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친애하는 북한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봄을 알리는 개나리꽃의 개화로 완연한 봄이 온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계속되는 긴장고조로 남북관계, 미북관계에는 차가운 겨울, 살얼음판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해마다 9천만 달러의 현금유입으로 황금알을 낳는 개성공단 폐쇄까지 위협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어제 북한에서는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가 열렸더군요. 여기서는 경제건설, 핵 무력건설을 동시에 추진하는 병진노선을 김정은시대 전략으로 채택하였습니다. 미국본토, 일본 미군기지, 남한을 모두 벌초해 버리겠다고 호언장담하면서도 아직까지 핵 무장화가 잘 안된 모양입니다.
병진노선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1966년 북한이 채택한 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을 같이 밀고나갈 데 대한 방침입니다. 당시에는 사회주의 진영을 포함에 국제사회에는 많은 갈등과 충돌요소들이 있었죠. 1968년에는 프에블로호사건으로 한반도에 일촉즉발의 긴장상태가 조성되기도 했습니다.
북한에서 가장 유명한 경제노선은 중공업을 우선적으로 발전시키면서 경공업과 농업을 동시에 밀고나간다는 당의 혁명적 경제 전략입니다.
북한문헌, 혁명역사자료에 따르면 당시 종파분자들은 이를 극력 반대했다고 합니다. '기계에서 밥이 나오냐'면서 먹는 문제를 우선 해결해야 한다느니, 경공업을 발전시켜 경제발전에 필요한 자본을 먼저 마련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그 후 북한은 변화되는 국제환경, 경제상황에 맞게 경제 전략에 여러 번 수정을 가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1993년에 나온 '농사제일주의, 경공업제일주의, 무역제일주의'였습니다.
당시 이 정책이 나오면서 여로 모로 사람들이 많은 것을 기대했습니다. 우리도 이제는 개혁, 개방을 하지 않겠느냐, 앞으로 경제상황이 많이 좋아지지 않겠나 등 말이죠. 그러나 큰 변화는 없었습니다.
2002년에 실시된 7.1경제관리개선조치도 대단한 변화시도였죠. 가격, 환율을 시장시세에 근접시켜 대폭 올렸고, 월급도 많이 인상했습니다. 기업소들에 자율권, 독립채산제원칙을 더 확대해 적용하기도 했죠.
농촌지역에서는 도급제가 엄격해져 평소에는 '지도농민'행세를 하면서 농사에 소극적이던 농민들이 더 많은 생산물, 더 많은 소득을 기대해 초인간적 힘으로 농사에 임했습니다. 새벽 3시, 4시에 모판에 나가도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열의가 높았다고 합니다.
특히 창광거리 2계단 식당들에서는 점수제를 도입해 접대원들이 아침 일찍 나와 식당을 쓸고 닦고 난리였으며, 더 많은 손님들에게 더 많은 음식을 팔려고 노력했죠. 접대, 근무 시에 파리가 날리면 점수를 삭감하는 식이였습니다.
당시 가장 걱정을 많이 한 사람들은 중앙당 간부들과 그 가족들입니다. 그들은 노골적으로 '지금 가장 어려운 사람들은 우리들이다'라고 표현도 했죠. 월급도 군, 광산, 탄부들보다 낮게 책정되었고, 과거에는 권력을 휘둘러 기득권을 누렸거나, 뇌물로 생계를 유지했는데, 돈과 실적으로 소득수준을 결정하는 사태가 발생했으니 오죽이나 놀랐겠습니까.
그러나 7.1경제관리개선조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실패로 끝났습니다. 아마도 기득권을 누리려는 간부들의 반발이나 저항도 이에 한몫했겠죠.
현재 북한에는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 장기간의 유일사상체제 확립과정으로 과거와 같은 종파분자들은 한 명도 없습니다. 모두가 당에서 아하면 아하고 오하면 오하는 분위기죠.
그러나 실제 일반주민들의 심정과 생각은 다 꼭 같을까요? 그렇지 않은가 봅니다. 그들은 북한당국의 매일과 같은 안달복달에 모두 신물이 나 있습니다. 요즘 사재기도 한다는데 전쟁기간에 필요한 물자가 아니라 유사시에 중국으로 튀기 위한 비상물자를 준비한 다네요.
그리고 당국의 계속되는 전쟁소동, 훈련에는 '핵전쟁이 나면 다 죽는다는데 훈련은 무슨 훈련이야'라고 불만을 표시한다고 합니다.
아마도 누군가는 '핵에서 밥이 나오나?'라고 하지 않을까요?
'대동강 이야기'의 김광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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