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강 이야기] 수령님도 모르는 주체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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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경애하는 북한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요즘 남한에서는 과거 주체사상을 학생운동권의 핵심 이념으로 만든 인물, 민족해방운동의 신화 같은 존재였던 김영환씨의 중국에서의 체포사실로 떠들썩합니다.

중국에서 동료들과 함께 북한민주화운동, 탈북자 구출활동을 벌이다 체포되었다고 하네요. 중국은 ‘국가위해 죄,’ ‘출입국 법률위반’등의 혐의를 적용해 변호사면담을 거부하는 등 이례적으로 매우 엄중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그는 주사파의 대부로서 ‘강철서신’으로도 유명해졌는데요, 82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해 구국학생연맹을 결성했고 ‘강철’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했으며, 그가 쓴 ‘한 노동운동가가 청년 학생들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제목의 ‘강철서신’은 주체사상 전파의 교본이었습니다.

남파된 공작원에 포섭되어 91년에는 북한 잠수정을 타고 밀 입북해 묘향산 별장에서 김일성을 두 차례 만나기도 했습니다. 그 후 북한과 지속적으로 접촉하면서 ‘민족민주혁명당’을 조직해 반미, 민족해방, 통일운동을 주도했죠.

그러던 그는 97년 자기가 만든 민혁당을 해체하게 되며, 완전히 180도로 전향해 북한민주화운동, 인권운동에 온 몸을 바치게 됩니다.

그가 전향하게 된 동기가 무엇인줄 아십니까? 주체사상의 창시자 김일성을 만난 게 가장 큰 화근이었습니다. 김일성이 주체사상에 대해 잘 모르더라는 것이죠. 간부들, 학자들도 별로 다를 바 없었습니다.

밀입북 당시 주체사상 토론에서 ‘수령이 문화대혁명과 같은 오류를 범하려고 하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을 수차 반복했는데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는군요. 당연하죠. 북한에서 누가 감히 수령이 그런 오류를 범할 수 있다고 가정이라도 하겠습니까.

그는 민혁당 핵심간부들에게 이런 편지를 보내기에 이릅니다.

‘지금 북한은 지구상 어떤 나라에서 볼 수 없는 독재를 펼치고 있다. 인민을 굶겨죽이고 인권을 억압하고 있다. 우리는 혁명가다. 인민의 적은 우리의 적이다. 인민의 적이 된 북한정권에 맞서 투쟁해야 한다. 나는 남은 인생을 북한정권을 타도하는데 바치려고 한다. 나와 같은 길을 걸으려고 한다면 나의 벗이 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김정일과 함께 나의 적이 될 것이다.’

99년 쓴 반성문에서 북한의 실상을 이렇게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만인평등의 사회주의를 외치면서 한편으로는 엄청난 특권과 사치생활을 즐겼으며, 일반 주민들이 사소한 잘못이라도 저지르면 가차 없이 처벌하면서 자기들은 첩을 몇 명씩 두고 남의 아내를 빼앗는 등 갖은 부도덕한 짓을 서슴지 않았으며, 인민의 자주성을 외치는 주체사상을 내세우면서도 인민의 자주성을 세계에서 가장 심하게 억압하고 있다는 것을, 주체사상은 그들에게 단지 지배의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때서야 비로소 완전히 깨닫게 된 것입니다.’

2005년 북한인권 국제대회 때는 ‘1990년대부터 북한은 보스 1인 중심의 마피아형 군사독재체제이며, 사회주의적 요소는 파괴됐고, 더 이상 사회주의 사회도 아니다’라고 혹평했습니다.

얼마 전 김정은은 열병식에서 멋진 첫 연설을 선보였습니다. 마지막에 ‘최후의 승리를 향하여 앞으로’라는 구호가 클라이맥스였죠.

또한 ‘위대한 김정일동지를 우리 당의 영원한 총비서로 높이 모시고 주체혁명위업을 빛나게 완성해 나가자’라는 ‘고전적 노작’도 처음으로 발표했습니다. 주체사상의 창시자인 할아버지도 잘 모르는 주체혁명위업을 손자가 어떻게 빛나게 완성할지 몹시 궁금합니다.

제가 받은 교육에 따르면 주체사상의 핵심은 ‘자기운명의 주인은 자기 자신이다’입니다. 북한인민들이 모두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는 날, 주체위업이 완성되는 날이 과연 언제 올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