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장 살

평양시내 아파트 건설현장 작업 중 휴식을 취하는 북한 병사들 모습.
평양시내 아파트 건설현장 작업 중 휴식을 취하는 북한 병사들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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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친애하는 북한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북한에는 이런 말이 있죠. '염장 살.' 군에 나가 하도 오랫동안 염장 무, 염장 배추, 염장 물고기를 먹으면 좀 붙은 살도 그냥 살이 아닌 '염장 살'이라고 유머러스하게 하는 말입니다. 보통 군, 교도대에서 많이 쓰는 말이죠.

북한은 1996년부터 학제를 4월 1일 시작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요즘 고급중학교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군 초모사업이 한창이라고 하네요.

그런데 좀 의아스러운 것은 남한 노래인 '이등병의 편지'가 인기리에 불린다고 하는 것입니다.

'집 떠나와 열차타고 훈련소로 가던 날, 부모님께 큰 절하고 대문 밖을 나설 때, 가슴속에 무엇인가 아쉬움이 남지만, 풀 한포기 친구 얼굴 모든 것이 새롭다, 이제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생이여.

친구들아 군대 가면 편지 꼭 해다오, 그대들과 즐거웠던 날들을 잊지 않게. 열차시간 다가올 때 두 손잡던 뜨거움, 기적소리 멀어지면 작아지는 모습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꿈이여.

짤게 잘린 내 머리가 처음에는 우습다가,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이 굳어진다 마음까지, 뒤동산에 올라서면 우리 마을 보일런지, 나팔소리 고요하게 밤하늘에 퍼지면, 이등병에 편지 한 장 고이접어 보내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꿈이여.'

노래가사는 사실 젊은 날의 꿈을 향하여 보람찬 군 복무를 활기차게 보낼 것을 호소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부모님의 품을 떠나 그리고 그리운 고향, 친구들, 아름다운 추억들을 뒤로하고 어렵고 힘든 생활을 이겨나가는 그래서 이들에게 보내는 편지 한 장이 모두에게 그렇게 소중한 것임을 일깨워주는 가슴 아련한 노래, 곡인 것 같습니다.

남한의 많은 사람들이 이 노래를 들으면 숙연해지고, 눈물 흘리고, 가슴 먹먹해지는 이유가 그 때문이겠죠. 군인들은 특히 훈련소에서 이 노래를 부르며 눈물을 많이 흘린다죠.

그런데 어떻게 북한에서 '남조선 노래'가 이렇게 공공연하게 불릴 수 있을까요. 소식통에 따르면 작년까지만 해도 '이등병의 편기'가 한국노래라는 것을 모르고 불렀다 네요. 그러나 요즘은 남한노래인지 알 뿐 아니라 이 노래가 삽입된 영화 '공동경비구역JSA' 내용까지 서로 공유하면서 부른다고 합니다.

또한 이 노래를 포함해 한국노래를 부르는 것에 대해 '대남 심리전 노래인 칠보산 음악'이라고 포장해 합리화하기도 한다네요.

군 복무는 어느 나라에서든지 한 쪽으로는 국가와 나라에 대한 공민으로서의 당연한 의무이고 영예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한 쪽으로는 젊은 청춘을 사회와 집단을 위하여 바치는 희생이기도 합니다.

더구나 꽃다운 청춘들이 동족상잔 전쟁에서 피를 흘리고 희생되어야 하는 것은 불행 중의 불행일 것입니다.

요즘 북한에서는 '제2의 조선전쟁', '핵전쟁'얘기가 끊이질 않고 나오고 있습니다. 북한의 지도자들도 아마 이 '이등병의 편지'노래를 부르면서 군에서 청춘을 바치고 있는 젊은이들의 애환과 심정을 부모의 입장에서 되새겨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수많은 귀한 청춘들이 '염장 살'에서도 해방되어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