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강 이야기] ‘귀통’을 때리는 북한의 식량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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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요즘 북한 식량사정이 귀통(귀뺨)을 때린대!' 최근 다시 어려워지고 있는 북한의 식량사정을 그 쪽 사투리로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이 같은 말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습니다.

언론 기사들은 고난의 행군이 다시 재현될 수 있다느니, 곡창지대인 황해도에서까지도 아사가 발생하고 있다느니 하는 소식들을 전하고 있습니다.

제가 북한을 떠나 외부에 살면서 북한의 고난의 행군과 90년대 대량아사에 대해 자주 듣는 질문들이 있습니다.

우선 '300만 명이 굶어죽었다는데 그게 사실이냐?'입니다. 이 숫자는 주체사상을 정리한 전 노동당 비서 황장엽 선생을 통해 처음으로 알려졌습니다. 북한에서 최고수뇌부와 내부 비밀에 가장 가까이 근접해있던 분의 증언이니 당연히 신방성이 크겠죠.

저는 숫자를 정확히 모르니까 이렇게 설명을 합니다. '당시 죽을 사람은 다 죽었다는 말이 돌았다. 마지막 한계에까지 도달했다는 뜻이다. 어느 지방도시에서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죽어나가 시체를 미처 처리하지 못했다고 한다. 밖에서 막 나뒹굴고, 관이 모자라 몇 사람씩 공동 매장하고.'

그때 이런 얘기도 있었죠. '이번에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층은 지식인들이다. 수많은 소중한 자산들을 잃었다. 군수산업에 종사하는 기술자들까지 굶어 죽었다. 연구사들, 선생들은 차마 장마당에 나가 장사를 하지 못해 굶어 죽었다.'

대학 교수를 하다 장마당을 전전하며 장사를 한 내 친구는 이런 말도 해주었죠. '체면이고 뭐고 모든 것을 빨리 집어던져야 한다. 빨리 도전(장사)하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이고, 살아남을 수 있다.' 당시의 긴박했던 사정을 잘 표현한 얘깁니다.

두 번째 많이 듣는 질문은 '사람이 어떻게 굶어죽을 수 있느냐?'는 겁니다. 그러게 말이죠. 오늘부터 30일 동안 '여이~땅' 해서 굶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나 이제부터 밥을 먹지 않고 굶어 죽을래하고 선포하지도 않으니 말입니다.

당시 노동당에서는 인민반을 통해 이런 포치를 한 적이 있습니다. 반장들이 매일 집을 돌면서 밥 가마를 열어보라는 지시였죠. 사람들이 굶어 죽으면서도 내색을 하지 않으니 직접 확인하고 대책을 세우라는 것이었습니다.

소학교 학생들은 선생들이 밥을 굶어 출근하지 못하자 쌀을 한 줌씩 모아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굶어 죽는가? 서서히, 그것도 몇 달 혹은 몇 년을 삼시세끼 제대로 먹지 못해 마지막에는 영향실조나 병에 시달리다 죽죠. 서서히 죽는 겁니다.

그리고 제일 어렵고 심각한 마지막 질문은 이렇습니다. '사람들이 굶어 죽는데 가만있느냐?' 아무래도 죽는 이판사판인데 앉아서 그냥 당하고만 있느냐는 얘기죠.

저는 이렇게 답을 합니다. '사람들이 가만있을 리 있겠나? 최선을 다 한다. 그래서 길가에, 논밭에 곡식이 익을 때까지 붙어 있질 않았다. 당국은 군인들을 풀어 총으로 낟알을 지키게 했다. 근데 그 군인들도 모두 나중에는 '도둑'이 되었다.'

'동을 밀매하느라 공장의 변압기들이 모두 해체됐고, 고압선 전선들이 끊어져 나갔다. 총기, 총탄 도난, 밀매사건도 발생했다. 지금은 신성불가침의 초상화도 사고팔고, 명함시계도 장마당에 나온다.'

'그리고 수만 명이 북한을 이미 탈출했고, 수만 명이 더 대기하고 있다.'

'요즘 우리 집 식량사정이 귀통을 때리오.' 비록 농담이나 유머러스하게 들릴지는 몰라도 이 말에는 가족, 또는 친인척들이 고난의 행군시기 당한, 혹은 지금도 당하고 있을 배 고품의 고통, 아사의 피눈물이 묻어있습니다.

'대동강 이야기'에 김광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