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강 이야기] ‘못은 짬이 있어 들어 가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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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평양에 있을 때 일입니다. 금요노동 동원 차 칠골 행 궤도전차를 타고 가던 중. 출근시간이라 그런지, 금요노동 농촌지역이 겹쳐서 그런지 그날따라 승객이 유별나게 많았습니다.

가장 절정에 이른 곳은 황금벌 역 옆 정류소에서였습니다. 이미 전차는 만원이어서 발 디딜틈도 없었죠. 모두가 이마에는 땀이 빠질빠질 났고, 일부 여성동무들은 어쩔 수 없이 남자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딱 붙어 선채 전차가 떠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문가에서 여러 명의 합창소리가 들렸습니다. '영차, 영차!' 금요노동에 나가는 중앙기관 정무원들이 비집고 들어오는 소리였습니다. 힘을 합쳐 밀면 아무래도 도움이 되죠.

이때 전차 안 어디선가 한 남성의 거친 목소리가 터졌습니다. '고만하고 가자우. 늦가서. 어디 짬이 있어야 더 조이디.'

그러자 영차, 영차 하던 사람들 중 한사람이 받아칩니다. '좀 더 조이라우. 못이 뭐 짬이 있어 들어가나?'

이에 사람들이 폭소를 터트리더니 자리가 더 나는게 아니라 몇 사람이 문밖으로 튕겨나갔습니다. 웃느라 호흡을 크게 들이켜 공간이 확 불어났기 때문이겠죠.

순간 대학 때 영어공부를 하면서 읽었던 유머가 떠올랐습니다. 제가 접했던 유머 중 가장 재밌게 웃었던 것이죠. 주제는 saturation, 포화와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버스에 사람이 얼마나 많이 탔는지 뒷문에서 한 사람이 올라타니까 앞문으로 다른 한 사람이 튀어나온다는 내용이었죠. 당시에는 이게 진짜 가능 하겠나 했는데, 현실에서 직접 당해보니 아 이런 느낌이구나 하고 실감이 났습니다.

요즘 북한은 핵보유국 지위를 갖고 국가가 이와 꼭 같은 행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국제적으로 인정도 하지 않고, 알아도 안 주는데도 막무가내로 못질을 해대는 격이죠.

얼마 전 최고인민회의는 헌법 개정을 또 했습니다. 서문에 '김정일동지께서 우리 조국을 불패의 정치사상 강국, 핵보유국, 무적의 군사강국으로 전변시키시였으며,,,'라는 문구를 넣어 북한의 핵 지위를 헌법에 못 박았죠.

저도 사실 북한이 핵 지위를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 국제사회가 인정하든 말든 자체적으로 법적인 방법까지 동원해서 진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예견은 했지만 헌법에 명시할 줄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왜냐면 세계에 자신들이 핵무장했다는 주장을 헌법에 집어넣은 나라가 하나도 없을뿐더러, '한반도의 비핵화는 김일성의 유훈'이라고 지금까지 주구장창 주장했던 '김정일 장군님 의 말씀'도 거짓말이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되니 말입니다.

또 수십 년 간 부침을 번복했던 6자회담을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도 걱정이 되고요. 6자회담 주최국인 형제나라 중국의 입장은 또 어떻게 되죠? 이는 북한이 자기의 입지를 못 박아 놓는 것은 물론, 외부세계의 옵션도 못 박아 놓는 행위로 됩니다.

북한당국이 별로 내놓을 만한 치적도 없고, 3대 세습을 정당화할 근거도 부족하니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자기가 판 굴로 점점 더 깊이 빠져드는 듯한 느낌입니다.

북핵은 소위 미국의 군사적 위협에 대한 대응으로 시작했다지만, 점차 외부지원을 갈취하기 위한 위협수단으로, 체제수호를 위한 생존수단으로 되더니, 이제는 그것 때문에 체제붕괴나 정권교체의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시한폭탄으로 되고 있으니 말입니다.

궤도전차는 밀치고 당기고 해서 끼워 탈수도 있고, 못은 짬이 없어도 박아 넣을 수 있지만, 과연 핵보유국 지위도 못질한다고 들어갈까요?

'대동강 이야기'에 김광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