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냉이 영양단지는 '학생단지' 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친애하는 북한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5-6월에 밥 먹는 사람은 다 동원되라'는 총동원령 하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전국적인 모내기 전투에서 혁신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북한에는 이런 유머가 있죠. 강냉이 영양단지는 '학생단지!' 농사철에 학생들이 하도 많이 동원돼 농사를 짓다나니 강냉이 농사는 결국 학생들이 다 짓는다는 얘기입니다.
말은 바른대로 북한에서는 모내기, 가을걷이에 소학교 4학년부터 모두 동원됩니다. 제가 평양외국어학원 재학 중일 때도 예외는 아니었는데요, 그 때는 학교에서 중간휴식시간에 키 크기 간유우유도 주고 빵도 공급할 때니까 그렇게 어려운 시기는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학부형들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농사지을 자식들이 안쓰러워 거의 매일과 같이 교대로 간식, 후방물자를 바리바리 싸들고 농촌 지원장에 찾아오곤 하였습니다.
그러다나니 주머니에 강냉이, 콩 '뻥뻥이 튀기'는 기본적으로 차고 있었고요, 좀 운이 좋은 날에는 계란빵, 사탕도 떨어뜨리지 않고 먹었습니다. 농장에서도 이따금씩 후방사업을 해주었죠.
점심시간에 냉면 곱빼기, 갖 따온 애호박 국은 참 별맛이었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그리고 '후방사업은 곧 정치사업'이라 먹는 것이 가장 중요했죠. 또 한참 자랄 나이라 먹고 돌아서면 바로 배고 푸던 시절이었습니다.
집과 가깝고 농사조건이 좋은 농장에 지원하는 것도 큰 경쟁이었습니다. 우리는 원하협동농장에 자주 나갔는데요, 그리고 가을걷이철에는 한때 유행했던 '기름 골' 채취에 많이 동원되었습니다.
'기름 골'은 먹을 땐 정말 좋은데 많이 먹고 나면 저녁이나 아침마다 큰 고생을 하곤 했습니다. 섬유질이 많아서 그런지 그 쪽이 막혀서요.
농사일을 아노라면 쉬운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남의 떡은 더 커 보인다고 자기가 하는 일은 훨씬 힘들어 보였고, 남이 하는 일은 모두 쉬워보였습니다. 그래서 이 일, 저일 번갈아 가며 다 해보는 것이 일쑤죠.
논에서 물모 뜨기를 하다, 밭에가 밭모 뜨기도 하고, 때론 논두렁 가래질이 신선노름 같아 그것도 해보죠. 그런데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트랙터 뒤에 매달아 놓은 써레치기 나무에 올라타 따라다니는 것이 쉬워 보이지만 그것을 타다 미끄러 넘어져 온 몸이 통째로 써레치기를 당하기도 합니다.
어린 학생들과 같이 하는 일이니 농장원들도 성차지가 않습니다. 계속 잔소리죠.
농장이나 국가적인 입장에서도 크게 이롭지도 않습니다. 어차피 남이 일이니, 그리고 고달픈 농사일이니 소학교 학생들은 받아야 하는 공수에만 치중하고 일은 대충합니다.
모뜨기 할 때도 모를 뿌리째 뽑지 못하고 많이 자르고, 모내기 할 때도 제대로 심지 못해 둥둥 떠다니는 모들이 가득 합니다.
남새밭에 동원되면 그래도 좀 낫습니다. 새로 돋아나는 시금치, 부추 등 남새들을 남들보다는 풍족하게 먹을 수 있죠.
황금의 가을걷이철이 오면 환경이 좀 더 좋습니다. 콩청대(콩서리)를 해서 입술이 새까매지도록 실컷 먹고, 거기에 남들이 먹지 못하게 오줌으로 마무리하는 것도 큰 재미죠.
자유세계에서 학생들을 북한같이 강제로 동원시켰다간 큰일 납니다. 아마도 대통령, 농업담당 장관이 다음날로 보따리를 싸들고 집으로 가야 할 겁니다.
그리고 여기서는 한 시간만 노동력을 채용해도 반드시 돈을 줘야 합니다. 국가에서 정해놓은 최저임금한계가 있습니다. 또 소년, 소녀 노동은 법적으로 금지고요.
북한의 소학교, 중고등학교 학생들도 '학생단지', 강냉이 영양단지에서 빨리 해방돼야겠죠?
'대동강 이야기'의 김광진이었습니다.
0:00 / 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