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강이야기] '비행기 날개를 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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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비행기 날개를 잡다,' 또는 '비행기 꼬리를 잡는다'는 말은 북한에서 외국에 한 번 나갈 기회를 얻은 것을 비유한 말입니다. 때론 기차나 화물차로 중국에 가보든 상관이 없죠.

북한에서 외국에 한번 나가는 것은 가문의 영광,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잘만하면 달러도 좀 벌고 부자가 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죠. 어떤 사람들은 '충성자금'을 다 바치고도 20만- 30만 달러를 벌기도 합니다.

대외부문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평생 3탕'이 최고의 목표입니다. 대사관이나 대표부에 3번 파견된다는 얘기죠. 그런 기회를 잡은 사람을 '최우등 졸업생'이라고 부러워합니다.

저는 외국어 쟁이(외국어 전문가)라 북한에서 살 때 해외파견에 얽힌 사연들을 수없이 많이 보아왔습니다.

어느 외교관은 동구권의 한 나라에 교육 참사로 발표 받고는 흥분하여 혈압이 터져 끝내 '비행기 꼬리를 잡지' 못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대표부에서 마련한 수십만 달러의 '충성 자금'을 나르다 긴장으로 혈압이 튀어 불구가 되었고요.

동남아에 파견된 한 대사는 뜨거운 국을 너무 급하게 먹어 위 천공으로 사망한 불행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비행기 날개는 잡았지만 끝이 안 좋은 사례라 하겠습니다.

요즘 외부 언론에서는 북한 대사관, 외교관들에 대한 유사한 기사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인도 뉴델리에서는 북한대사관이 차량밀수와 탈세에 관여한 혐의로 인도 국세정보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도난차량 밀수범이 북한과 웰남(베트남) 대사관 고위 관리들을 끌어들여 그들의 명의를 이용 했다나요. 이를 통한 탈세 규모도 엄청나다고 합니다.

얼마 전 모스크바에서는 북한대사관이 건물을 불법카지노 용도로 임대해 러시아정부가 항의하는 사건도 발생했습니다. 행정용 별장에 도박장을 설치해 슬롯머신 30대, 룰렛 테이블 4개, 포커․블랙잭 테이블 5개를 갖추고 작년 12월부터 운영했다고 합니다.

러시아 당국의 카지노 단속을 피하려는 카지노 업자와 짜고 대사관이 치외법권을 이용해 외화벌이를 하려 한 모양입니다.

좋지 않은 소식이 또 있는데요. 가다피와 반군사이의 전투, 나토의 공습으로 전쟁터로 변한 리비아에서 북한 의사부부가 폭격으로 중상을 당해 병원에 입원해 있는 장면이 전 세계 언론에 공개된데 이어 최근에는 나토의 공습으로 북한 대사관이 피해를 입었다고 떠들 썩 합니다.

중국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나라들이 국민의 생명안전을 위해 대사관은 물론 파견근로자와 교민들을 모두 철수시킨 와중에 난 사고라 많은 이들이 의아해 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북아프리카와 중동에서 타 번지고 있는 민주화혁명, 시민혁명의 불꽃이 북한으로도 튈까봐 북한당국이 해외파견원 철수나 입국을 금지시켰다는 보도도 뒤따르고 있습니다.

한 쪽에서는 철수시키지 않아 남의 나라 내전의 피해자가 되고 다른 한 쪽에서는 '충성의 외화벌이'와 생존을 위해 밀수와 도박에 뛰어 들고.

제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김정일은 외교부에 '나의 외교부'라는 칭호를 달아주었습니다. 그만큼 신임하고 믿는다는 거죠. 그러나 나라의 경제사정이 딱해 대사관 임대료는 고사하고 월급도 제대로 안주니 여기저기서 사고를 치고 있습니다.

주지도 않으면서 내라는 것은 또 많습니다. '백두산 밀영 고향집'건설에 못, 장갑, 비옷, 식량, 현금 등 무엇이든지 필요하다지, 태양절 잔치에 선물도 내라지.

더 자존심이 상하는 것은 '자랑스러운 김정일의 외교전사,' '나의 외교부'파견원들이 돈이 없어 다른 나라 외교관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겁니다. 김일성, 김정일, 좀 있으면 김정은 생일 축하 연회도 해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