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강 이야기] 이빨이 없어도 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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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북한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 구호와 만세가 넘쳐나는 북한에서 그래도 건질만한 몇 안 돼는 구호중의 하나인 것 같습니다. 어려워도 희망을 잃지 마시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살다보면 언젠가는 꼭 좋은 날이 오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당의 구호관철을 위해 요즘도 교예(서커스)공연 중 사이사이에 막간극을 하는지요? 여기서는 이를 개그라고 합니다. 남북대결이 첨예했고, 북한이 잘 나갈 때는 북한판 개그도 '인기'가 많았습니다.

주로 '남조선 군대,' 전연지대에서의 생활상을 풍자한 것들이 많았습니다. 심리전 일환으로 공산군보다 남쪽이 더 잘 산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먹지도 못하는 통돼지 구이를 항상 걸어 논다고 패러디하고 그랬죠.

남한에서의 민방위대 징집을 다룬 작품도 하나 있습니다. 70-80고령의 노인들을 닥치는 대로 뽑는가 하면, 신체검사할 때는 이빨이 하나도 없는 노인에게 '이빨이 없어도 합격! 어차피 군대에서는 멀건 죽물만 마실 텐데,' 이런 식으로 패러디하였습니다.

당시에는 '헐벗고 굶주린 남조선 어린이들을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습니다.'가 '수령님의 교시'였고, 교과서에 실린 남한 실상이었으니 더 말해 뭐하겠습니다. 학생들은 도화공작, 미술시간에 남한을 그리라면 깡통을 차고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어린이를 그리곤 했습니다.

서울에서는 공산군을 뿔 달린 괴물로, 사상이 빨간 사람은 '빨갱이'로 묘사하고 불렀다고 합니다. 지금은 이런 것들이 많이 없어졌지만, 최근 어느 외신기자의 북한학생 인터뷰를 보면 북한에는 아직도 그 때 그 말이 그대로인 것 같습니다.

며칠 전 '데일리엔케이'에는 이런 기사가 소개됐더군요. 북한에서 군대초모 가능키를 142cm까지 낮추었다고요. 군사동원부에서는 '아직은 나이가 있으니(어리니) 입대 이후에 더 자랄 수 있지 않겠냐?'면서 대구(막) 뽑는다고 합니다. 그래도 인원이 모자란다나요.

제 기억에는 우리가 한창 자랄 때는 못해도 남자들은 입대기준이 158인가 160cm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기준이 점점 내려가더니 1994년부터는 신장 148cm, 몸무게 43kg에 합격, 지금은 142cm이면 합격을 준다고 하네요.

세상에. 남들은 너무 먹어서 걱정이고, 나날이 뚱뚱해져서 난리인데 북한만은 세상사를 완전히 역행하고 있습니다. 평양에 있을 때 군인들의 키가 점점 줄어들어 장총을 메워주면 질질 끌고 다닌다는 말을 들었는데 지금 사태는 훨씬 더 심각한 것 같습니다.

대학교수노릇을 하기 싫어 꾀병으로 병원에 입원했던 적도 있습니다. 그때 여러 명의 영양실조 군인환자들과 같이 있었는데요, 영양실조도 화상처럼 1도, 2도, 3도로 구분했던 것 같습니다.

너무 심각하면 일시 회복을 시켜 감정제대를 시키던데, 근데 그 후과가 평생 간다고 하더군요. 아무리 몸 관리를 잘 하고, 잘 먹어도, 평생 건강이 안 좋답니다.

이렇게 영양실조에 걸리는 군인들이 아마도 80%이상은 될 겁니다. 옛날에는 '젊어서 고생은 금주고도 못산다,' 뭐 이러면서 군대 갔다 와야 사람 구실한다고 거의나 다 군대에 내보내려고 했죠.

그런데 지금은 정 반대입니다. 군인가족 부모들은 모두가 바늘방석입니다. 대부분 자식들이 영양실조로 평생을 망치니까요. 짬만 되면 면회 가고, 기회만 되면 뇌물이나 물자로 집에 오게 하느라 난리입니다. 1호 행사에 뽑힌 군인들도 전쟁 포로들 같던데 사태가 오죽 심각하랴 싶습니다.

민심이 천심, 이민위천도 북한에서 많이 떠드는 구호입니다. 민족의 키를 줄이는 정치도 과연 천심을 받드는 정치인가요?

'대동강 이야기'에 김광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