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의 인민궁전과 ‘조선 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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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친애하는 북한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며칠 전 저는 북한과의 쌍둥이 형제나라였던 루마니아를 다녀왔습니다. 25년 전 사회주의붕괴를 가져 온 혁명이 일어났던 발자취를 그대로 따라가면서, 차우셰스쿠가 처형되던 긴박한 며칠 동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현장증언자들을 만나가면서 생생하게 경험하고 돌아왔습니다.

물론 시내중심부 중국대사관 옆에 있는 북한대사관도 살짝 지나쳤고, 그 주변 레스토랑에서 좋은 이태리음식도 맛보았습니다. 루마니아에 아직도 북한대사관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고, 또 이들을 통해서 그때의 혁명에 관한 정보와 교훈들이 북한으로 많이 흘러들어 가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혁명의 발단이 되었던 티미쇼아라도시를 포함해 많은 것들이 큰 인상을 주었지만 뭐니 뭐니 해도 사회주의 루마니아를 상징하는 부쿠레슈티 중심부의 인민궁전이 가장 큰 충격이었습니다.

차우셰스쿠가 북한을 방문해 인민문화궁전과 주석궁을 보고 감명을 받아 건설할 결심을 했다니, 다리 부러진 노루가 한 곳에 모인다고 사회주의를 망친 독재자들의 생각이 어쩌면 저리도 같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모양은 주석궁, 현재 금수산태양궁전 판박이이고 규모는 그것보다 훨씬 큽니다. 2만 명의 건설 자들, 170여명의 설계사들이 동원되었고 차우셰스쿠가 죽은 1989년까지 70%가 완공되었었더군요.

궁전 앞으로는 큰 광장과 도시의 3분의 1을 밀어치우고 건설한 정부청사, 간부들 주택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습니다. 연설하기를 특별히 좋아했던 차우셰스쿠는 여기서 수십만 군중 앞에서 연설하고 싶었지만 정작 본인은 한 번도 여기에 서보지 못했습니다.

세계에서 미국 펜타곤 다음으로 규모가 방대한 구조물인 이 인민궁전을 포함한 건설에 국가자금을 엄청 퍼붓다나니 주민들의 생활은 날로 피폐해져 갔답니다. 하루 전기가 2시간밖에 공급되지 않았고, 텔레비전도 2시간밖에 볼 수 없었다는 군요.

이렇게 건설한 궁전은 사실 그 경제성이 정말 없었습니다. 2시간 넘게 관광하면서 보았는데 물론 다 돌아볼 수 없었고, 억만금이 들어간 호화궁전은 효율적으로 이용되지 않고 많은 부분이 방치되어 있었죠.

안내원의 말이 또 걸작이었는데요, '관광수입은 모두 여기 전기사용료로 나가기 때문에 될수록 빨리 불을 끄고 방에서 나가야 합니다'라고 하더군요. 그때의 루마니아의 상황이 북한에서 현재 판박이처럼 재현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마식령스키장, 10만 세대 살림집, 마식령 속도와 조선 속도를 강조한 무리한 건설과 23층 살림집 붕괴,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각종 위락시설, 놀이터 건설, 김정은은 차로 1시간이면 갈 거리를 전용 비행기로 가는 행태 등이 말이죠.

국가지도자와 인민들 사이 사고, 생각의 유리도 꼭 같습니다. 차우셰스쿠는 당시 사태의 심각성, 인민들의 원성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고 자기가 광장에서 연설하면 모든 소요가 진정될 것이라고 착각했습니다. 자기를 진짜 신, 위대한 수령으로 믿었던 거죠.

재판받고 죽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짜 재판인지, 자기를 정말 죽이려고 하는지 마직 막까지 눈치 채지 못했었죠. 모두 전광석화처럼 일어난 일입니다. 앞으로 평양에서의 붕괴도 김정은 자신이 만들어 놓은 '조선 속도'로 일어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