정춘실 따라 배우기 운동,' '정춘실 운동'이 전국적으로 벌어졌고 이는 자력갱생,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의 기풍수립에 크게 기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부족한 상품을 부대밭을 일구어 해결했고, 군대지원은 물론 당의 군중노선에 충실해 제대군인들, 노약자들을 직접 찾아다니면서 상품을 공급하고 봉사해 많은 존경과 칭찬을 받았습니다. 관내 결혼식, 환갑, 진갑, 돌잔치 예정자들의 명부를 만들어 빠짐없이 예복이나 선물을 장만해 주어 이름을 날리기도 했습니다.

근데 어느 날 갑자기 하찮은 존재로 전락하였습니다. '정춘실 운동'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요. 그의 열성이 결국은 자기 자신의 출세와 안락을 위한 것임이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기의 영향력과 명함을 이용해 무역회사도 하나 세웠습니다. 이를 통해 부정축재도 많이 해 손가락질도 받았죠.

그는 자기 처지에 어울리지 않게 교만함도 보였습니다. 김일성이 죽었을 때 김정일을 '오라버니'라고 지칭하고 걱정하면서 울고불고해 친밀감도 과시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김정일의 동생 김경희의 미움을 샀습니다.

'야, 나도 김정일을 오빠나 오라버니로 부르지 않는데 네까짓 게 뭐라고...' 이런 생각에서였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는 '정춘실 따라배우기 운동'까지 만들어낸 영웅이지만 지금은 공개 활동이 전혀 없고, 있는지 없는지 존재감이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정말 열성이 말썽이 된 셈이죠.

요즘은 김정은 3대 세습을 맞아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저저마다 말썽인 열성을 피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인천의 어느 한 군부대 내무반에 걸린 '때려잡자! 김정일, 쳐 죽이자! 김정은' 구호를 김정은에게 직접 보고한 것도 그렇고.

그리고 이를 갖고 온 나라 군부대와 인민들이 떠들썩하는 것도 제 보기에는 목청을 높여 김정일과 김정은을 간접적으로 실컷 욕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명박 대통령, 김관진 국방장관의 이름에 대고 사격을 하더니, 이제는 대통령 사진에 조준사격을 하더군요.

연평도 포격의 진범인 김격식 전 4군단장이 노동신문에 글을 기고해 전쟁열을 고취하는가 하면, 전에 없이 중앙TV에는 방송 불가용어인 '새끼'라는 단어까지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김정은은 불쑥 판문점에 나타나 항복서에 도장을 받아내겠다고 하고, 연초부터 탱크부대, 전략로켓부대 등 잇따라 군부대들을 방문하고 있습니다.

또한 아버지 김정일 장례식이 끝나기 바쁘게 무슨 예술 공연은 그렇게 많이 관람하는지. 파티도 자주 열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온 나라가 충성경쟁의 열성과, 말썽의 도가니에 빠져들고 있는 것 같군요.

마치도 고삐 풀린 기관차가 마지막 힘을 다해 전 속력으로 곤두박질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말썽이 더 확대되어 전연지역의 일부 호전분자들이 연평도에 포사격하거나, 서울에 미사일을 날리는 사고를 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