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강이야기] '손에 풀기가 있을 때'

지난 3월 20일 워렌 버핏 회장이 전용기로 대구공항에 도착한 뒤 김범일 대구시장과 함께 입국장으로 나오고 있다.
지난 3월 20일 워렌 버핏 회장이 전용기로 대구공항에 도착한 뒤 김범일 대구시장과 함께 입국장으로 나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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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존경하는 북한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요즘 외부에서는 사업으로 성공하여 천만금의 부를 일군 억만장자들의 상속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부자 하면 북한사람들에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아마도 미국의 석유왕 록펠러, 자동차왕 포드일 겁니다. 또한 전설적인 투자자보다는 '악명 높은 환 투기꾼'으로 북한에서 더 잘 알려진 조지소로스의 이름도 떠올릴 겁니다.

'부자 3대 못 간다'는 말도 있듯이 최근 발표된 세계부자순위 1위에는 멕시코의 통신재벌 카를로스 슬림 헬루가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의 재산은 무려 740억 달러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펀드매니저이며 영향력 있는 소로스의 100억달러 재산에 비해서도 엄청난 규모입니다. 소로스가 1992년 영국 파운드의 고평가를 이용해 '환투기'로 엄청남 돈을 번 것은 유명한 일화입니다.

당시 영국언론은 파운드가 단 기간에 20% 평가 절하되자 그를 보고 '영국은행을 박살낸 투자자, 세계 금융시장의 교란자'라고 독설을 퍼부었습니다. 그때 그는 11억달러의 수익을 올렸으며 1993년 월스트리트 100대 고소득자 중 1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이 돈은 UN42개 최빈국의 국내총생산액(GDP) 전체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것이라니 정말 세계 부자들의 재산규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계의 유명한 부자들은 재산과 함께 상속과 삶의 철학에서도 서로 다른 발자취를 남기고 있습니다.

세계최고의 투자자 워렌 버핏은 언젠가 '600달러를 벌기 위해 노력하지 말고 1달러를 아껴 쓰기 위해 노력하라'라는 말도 했습니다. 그와 함께 한 끼 점심식사를 하자면 263만달러를 내야 하는 세계최대 갑부지만 그의 이런 철학은 너무나 소박해 보입니다.

북한에서 이소룡에 이어 재키 찬으로 유명한 홍콩의 무술배우 성룡은 3년 전 3억달러의 전 재산을 사회에 돌려주겠다고 선언하면서 그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아들이 유능하면 유산이 필요 없을 테고 거꾸로 무능하면 탕진해 벌릴 것이다.' 정말 명언입니다.

미국 역사상 세 번째 부자였던 철도왕 밴더빌트는 1877년 재산 1억달러를 남겼습니다. 이는 당시 미국국립은행들의 총 예금액의 10%가 넘는 돈이라고 합니다. 100년이 지난 1973년 그가 세운 밴더빌트대학에 후손 120명이 모였는데 그중 재산이 100만달러를 넘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고 합니다.

세계 두 번째 부자 빌 게이츠는 얼마 전 영국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아이들에게 재산의 극히 일부만을 물려주겠다'고 했습니다. 삼남매인 애들에게 '한 아이에 1,000만달러씩만 상속하겠다'고 한 발언의 연장입니다. 우리들에게는 이 돈도 어마어마하지만 560억달러인 그의 재산에 비하면 1인당 0.018%씩만 주겠다는 얘기죠. 그야말로 새발의 피입니다.

자식에게 돈이 아니라 돈을 벌고 지키는 방법을 물려주는 것이 아마도 가장 현명한 부자들 같습니다. 북한에서는 이런 억만장자들처럼 부를 일굴 수가 없죠. 그래도 간부들은 '손에 풀기가 있을 때 해야 한다'며 자식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발이 달토록 뜁니다.

외국에 유학 보내고, 좋은 대학에 입학시키고, 좋은 직업을 잡아 주고, 딸들에게는 최고의 신랑감을 찾아 줍니다.

김정일은 언젠가 구소련의 간부들로부터 러시아유학을 권유받았습니다. 그때 그는 '우리에게도 김일성종합대학이 있다, 나는 김일성종합대학에 다니겠다'고 했답니다. 그러나 그도 자기아들 셋 모두를 스위스에 유학시켰습니다.

그리고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에 이은 3대에 걸쳐 북한전체를 상속하고 있습니다. 민족도 '김일성 민족,' 나라도 '김일성조선,' 당도 '김일성 당'으로 사유화해서 말입니다.

홍콩배우 성룡의 말을 빌면 북한의 처지는 지금 어느 쪽에 속할까요?

'아들의 유능, 아니면 북한의 영토와 자원, 인민, 재산의 탕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