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팔계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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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최근 북한과 중국과의 불편한 관계는 평양 석유가격이 급등하는 등 북한사회의 여러 모습들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요, 그 중에서도 북한주민들의 유일한 낙인 이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외국영화 방영시간에 중국영화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구소련영화들이 안방을 차지하는 데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지난 4월 30일 오후에는 2차 세계대전 발발직전 소련 비밀요원들이 독일에서 활동한 내용을 담은 구소련영화 '사복 입은 사람'을 방영하기도 했죠.

이번 영화 방송은 올해 들어 4번째로 작년에는 8차례, 2015년에는 10차례 구소련영화를 수시로 방영해왔는데요, 이와는 반대로 중국영화는 3년째 외면당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다분히 북한의 정치적 계산, 대외관계의 실익을 고려한 결과인데요, 왜냐면 실제 북한 TV는 2013년까지는 중국영화를 구소련영화보다 더 많이 내보냈죠. 그러나 2014년 6월 22일 마지막 방영을 끝으로 북한 TV에서 사라졌고, 현재 북한 TV에서 볼 수 있는 외국영화는 구소련영화가 유일하다고 합니다.

과거 북한은 이와 유사한 태도를 일관성 있게 보여주기도 했죠. 중-러 사이 등거리전략을 써먹을 때는 관계가 더 좋은 나라의 소식이나 축전을 노동신문이나 방송의 맨 앞에 소개했습니다.

최근 북-중사이 관계가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한 것은 친중파로 알려진 장성택을 잔인하게 처형하면서부터인 것 같습니다. 특히 지난 4월 6-7사이 미중정상회담이 있은 후 중국이 미국의 트럼프 신행정부의 대북압박에 더 많이 동조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어 북한이 더 경계하고 있을 겁니다.

중국은 북한의 6차 핵실험을 반대하면서 만약 할 경우 대북원유공급을 중단할 수 있다고 경고하였으며, 미국이 군사적으로 북한 핵시설을 공격한다고 해도 개입할 필요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북한을 미국 다음가는 군사적 가상 적국으로 지목하기도 했죠.

이에 화가 난 북한은 최근 조선중앙통신 논평에서 '그들(중국)이 그 누구(미국)의 장단에 춤을 계속 추면서 우리에 대한 경제제재에 매달린다면 우리와의 관계에 미칠 파국적 후과(결과)도 각오해야 할 것'이라고 위협하였으며, 대국이 체면도 위신도 없이 미국에 굴종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사실 북한의 대중, 대러관계를 살펴보면 경제, 군사는 물론이고 사상 문화적으로도 중국보다 소련의 영향을 훨씬 더 많이 받았습니다. 한때 북한은 스탈린만세를 자연스럽게 불렀고, 거리에도 그의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주민들의 기억 속에 남는 영화도 많이 상영했죠. '17일 동안에 있은 일', '검과 방패', '위험계선', '계승' 등. 대부분 전쟁물 영화입니다. '호박이 늘 넝쿨째로 떨어질까' 등 희극영화도 꽤 됩니다.

김정일은 한 때 저팔계외교를 제창한 적이 있죠. 날을 세우지 말고 웃으면서 제 차릴 이속을 다 차려먹으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나름대로 자기의 본색을 드러내지 않고 실리를 많이 챙겼습니다. 김정일의 저팔계외교, 그리고 현재 김정은의 영화편력, 앞으로 이들의 외교, 어떻게 진화를 할까요?

'대동강 이야기'의 김광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