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강 이야기] 이런 현상을 없앱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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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은어와 유머를 통해 북한사회를 이해하는 '김광진의 대동강 이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김광진씨가 전해드립니다.

며칠 전 평양TV에서는 70년대 창작된 예술영화 '잔치 날; 도시편'이 방영되더군요. 하도 오랜만이어서 그런지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 그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정말 때 묻지 않았구나, 그리고 너무도 순진하고 착했구나,'하고 말입니다.

영화의 내용은 허례허식을 없애고 관혼상제를 사회주의적 생활양식에 맞게 간소하게 하자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을 없앱시다.'로 대표되는 다른 북한영화 시리즈도 아주 볼만한 재밌는 작품들이라고 생각됩니다.

영화들이 다룬 과거의 낡은 생활관습에 비하면 요즘은 그 도가 훨씬 지나친 것 같습니다. 사상과 제도를 떠나 생활이 어려워지고 궁핍해지면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인 모양입니다.

어느 한 지방의 장마당에서 있은 일입니다. 워낙 계산이 빠르고 눈썰미가 잽쌌던 철남이 엄마는 고난의 행군으로 장마당이 활성화되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두부, 국수, 까까오 등 돈 회전률이 높은 음식장사로 시작했다가 어느덧 돈도 많이 벌어 잘나가는 공업품에 손을 뻗쳤습니다.

공개적으로 내놓고 파는 물건은 주로 신발, 셔츠, 양말 등 철을 타지 않는 물건들이고, 감춰놓고 몰래 파는 물건 중에는 처녀들이 껌뻑 죽는 한국산 화장품에다, 신라면,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구운 CD도 있었습니다.

남편은 직장에 나가 배급을 벌어다 줄 때는 그래도 남자의 체면이 좀 섰는데, 공장이 완전히 멈추고 처의 밥벌이에 전적으로 의존하면서부터는 꼴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안주인의 장사 물건들을 정리해 지고 다녀야 했고, '낮 전등,' '불편,' '풍경화' 등 아무 쓸모도 없다는 의미의 남성비하 성 발언도 참고 견뎌야 했습니다. 어떤 때는 하루 배급정량이 300g인 아들 철남이와 빗대 '우리 집에 300이 둘 있어,' '나는 300을 둘씩이나 키워야 한다니까'라는 처의 거북한 얘기까지 엿들어야 했습니다.

풀이 죽다나니 옷차림도 신경 못쓰고 늘 꽃제비처럼 허름한 차림에 처의 장사 일을 도왔습니다. 반대로 철남이 엄마는 점점 더 세련돼갔고 가끔씩 외간남자들에게 눈을 돌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옆자리에 앉아 같이 장사를 하는 한 과부댁 아주머니와 내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근데 재수 없게 철남이 엄마가 졌습니다. 일부러 져 준지도 모르죠. 내기에 건 것은 다름 아닌 자기 남편이었습니다.

5만원을 받고 팔린 남편은 다음날부터 과부댁의 비공식 남편이 되었습니다. 한편 과부댁 여인은 원래 철남이 엄마를 질투하고 좋아하지 않았던지라 이 기회에 단단히 꼴을 한번 먹이려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밤일을 열심히 잘 하는 것은 물론이고 철남이 아버지를 보란 듯이 치장하여 내세우게 됐죠.

옷이 날개라고 잘 입고, 잘 먹고, 또 집사람과 관계도 좋으니 사람이 180도로 변해버렸습니다. 과부댁은 그를 자랑하려 자주 장마당에 데리고 나왔습니다.

질투심이 유발된 철남이 엄마는 드디어 발작을 일으켰습니다. 도루 남편을 내놓으라는 것이었죠.

그러나 과부댁은 말을 들을 리가 없었습니다. 하루 밤 잠자리에서도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데 철남이 아빠를 내주면 평생 설음의 만리장성을 쌓을 테니 어찌 그리 하오리까. 그러자 안달이 난 철남이 엄마는 남편 몸값을 본전의 10배인 50만원으로 높였습니다.

이것이 소문나면서 여맹조직에까지 들어갔고, 결국 이들은 비사회주의적 생활양식, '썩어빠진 자본주의 노란 물'에 물젖은 사람들로 사상투쟁무대에 서게 됐답니다.

돈으로 자기 남편을 사고파는 북한의 장마당! 하긴 '장군님' 초상화도 사고판다던데, 그리고 '수령님' 명함시계도 장마당에 나온다는데 그럴 만도 한가요?

'대동강 이야기'에 김광진이었습니다.