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친애하는 북한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복잡다단했던 태양절 100돌 행사, 김정은 추대기간이 가고 어느덧 농사의 계절, 파종시기가 다가왔습니다.
봄 향기에 취해 오랜만에 평양 중앙텔레비죤을 보니 '발걸음,' '보라 우리를 보라, 그러면 마음 든든하리라,' '수령이시여 명령만 내리시라' 등 김 부자 찬양, 전시가요 투성이었는데 '봉선화'와 같은 계몽기가요도 나와 뜻밖이었습니다.
북한에서 좀 이색적인 노래가 공개적으로 퍼지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도부내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외국노래, 남조선문화를 즐겼죠.
호위총국 예술단으로부터 시작해 비밀파티를 전문 보장한 보천보전자악단, 왕재산 경음악단에서는 러시아노래는 물론 일본, 남조선노래도 많이 불렀습니다. 여자들이 홀랑 벗고 팬티바람으로 추는 닭 춤, 훌라후프 춤도 일반인들에게는 많이 낯설 겁니다.
파티에 참가한 간부들이 하도 여자들 머리채를 흔들어 끝나면 연회장에서 머리카락이 한 줌씩 나오곤 했다나요. 외국노래 가사 집을 비밀리에 출판, 복사해 간부들에게 돌리기도 했습니다.
이뿐이 아닙니다. 중앙당 조직지도부 간부 5과를 통해 전국을 돌면서 각종 초대소, 기술서기를 충당하기 위해 미인이란 미인은 죄다 각출한 사실은 북한인민들에게도 많이 익숙합니다.
시집보낼 때는 급수별로 김 부자 지시에 따라 중앙당에서 책임지고 신랑감들을 골라 당에서 짝짓기를 시키죠. 김일성종합대학, 국제관계대학 등을 돌아다니며 잘 생긴 총각들의 사진을 쭉 깔고 아가씨들이 맘에 드는 사내들을 제 맘대로 고루는 식입니다.
짝짓기 담화 때 눈치 빠른 이들은 애인이 있다고 피해갔지만, 순진한 일부 제대군인들은 당의 사위취재, 강제 짝짓기의 희생물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이들에게는 직업의 선택, 집을 배정받을 혜택, 외국에 파견될 행운 중 어느 하나의 대가는 차례졌죠.
예술영화 '민족과 운명'편을 통해 북한인민들에게 많이 알려진 계몽기가요에는 '홍도야 울지 마라,' '눈물 젖은 두만강'외에 박정희대통령이 즐겼다는 '노란 샤쓰의 사나이'도 끼어있습니다. 당에서 인민들에게 허락하자마자 그야말로 폭풍적인 인기를 얻고 퍼져나갔죠.
예술영화 '조선의 별'에 나오는 '황성옛터'도 그중의 하나입니다. '황성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폐허에 설운 회포를 말하여 주노라,,,' 열혈청년, 시인 김혁은 이렇게 외칩니다.
'우리 심사엔 3절이 맞지. 나는 가리로다 끝이 없이 이발길 닿는 곳, 산을 넘고 물을 건너서 정처가 없어도, 아 괴로운 이 심사를 가슴 깊이 묻고, 이 몸은 흘러서 가노니 옛터야 잘 있거라.'
그는 이렇게 계속합니다. '조선아, 너를 두고 모두가 떠나가는구나. 배고파 떠나고, 쫓겨 가고, 팔려가고, 그러나 나는 너를 부둥켜안고 몸부림치며 살련다.'
당시에는 나라를 빼앗긴 슬픔이 하늘에 사무쳤다면 지금 북한은 지도자를 잘 못 만난 설음으로 몸부림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계몽기가요가 인민들의 지지와 호응을 얻고 널리 애용되겠죠.
노래에 얽힌 사연은 또 있습니다. '림꺽정'의 주제가를 북한당국은 금지시켰다죠. 가사 내용을 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구천에 사무쳤네 백성들 원한소리, 피눈물 고이었네 억울한 이 세상, 산천아 말해다오 부모처자 빼앗기고, 백성의 등뼈 갉는 이 세상 어이 살리.'
'칼집에 꽂힌 장검 보습을 벼리어서, 사래긴 논과 밭을 갈았으면 좋으련만, 나서라 의형제요 악한 무리 쓸어내고, 가슴에 쌓인 원한 장부답게 풀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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