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농장 포전은 나의 포전이다.' '모두 다 모내기 전투에로!'
드디어 농사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요즘 3차 핵실험에 이은 유엔안보리 제재와 대남, 대미 긴장고조 속에서도 다른 한 쪽으로는 영농준비와 농업생산을 적극 독려하고 있죠.
사실 확인이 필요한 부분이기는 하지만 분조를 가족단위로 나눠 3:7제 즉, 생산물의 30%는 국가에 바치고 70%는 농민들이 자체 처분한다는 소문도 들려오고 있습니다.
인민들에게 이밥에 고기 국을 먹이겠다는 세기적 과제를 아직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북한에서는 농업과 먹는 문제를 국가의 최우선 정책으로 해마다 제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나니 농사와 관련된 구호, 유머, 은어들도 차고 넘칩니다.
1974년 '쌀은 곧 공산주의다'의 구호를 제시한 북한은 2000년 이후부터 한발 물러나 '쌀은 곧 사회주의다'로 바꾸었죠. 사회주의, 공산주의 건설에서 농업이 그만큼 중요하고 특히 북한현실에서 사활적임을 반영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레닌은 '전기는 곧 공산주의다'라는 표어를 제시했죠. 공업화의 핵심이 전기, 동력이고 또 공산주의 건설의 핵심이 공업화라는 의미입니다.
소련식 사회주의를 이식한 북한도 한 때는 중공업을 우선적으로 발전시키면서 경공업과 농업을 동시에 발전시키는 것을 당의 혁명적 경제 전략으로 채택했고, 14년만의 짧은 기간에 사회주의 공업화를 달성했습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인가요, 최근 장거리 로켓 발사도 성공했고, 국제사회의 한결같은 반대와 제재에도 불구하고 야심차게 핵 무장화도 완성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아직까지 인민들의 초보적인 먹는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고 있죠.
'모내기를 적기에 와닥닥 끝내자.' '벼단 꺼들이기와 낱알 털기를 와닥닥 끝내자.'의 구호에서 볼 수 있듯이 순수 조선말을 사용해 사안의 시급성, 군중에 대한 호소성을 높이기도 합니다.
'한 손에는 총을, 다른 한 손에는 낫과 마치를!' 이 구호는 6.25전시상태를 반영한 것이지만 요즘 또 등장하더군요. 대남, 대미대결의 긴장상태를 극대화한 표어라 하겠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북한사람들에게 많이 익숙한 유머는 '지도 농민'입니다. 온 나라가 달라붙어 농촌을 도와주고 소학교, 중학교, 중앙기관 할 것 없이 농번기 때는 모두가 농촌지원에 동원되는 상황에서 나온 말입니다.
즉, 이때는 농민들이 일은 하지 않고 이리저리 포전과 논두렁을 돌아다니면서 이거해라, 저거해라 '지도 농민'행세를 한다는 뜻입니다. 한번 농민계급에 속하면 평생, 때로는 대대로 농사를 해야 하는 형편에서 농촌지원 때만큼은 좀 땡땡이칠 만도 하겠죠.
이외에도 '감자농사 혁명,' '두벌농사,' '뒷그루 심기,' '농민 시장,' 10일 장, 군 지원 돼지, '강냉이는 알곡의 왕,' 등 북한에만 있는 표현, 현상들도 많습니다.
얼마 전 노동신문에는 '우리 행복의 열매를 우리의 힘으로'라는 제목의 정론이 실렸습니다. 여기서 농사는 천하지대본이라고 강조하면서 식량증산의 절박성을 이렇게 호소하더군요.
'우리에게 생명선처럼 귀중한 것은 바로 쌀, 식량'이다, '혁명의 수뇌부 두리에 천만 군민이 철통같이 뭉친 강위력한 일심단결이 있으며, 우월한 사회주의제도가 있는 우리에게 이제 먹을 것만 많으면 무서울 것, 두려울 것이 무엇인가.'
'총 폭탄이 울부짖는 전화의 그날에는 불 뿜는 적 화구를 몸으로 막은 병사가 영웅이고 애국자라면, 한 알, 한 알의 쌀알이 원수를 치는 총알이 되고 부강조국 건설의 씨앗이 되는 오늘에는 피와 땀을 바치고 넋을 바쳐, 애국의 열매를 이 땅 위에 총알처럼 무겁게 가꾸는 사람이 애국자이고 영웅이다, 농민들은 선군시대의 애국농민이 되라'고도 했습니다.
그렇죠. 우리 시대 진정한 영웅은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고, 여기에 나라의 자원을 퍼붓는 사람이 아니라 한 알, 한 알의 쌀을 더 생산하는 사람이겠죠.
'대동강 이야기'의 김광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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