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친애하는 북한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민족최대의 명절'인 '태양절'을 잘 쇠셨습니까? 4.15가 오면 학생들은 와이셔츠를 입고 만경대 견학을 가죠. 그런데 요즘 꽃샘추위로 날씨가 변덕스러워 양복차림으로 다녀왔으리라 봅니다.
해마다 이날이 오면 평양의 가정집들에서는 자녀들 나들이 도시락준비에 바쁩니다. 단임 선생님들 식사까지 챙기면 점수를 톡톡히 딸 수도 있죠. 어떤 이는 김밥, 어떤 이는 겨울 내 먹지 않고 아껴두었던 이면수, 가자미, 동태반찬을 성의 있게 싸옵니다. 가정사정이 좀 괜찮은 집들은 계란에 고기반찬도 해오죠.
요즘 남북관계는 중대고비에 놓여있습니다. 통일부장관의 대화성명에 이어 박근혜대통령도 현 남북관계를 타파하기 위해, 중대 기로에 놓인 개성공단을 살리기 위해 북한과의 대화를 제의했습니다.
일각에서는 북한의 도발위협에 백기를 드는 것 아니냐 또는 머리를 숙이고 굴복하는 것 아니냐 라는 말도 많지만, 평화와 안보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에 체면이나 타이밍에 구애받지 않고 적극적으로 제기한 것으로 보입니다.
12일 한중일 순방 차 서울을 방문한 미국의 케리 신임국무장관도 오바마대통령이 한미군사훈련 중 몇 개를 하지 않도록 명령했다고 하면서 대화를 제의했죠. 중국에 가서는 북한 비핵화를 실현하는 조건으로 중국이 몹시 신경 쓰고 있는 미사일방어체계를 축소할 의향도 전달했습니다.
중국의 리커창총리는 북한의 도발에 대해 '한반도에서 사건을 일으키는 것은 마치 돌로 제 발등 찍는 것과 같다'고 경고하고 나섰습니다. 얼마 전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이 '어느 누구도 자기만의 이익을 위해 지역과 세계를 혼란에 빠뜨려서는 안 된다'고 한 비판의 연장으로 보입니다.
이번 4.15를 맞으며 중국은 해마다 북한에 주던 지원도 끊었다고 하네요. 중국내 불법체류 근로자들도 단속하고, 식당 검열도 하고, 은행대표부들도 내쫒고, 요즘 행보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북한은 이번 대화제의에 대해 4일 만에 조평통 대변인을 통해 '빈껍데기'라고 일축하면서 거절했습니다. '대결적 정체를 가리기 위한 교활한 술책,' '모독이고 우롱,' '그런 대화는 무의미하고 안 하기보다도 못하다'고 하면서 말이죠.
다만 미국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고 '앞으로 대화가 이루어지는가, 마는가 하는 것은 남조선당국의 태도 여하에 달려있다'고 일말의 여지도 남겨두었습니다.
북한에서 이런 것을 두고 일반인들은 '깡치를 판다'고 하죠. 모든 것을 끝가지 들어낸다는 뜻입니다. 꾸어준 돈을 받으러 독촉하거나, 남에게 부탁한 것을 끝까지 받아 내거나, 친구에게 '턱'을 받아 내거나, 관혼상제 때 '술 깡치를 팔 때'도 많이 써먹습니다.
즉, 북한의 원하는 돈을 내라는 속셈이죠. 대화제의 내용에 쌀이나, 비료 등 인도적 지원, 대북지원내용이 없다는 논리입니다.
지금 사태를 보면 참 요지경입니다. 북한의 작년 12월 장거리 로켓발사와 올해 2월 3차 핵실험의 본말은 어디가고, 그리고 유엔안보리의 제재와 그 집행은 어디가고 지금은 대화를 하니 마느니, 개성공단을 어쩌니 저쩌니, 게다가 전쟁을 하느니 마느니로 오도가 됐습니다.
그리고 좀 있으면 북한에 지원을 얼마나 주느니 마느니로 번질 것 같습니다.
북한은 내심 저들이 오랫동안 지속한 '말 폭판' 심리전이 먹이고 있지 않나 생각할 겁니다. 깡치를 제대로 파고 있는 셈이죠.
그러나 외부세계가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넘어가지는 않을 겁니다. 중국도 태도가 많이 달라졌고 미국도 대화는 제의했지만 '같은 말을 두 번 사지 않는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무조건 퍼주기 식 시대는 이제 끝났고요. 아무리 깡치를 파봤자 뭐가 나올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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