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 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김광진 씨가 전해드립니다.
어느 날 냉면으로 유명한 대동강반의 '옥류관'을 '냉면 광'으로 불리는 평양화력발전소 천리마반의 철룡이가 찾았습니다. 대식가 중 둘째라면 서러워할 왕성한 식성을 가진 그는 특히 냉면을 좋아하는 청년혁신자입니다. 동료들은 저마다 쟁반냉면을 곱빼기로 시키고는 철룡이에게 무한리필을 주문했습니다. 리필은 또 채운다 라는 뜻인데 몇 그릇을 더 먹던 한 그릇 값만 내는 겁니다.
아리따운 처녀 접대원동무들의 배식이 시작되자 그의 그릇은 게눈 감추듯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느덧 5그릇째, 주변 친구들은 그제야 곱빼기를 막 끝내고 있었습니다. 여섯 그릇 째가 들어오자 입을 흐뭇이 닦고 있던 작업반원들의 얼굴에는 감탄과 함께 은근히걱정하는 눈치도 보였습니다.
'원 저런, 저 배도 사람 배요?' '아무리 밥 배와 국수배가 따로 있다지만 너무하네!' 이런저런 생각을굴리고 있는데 드디어 여덟째 그릇이 나왔습니다. 허리춤을 잠깐 비비고 위를 늘이듯 어깨를 한번 쭉 펴더니 이번 국수그릇도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9번째 곱빼기를 가져다주면서 기가 찬 접대원 처녀의 질문. '저, 동지, 다음 그릇도 준비하랍니까?' 이때 배를 쑥 내밀면서 능청스럽게 하는 철룡이의 말. '내배가 뭐 소배요?' 내배가 그렇게 크지 않으니 더 가져오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야기가 어느 정도 과장되었겠지만 배가 큰 사람의 능청을 잘 표현한 유머입니다. 그리고 한 때는 '냉면은 무조건 곱빼기'라는 북한사람들의 식습관과 식탁의 넉넉함도 보여주는 실화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이 까마득한 옛말이 됐습니다. 오죽했으면 인민들이 '공산주의는 벌써 왔다 갔다'고 하겠습니까.
수십 년의 만성적 기아에 허덕이면서 또 한 번 보릿고개인 5월이 다가왔습니다. 지금 북한의 식량사정에 대해서는 외부에서도 토론이 분분합니다.
6월부터 식량이 떨어져 수십, 수백만이 대책이없다느니, 인민들은 굶으면서 100만 톤의 전쟁식량을 이미 비축해 놓았다느니, 작년 작황이꽤 좋아 500만 톤이면 그렇게 부족한 량이 아니라느니 하면서말입니다.
북한은 작년 곡물생산량을 2009년에 비해 10만 톤 늘어난 511만 톤이라고 세계식량기구(WFP)와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FAO)에 통보하였습니다. 특히 동 국제기구들은 농약공급 증가 및 이모작 확대 등의 이유로북한 자체 추계보다 많은 533만 톤으로 평가하였습니다.
저는 식량이나 농업전문가가 아니어서 어떤 숫자가 더 정확하고 신뢰할만한지 잘 모르지만 북한에서 우리끼리 이야기하던 상식으로는 500만 톤이라면 10%의 오차가 있어도 식량이 부족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하루에 1만 톤이면 북한 전체가 뒤집어쓴다'는 게 북한관료들끼리 주고받던 정보입니다. 1만 톤을 2천 300만 명으로 나누면 하루 평균 435그램이라는 소비량이 나옵니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말이죠. 그러면 어른들은 한 500정도 차례지고 애들은 300정도 차례지니 굶어죽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얘기죠.
이렇게 1년 365만 톤이면 어느 정도 유지가능하고 그에 100만 톤 추가하면 그렇게 어려운 쌀독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문제는 식량이 콩기름으로 포탄생산에 줄줄 새고 술을 뽑아 간부들에게 공급하고 외국으로 빼돌려 김정일 통치자금으로 둔갑하는 것입니다. 많은 부분이 인민들의 식탁으로 돌아가지 않고 도용되고 있는 분배의 불평등, 편증된 소비 때문에 모자라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식량이 없는데 어떤 계층은 1년에 몇 톤씩 소비하는 격이죠.
또 하나의 중대한 원인은 북한당국이 체제이완을 두려워해 식량증산에 필요한 개혁의 조치, 변화의 자구노력을 전혀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13억의 인구지만 먹을 것이 넘쳐나고 국민들은 살을 빼지 못해 난리입니다. 지도자를 잘못 만난 북한과의 극명한 차이를 보여주는 현실입니다.
0:00 / 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