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친애하는 북한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북한에는 이런 당의 구호가 있죠. '고난의 천리가 가면 행복의 만리가 온다.' 그리고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라는 혁명적 낭만주의를 표방한 멋진 문구도 있습니다.
그러나 요즘 주민들은 '고난의 천리가 가고나면 그 뒤엔 고난의 만리가 기다린다'고 한답니다. 그리고 가는 길, 험난할 길을 '저희들이나 웃으며 가지,,,'하거나 '웃음이 안 나오는데 어떻게 웃어'라고 당의 구호를 비웃는다고 합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1990년대 중반, 그리고 지방의 많은 지역에서는 그보다 훨씬 전부터 시작된 '고난의 행군'이 인제는 15년, 20년이라는 긴 세월을 지났지만 아직도 언제 끝날지 모르니 인민들의 조롱도 이해가 갑니다.
북한에서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요즘 90년대 상황보다 더 어려워진다고 합니다. 북한당국도 앞으로 제2, 제3의 '고난의 행군'을 할 수 있다고 입버릇처럼 이야기 하니 그들도 '행복의 만리'가 아니라 '고난의 만리'를 인정하고 있는 셈이죠.
수십, 수백만의 아사자를 낸 '고난의 행군,' '죽을만한 사람은 다 죽었다고' 인민들이 말할 정도로 참혹했던 고난은 많은 신조어도 만들어 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은어가 집 잃고 거리를 방황하는 어린이들을 가리킨 '꽃제비'와 '영실이'일겁니다.
'영실이'는 누구의 이름이 아니라 '영양실조에 걸린 이'의 줄인 말입니다. 강하게 걸렸으면 성처럼 '강'자를 붙여 '강영실'이라고도 합니다.
이외에도 북한 가정의 변화상을 보여주는 남편에 대한 신조어도 있습니다. 남편은 '불편'이다. 그리고 남편은 '낮 전등,' '멍멍이다'입니다. 아내들이 그들에게 달아준 불명예스러운 '칭호'입니다.
공장이 멈춰서고 배급이 오랫동안 끊겼지만 세대주, 바깥주인인 남편들은 계속 직장에 출근을 해야 합니다. 빈둥빈둥 할 것이 없어도 국가직장, 일터를 지켜야 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여성들은 다릅니다. 가정을 먹여 살려야 하고 애들을 키워야 했죠. 그래서 그들은 두배, 세배의 짐을 지고 억척같이 살기 시작했습니다. 빵, 떡, 국수, 까까오(얼음 과자)를 만들어 장마당에서 팔았고 산나물, 풀뿌리를 캐 가정의 생명을 연장해야 했습니다.
그러면서 고단한 삶도 하소연할 겸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남편들을 풍자하기 시작했죠. 남편을 '남의 편'이라고 하다 도움이 전혀 안되고, 오히려 불편한 존재라 해서 '불편'이라는 새 이름을 달아줬습니다.
밝은 대낮에 켠 전등은 전기만 낭비합니다. 필요 없다는 얘기죠. 그래서 '낮 전등'이라는 별명도 붙었습니다. '멍멍이'가 아마도 제일 관대한 '칭호'갔습니다. 그래도 집은 지키니까요. 하지만 나가서 밥벌이도 못해오고, 장사도 못하고, 집에 앉아 아내들이 벌어다 주는 밥만 축내야 하는 '멍멍이'의 신세가 그렇게 훌륭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원래 북한에서 남자들의 위상은 대단합니다. '여성이 먼저(ladies first)'라며 그들을 우대하고 존중하는 서방문화의 영향도 전혀 받지 않은데다 옛적부터 아주 가부장적인 사회라 북한에서 남자들은 '따왕'(왕)이었죠.
그리고 평상시에도 남자는 10명을 먹여 살릴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한자를 들먹이며 말들을 많이 해 왔죠. 영어로도 보통 빵을 버는 사람, bread earner라고 하면 집안의 가장, 남자를 가리키죠. 어느 사회나 가족 10명은 먹여 살리고 빵을 잘 벌어 와야 남자라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이런 사내들의 위상은 북한판 '고난의 행군'으로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고난의 행군'은 우리 여성들에게 너무도 큰 짐, 무거운 짐을 지우고 있습니다. '혁명의 한쪽 수레바퀴도 굴려야지,' 남편도 먹여 살려야지, 가족도 돌봐야지, 애들도 키워야지.
앞으로 제2차, 제3차의 '고난의 행군'때는 그들에게 또 어떤 짐을 지울까요?
0:00 / 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