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친애하는 북한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불볕더위, 허리케인, 폭우로 지구촌이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한반도도 여느 때 없는 더위로 지구온난화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습니다. 남한에서는 전기수급을 조절하느라 갖가지 대책도 세우고 있습니다.
요즘 북녘 땅에서는 농촌동원 철이라 전당, 전군, 전민이 모내기, 씨뿌리기에 여념이 없으리라 믿습니다.
북한에는 '시범껨'이라는 은어가 있죠. 시범적으로 체육시합을 한다는 시범게임에서 유래됐는지, 아니면 일벌백계의 의미로 생겼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본보기로 개인이나 집단을 처벌한다는 나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한 사람을 처벌해 수백, 수천에 영향을 미치고, 또 전 사회와 집단에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는 의미에서 북한에서는 아주 자주 쓰는 처벌방식입니다. 또 법 집행과 재판, 변호와 같은 투명한 법률행위들이 극히 적은 사정이기에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채택되기도 하겠죠.
일단 '시범껨'에 걸리면 큰일 납니다. 평상시에 처벌받는 수위보다 그 강도가 훨씬 크기 때문이죠.
'시범껨'은 죄목의 크기에 상관없이 모든 분야에서 활용됩니다. 소년단원들이 분단위원장 선거에서 투표지에 장난치다 걸리면 책벌을 받습니다. 경우에 따라 엄중경고, 경고, 사상투쟁의 형식으로 진행되죠.
사로청원들이 유사한 결함을 범하면 출맹, 퇴학 등 조치가 취해집니다. 중앙당 조직부 집중검열, 당, 검찰소, 보안부 성원들로 구성된 비사회주의 그루빠에 '시범껨'으로 걸리면 출당, 철직, 추방을 감수해야 합니다.
어떤 이들은 직장 내연녀와 부정적 관계를 가졌다 걸리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부정축재로 공장 물자들을 빼돌리다 '시범껨'의 된서리를 맞기도 합니다. 가장 위험한 것은 북한을 탈출해 남조선으로 가다 걸려 '시범껨'에 처해지는 것입니다.
좀 잘되면 수용소 수감, 안되면 총살입니다. 얼마 전 9명의 탈북청소년들이 라오스를 통해 남한으로 오려다가 잡혀 모두 북한으로 북송되었습니다. 이것도 아마 '시범껨'에 걸린 모양입니다.
북한이 특별 비행기까지 보내 데려갔기 때문이죠. 특별기를 띄운 과거사례들을 보면 김일성 생일선물, 교복을 해외에 있는 학생들에게 보냈을 때, 외국 국가사절들을 북한으로 모셔올 때, 고위간부들을 불치의 병 치료를 위해 해외병원에서 치료받도록 한 경우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북한은 아주 평범한 탈북자들, 그것도 조국을 버리고 남한으로 넘어가려는, 북한에서는 '반역자'에 속하는 청소년들을 북송하기 위해 특별기를 띄웠습니다.
이 일 때문에 지금 국제사회는 난리가 났습니다. 남한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유엔, 미국 대통령, 국제의원연맹, 종교단체들, 각계인사들 등 전 세계가 이들의 신변을 걱정하고 있으며, 강제북송을 강행한 라오스를 규탄하고, 북한에 신변안전을 보장하라는 경고와 요구를 하고 있습니다.
생사를 오가는 문제가 아니면 보통 북한에서 '시범껨'에 걸리면 재수가 없다고 하죠. 그러나 이들의 운명은 다를 겁니다. '사회주의 조국'을 버리고 남한으로 가려고 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죠.
아마도 죽이지 않으면 불온분자 딱지를 받고 평생 감시와 불행 속에서 살아야 할 겁니다.
남들은 세계 어디를 여행하든, 어디 가서 살든 전혀 상관을 하지 않는데 왜 하필 북한에서만은 여행의 자유, 거주의 자유, 생존의 자유를 유린당하고 살아야만 하는 걸까요?
이런 일들이 전 세계적으로 계속 이슈화가 되면 북한의 대외적 신뢰도가 계속 추락할 것이고 정권의 수명만 단축시키게 될 겁니다.
'대동강 이야기'의 김광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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